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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DIY

by 오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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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란히 앉아 송편을 만들었다. 지난 추석에 먹은 송편들은 하나같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내 입맛이 유난한가 싶어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도 이번 송편은 유독 별로였다고 했다. 어른들은 이런 입맛을 좋아할까 생각해 봤지만, 이미 우리 부부도 어른이 되어버린 상황. 양가 부모님들도 떡을 먹어보고 산 게 아니니, 실패인지 아닌지는 까본 다음에 알았으리라.


어쨌든 올 추석 송편은 실패였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우연히 ‘송편 만들기 키트’를 발견했다. 송편을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아내와 나는 옳거니 싶어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키트를 발견한 곳은 생뚱맞게도 무인양품이었는데, 생활용품 잡화점에서 보기 힘든 제품이라 다소 의아했다. 하지만 평소 무인양품에서 사다 먹은 간식이나 밀키트가 꽤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믿고 구매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떡 만드는 날. 아내와 나는 네 가지 색상의 찹쌀가루를 4종류의 대접에 펼쳐 놓은 뒤 조리를 시작했다. 사실 조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우리의 눈빛은 꽤나 진지했다. 각 가루는 색상과 배합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물이 들어가는 양도 조금 다른 모양이다. 어떤 반죽은 질게 되고 또 어떤 반죽은 꾸덕꾸덕하게 되는 바람에 급하게 밀가루를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먹어보니 밀가루를 넣은 반죽은 밀 냄새가 많이 났다. 차라리 전분가루를 넣을 걸 그랬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반죽을 완성했다. 그리고 설탕과 깨가루가 잘게 으깨져 있는 소를 소복이 담아 만두 모양으로 송편을 빚었다.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우리 부부는 이내 별 모양에서부터 하트 모양까지 재밌는 모양으로 송편을 완성했다. 열 개 남짓한 송편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송편 만들기 키트’인 터라, 만드는 과정이 먹는 시간보다 오래 걸리고 또 재미도 있었다.


이어지는 순서는 만두를 찌는 시간. 20분 동안 스팀으로 쪄내야 하는데, 그건 또 나의 전문 아니겠는가. 평소 만두로 숙련된 찜 기술 덕에 마지막 파트는 손쉽게 끝났다. 냄비의 뚜껑을 들어 올리자 뽀얀 스팀이 사방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안에는 보다 선명한 색을 내뿜는 쫄깃한 송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게로 조심스럽게 송편을 잡아들어 넓고 파란 영국산 도자기 접시에 담았다. 이것이야말로 동서양의 콜라보레이션. 잘 익은 송편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김이 식을 때까지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각자 서로가 만든 송편을 집어 한 입씩 맛봤다. 역시 이 맛이다. 흡사 꿀떡 같은 이 달콤 고소한 맛, 그래 이게 바로 송편이지. 우리는 훌륭한 맛과 서로의 실력에 감탄하며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사실 맛은 어쩌면 이미 보장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밀키트에 물을 붓고 조리만 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아내와 만든 첫 송편이라는 사실이 설탕과 참깨 소 사이에 감미료처럼 스며들어, 더 기분 좋은 맛을 빚어낸 것 아닐까. 그렇게 우리의 긴 추석 연휴는 달콤하고 쫀득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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