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gang Jul 15. 2022

행복한 시간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개구리 내기에서 진 상습 내기꾼에 대한 이야기로,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이다. 줄거리는 대단할 게 없지만 트웨인 특유의 이야기 솜씨에서 비롯된 재미 때문에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트웨인 소설을 읽고 있으면 종종 그가 나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뜀뛰는 개구리'를 보면 항상 리언 프리드먼이 섬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기억나니, 마야? 잘 모르겠다면 나중에 에이미한테 물어봐라.


문지방 너머로 에이미의 낡은 보라색 소파에 앉아 있는 너희 두 사람이 보인다. 너는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를 읽고 있고, 에이미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지. 얼룩무늬 고양이 퍼들글럼이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기억이 닿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A. J. F.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에이제이가 딸 마야에게 쓰는 단편소설 리뷰로 이 책은 챕터가 시작된다. 13개의 챕터 13편의 리뷰가 있다. 짧은 리뷰이지만 딸을 향한 에이제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섬에 있는 서점>을 두 번 읽는다.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서점 주인이 된 에이제이 부부. 서점이 없는 섬에 들어와 서점을 차리고, 서점이 지역의 문화 공급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에이제이의  아일랜드 서점에서의 좌충우돌 이야기. 책을 알지 못했던, 책에 흥미가 없던 파출소장 램비에이스가 대장 독서클럽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되기까지, 아일랜드 서점이 열두어 개의 독서클럽이 생겨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까지. 책이 주는 그 무한한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아 너무 좋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책을 읽으므로 행복해진다. 도입부는 불행하고 우여곡절이 많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정교하다. 깊이가 있다. 일 막에서 총이 나왔으면 삼 막쯤 가서 그 총을 쏜다. 서사구조에 따라 도입부에 풀어놓은 떡밥을 결말에서 모조리 회수한다. 부족했던, 까탈스럽던, 것들이 채워지고 유해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풀어내는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책은 꿈을 꾸게 한다.


세끼 밥 먹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동네 책방 하나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꿀만한 꿈 아닌가. 매달 세를 내야 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종일 책 한 권 팔리지 않아도 염려할 필요 없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책 이야기를 맘껏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나는 꿈꾸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서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 동네는 서점도 있어, 자랑처럼 말하기도 했다. 오가며 드나들었다. 어느 날 문자 하나가 툭 떴다. 적립금이 얼마 있으니 언제까지 사용하라는 문자. 서점은 곧 문을 닫는다, 는 내용이었다. 적립금으로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을 구입했다. 그 책이 신간으로 나온 얼마후였으니 벌써 1년이 돼간다. 동네 서점이 문을 닫고 그 많은 책이 무더기 무더니 쌓여 나가고 또 오랜 기간 내부 수리를 하고, 그 자리 다이소가 생겼다. 쉽게 오가며 편리하게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나는 서점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적립금이 주어지니 인터넷 서점과 엇비슷해서 나는 그곳에서 사야 할 책을 구입했다. 아이들 참고서 공책 모두 거기서 구입했다. 그곳을 살리고픈 나의 속마음도 들어 있었다. 서점 내부에 카페도 있어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우리 동네 다이소가 생겨서 너무 좋다고. 그 말끝에 나는 서점이 사라져서 너무 속상하다, 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섬에 있는 서점>을 읽고 나니 다시 슬며시 꿈틀거리는 나의 작은 소망, 동네책방 만들기. 그런데 요원할 것 같다. 나는 아직 세가 나가지 않아도 될 나의 건물을 마련하지 못했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햇살 드는 나의 공간에서 책에 빠져드는 누군가를 본다는 건 행복한 일일 것 같다. 에이제이가 문지방 너머로 보이는 낡은 보라색 소파 위에 앉아 책을 읽는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시선에 나의 시선도 머문다. 어린 딸은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를 읽고 중년의 아내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는데 그 책이 들려주는 따스한 이야기,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내심 마음에 그리며 아내와 아이의 시선을 상상하며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는 기억이 닿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라고 쓸 수밖에. 문지방 너머로 보이는 딸과 아내의 책 읽는 모습을 마냥 행복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에게 마음이 머문다.


팔걸이가 있는 낡은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 창이 있어 햇살 드는 공간이면 좋겠다. 비스듬히 커튼 사이로 밀려드는 햇살 한 조각은 책을 읽고 있는 들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져줬으면 좋겠다. 햇살이 스며들 듯 책에 스며들어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든 모습을 그려본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