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귀의해 승려의 삶을 사는 고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릿속에 맴돈 문구가 하나 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어느 만화의 구절, 그 대사의 참뜻을 떠올리며 나는 늘 그 작은 바람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가 승려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불교의 교리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찰이 좋아서도 아니며 뭔가 큰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의 욕망 때문이었다. 내 앞에 주어진 어지러운 현실 속 번뇌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불교의 엄격한 규칙을 빌려 나 자신을 포박하고 타력으로나마 나의 욕구를 다스리고자 함이었다. 마치 스스로 감옥에 가두고 싶었던 느낌이랄까? 나는 내 안의 괴물을 감추기 위해 내 발로 금욕의 땅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승려가 된다는 것이 단지 승복을 입고 머리를 미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올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저 미디어에 노출된 그들의 절제된 삶을 보고 그것을 차용하고 싶었던 욕심, 그리고 짧은 생각이었을 뿐이다.
다행히 나는 절로 도망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승려가 됨으로써 포기해야 할 것들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승려의 삶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데, 이따금씩 내 안의 괴물이 고개를 들 때면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해진다.
내가 그 괴물에 잠식되지 않은 것은 크나큰 우연이자 행운의 덕일뿐, 내 힘만으로 된 일은 아니었다. 삶은 때때로 그 괴물의 몸집이 커질 때마다 내게 작지 않은 시련을 하나씩 건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 본능적 욕구나 욕망을 관 속에 담아 커다란 못질을 해두었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의도치 않게 금욕적 삶을 살게 되었고, 지금은 여느 승려 지망생보다 더 가벼운 세상 위를 걷고 있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