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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18. 2024

빈 집

1년이 지나서야 엄마의 집을 정리한다. 모두에게 충격과 아픔으로 다가왔던 엄마의 죽음은 그 이후에도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물건을 엄마께서 살아 계시던 그대로 두었다. 누구든 엄마가 그리우면 찾아가서 추억할 수 있도록.      


1년이 지나고, 결국 집을 모두 정리 하기로 결정했다. 쉬는 날마다 가서 엄마의 물건을 정리했다.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마음을 다치는 일 같아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생애 마지막 매듭을 지어줘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기에 그 역할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물건, 나누어야 할 물건, 버려야 할 물건을 나누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정답은 없지만, 최대한 잘해내고 싶었다. 슬픈 순간이지만, 다신 오지 않을 순간이니.     


엄마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엄마의 집과 물건을 본 이들은 하나 같이 엄마가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했다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정리하느라 힘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모두 자기 특성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엄마처럼 예술성과 심미성이 두드러진 분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간 것에 대해 딸로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엄마가 예술가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엄마의 예술이 음악이나 미술 분야의 작품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더라도 엄마의 생활 곳곳은 엄마의 예술성과 심미성이 깊게 베어 있었다.      


엄마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예술가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편집샵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내 마음에 그런 아쉬움이나 슬픔들이 있다. 하지만 열악한 집안 환경 속에서도 끊임 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대로 자유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갔던 나의 엄마가 참 자랑스럽다. 누구에게든 두드러지게 보이는 성공의 흔적도 멋있는 것이겠지만,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와 내 가족 아는 조용한 성공도 그만큼이나 멋있는 것이니까. 오히려 나는 엄마의 삶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며, 어떤 조건에서도 나라는 꽃의 색깔을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피어내는 것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배운다.   

   

나의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그 삶이 너무나 처연하고 안쓰러워서. 엄마의 심장이 멈추던 순간, 삶의 고생이 묻어 있던 그 발을 보며 엉엉 울어버렸다. 자꾸만 슬픔으로 흘러가버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금 마음을 정돈하며 되뇌인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꽃을 피웠다고.      


삶이란 것이 늘 아름답고 완벽했으면 하지만, 정작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지저분하며 차마 잊고 싶은 순간이 가득하다. 진흙탕을 뒹굴며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달까.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꼭 내 삶이 다른 이들보다 너무나 불행한 것 같아 힘이 쭉 빠져버리곤 한다. 내 나이의 엄마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정말 모든 것을 손에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어제의 내가 그랬다. 짐을 옮기느라 부른 용달차 기사님의 무례함과 거친 행동에 언성을 높였고, 마음을 다쳤다. 이미 엄마의 유품이 정리되는 과정 내내 위태로웠던 마음에 금이 간 것이다. 모든 가구가 나가고 덩그러니 놓인 빈 집.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나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도 늘 가족나 누군가와 함께여서 온전히 내 자신을 내려놓고 울어본 적이 없는 나인데. 혹시라도 울다가 내가 무너져 내려 버릴까봐 제대로 목 놓아 울어본 적도 없었는데, 이제 정말 끝이라 생각이 들어서인지 쌓여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다리차가 작업을 하느라 훤히 열어 놓은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저 창문 밖으로 나가버리면 이 고통스러운 삶이 끝날 수 있는 걸까.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 잠깐 슬퍼한다 해도 모두가 나란 사람을 결국 잊어버리겠지만, 내 아이의 고통은 사는 내내 지속될 거라고. 아이에게 나와 같은 상처는 줄 수 없다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우리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아빠 돌아가신 뒤의 삶을 버텨냈을까.     


굳이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아도 지금의 내 삶은 충분히 힘이 든다. 엄마를 잃은 것이 삶의 절반을 잃은 것만큼이나 허망하다. 요즘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알맹이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잠들어 버리고 껍데기만 허옇게 남은 사람 같다. 눈을 뜨니 하루를 살고, 눈을 감으니 잠이 든다. 마치 빈 집 같이.      

5월 말이면 엄마의 남은 짐이 모두 정리가 된다. 이후의 삶은 어떨까. 과연 나는 제대로 회복할 수 있을까. 온전히 회복할 수 없다 해도 엄마의 빈 집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나란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겠다고. 비록 그 꽃이 다 피지 못해 몽우진 채로 끝난다 해도, 최선만은 다해보겠다고. 최선은 엄마에게 물려 받은 가장 큰 재산이니.     


지옥 같던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여기, 엄마의 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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