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
한국의 전통적인 사무 환경에서는 상사의 감정적인 지시나, 무리한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욕받이’ 역할을 맡는 직원이 필수적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복잡한 인간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특히 상사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 AI는 그 요구를 단순히 처리하거나 무시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정교하게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만이 가능하다.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상사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일 때, 부하 직원이 이를 잘 받아주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도록 돕는 역할을 기대한다.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사의 명령을 처리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미묘한 감정적 요구와 역학 관계는 인간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상사가 겪는 개인적인 불만, 감정적인 피로, 그리고 회사 내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고려하며 상황을 풀어가는 일은 결국 사람의 역할이다. 상사의 말 한 마디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그의 불안이나 스트레스의 표현일 때 이를 읽어내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능력은 아직 AI가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다.
감정적 갈등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
고객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한 요구나 ‘갑질’을 하는 고객 앞에서, 단순히 문제 해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달래주고,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만족한다. 이때 AI는 사실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답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고객의 감정적인 요구를 미세하게 파악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객이 단순히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 클레임을 사용할 때, 인간만이 그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춘 대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경우, 고객은 그들의 요구가 실제로 해결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기대한다. AI가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을 하고 빠르게 대응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담긴 진정성과 "고객님 말씀대로"라는 말 속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사람 대 사람의 감정적인 교류 속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이해는 AI로는 대체하기 힘든 부분이다.
AI로 대체될 수 없는 감정 노동의 영역
결국, 감정적으로 복잡한 상호작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업무에서 인간의 ‘욕받이’ 역할은 당분간 사라지기 힘들다. AI는 데이터 처리와 자동화된 반복 업무에 있어서는 탁월한 성과를 내지만, 인간이 일상적으로 겪는 감정적 경험의 영역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감정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사의 감정적 피로를 덜어주는 역할은 AI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는 단순히 감정 노동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자체가 아닌 ‘관계 유지’임을 의미한다. 상사와의 관계, 고객과의 관계는 논리나 효율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에, AI가 모든 사무직 업무를 대체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욕받이라는 역할은 단순한 일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로, 당분간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인간만이 감정적으로 힘든 일만을 감당해야 하는 미래가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AI는 합리적인 일을 맡고, 인간은 비논리적이고, 부당한 감정적인 일을 떠안게 되는 슬픈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