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만석동 - '예술로 동구길'
묘도, 고양이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란다. 갈매기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운다고 해서 묘도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양이를 옛날 사람들은 '괭이'라고도 했다. 괭이부리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작가 김중미 덕이 크다. 작가 김중미는 판잣집과 쪽방이 있는 괭이부리 마을에서 공부방을 열었다. 긍정을 미덕으로 삼으라고 하지 않았다. 희망으로 최면을 걸며 허망한 꿈을 심어주지도 않았다. 김중미는 아이들이 가난한 현실을 직시하고 단단하게 버티며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기를 바랐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녹아있다. 이 작품이 꾸준히 읽히고 입에서 입으로 감동을 전하며 파동을 이어갔던 것은 이 때문이리라. 이 파동은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되기에 이르렀고, 화제를 모으며 2013년 아동문학 최초로 200만 부를 판매를 돌파했다.
“우리 집에 오면 누구든 밥 먼저 먹어. 우리랑 친해지려면 밥부터 먹어야 되거든.”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오는 동네 삼촌 영호는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밥부터 먹였다. 밥, 밥은 참 중요하다. 몽글몽글 김이 오르는 밥 한 그릇 든든하게 먹고 따신 방에 두 다리 뻗고 있는 것,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돌봄이 부재한 가정의 아이들이 방황할 때 영호는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밥부터 먹인다. 아이들은 ‘마음을 채우고 있던 어둠들을 말간 햇살로 다 씻'어 내며 더디지만 서서히 스스로 빛나는 일상을 되찾는다. 그리고 꿈을 꾼다. 거창한 꿈이 아니라 ’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보잘것없는 꿈이 아님을 격려하며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는 서로가 울타리가 되어 준다.
"아이들한테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나한테 아이들이 필요해."
동화 속 이야기는 실재한다. 괭이부리마을에는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있다. 1987년 문을 열어 서로 존중하고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앞날을 헤쳐 나갈 힘과 꿈을 키우도록 온 마을이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이 마을에서는 살아난다.
괭이부리마을은 두 곳에 있다. 괭이부리마을에서 만석부두 쪽으로 가면 원괭이마을이 있다. 괭이부리마을 이름이 비롯된 묘도는 원래 섬이었다. 그러니 부두와 가까운 이곳이 원래 괭이마을이었다는 것이다.
여행지에 가면 '최초', '최고'로 장소의 가치를 부각할 때가 있다. 그래야 특별하게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괭이마을은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이 열린 곳이다. 지금은 해수욕장이었다는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길바닥에 있는 묘도 유원지터 표지석을 못 봤다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06년 일본인 이나타 가스히코(稻田勝彦)는 만석동 갯벌 33만 평을 헐값에 사서 매립한다. 그리고 휴게소, 다이빙대를 갖춘 해수욕장을 열고 호텔 팔경원, 유흥시설까지 갖춘 뒤 영업한다. 신문물을 갖춘 거대한 시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을 열자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나타 가스히코는 운 좋게 헐값에 사서 특혜를 받아 거저 얻다시피 한 유원지에서 돈을 긁어모으는 야무진 꿈에 젖었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묘도 유원지는 곧 인기가 시들해졌다. 월미도에 더 화려한 해수욕장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에 가서 놀고 유흥을 즐길 정도면 여유가 있어야 했다. 1906년 인천에서 유원지를 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차이나타운 근처에 사는 일본인이나 서양 외국인 정도였을 것이다.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근처가 외국인에게 상업활동과 거주로 허락된 조계지였다. 묘도보다 더 접근성이 좋은 월미도에 해수욕장이 새로 열렸으니 거기로 몰려 간 것이다. 이나타 가스히코의 일확천금의 꿈은 해수욕장을 폐장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 후 이곳은 용도를 잃고 중국인들이 채소를 심어 파는 곳으로 한 20년 어영부영 세월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정미소, 간장공장, 소금을 가공하는 제염소 같은 공장들이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공장지대가 된다.
여기에 있었던 도쿄시바우라 전기 인천공장에서는 처음에 전기를 생산했다. 일제가 전범국가가 된 뒤에는 무기를 만들었다. 조선기계제작소에서는 잠수정을 만들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그렇게 전범국가 일본제국주의가 병참기지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된 것이다.
퍼뜩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 강화도 전등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종이 있다. 일제가 수탈해 갔던 것을 해방 후 인천항을 뒤져서 겨우 찾아왔다고 했다. 놋그릇, 놋수저를 뺏어가서 목기를 쓰게 하고 종교시설의 종까지 약탈해서 가져와 녹여 무기를 만든 곳이 여기였던 것이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 공장에서 부두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공업철도가 있었단다. 징병해 온 사람들이 살던 숙소인 개미굴 같은 노동자들의 사택도 있었단다. 옛 간이역 모형과 길바닥에 그려진 철길이 그때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간이역 옆에는 벽돌공장 굴뚝에 한 사람이 애처롭게 서 있는 조각작품이 있다. 작가 오종현의 작품으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표현했다고 한다.
'난쏘공'에서 난쟁이 김불이네는 낙원구 행복동을 떠나 은강시에 살게 된다. 은강시의 묘사는 만석부두 부잔교와 동일방직, 판유리공장,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있는 만석동의 풍경과 일치한다.
'난쏘공'에서 집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수단이 집이다. 김불이네는 낙원구 행복동 재개발로 은강시로 떠밀려온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는 철거민에게 ‘철거계고장’은 추방 통지서와 같다. ‘그들 옆에는 법이 있다’는 김불이의 한탄처럼 공권력은 철거민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추방했다.
김불이네 영수, 영호, 영희는 시멘트로 벽을 쳐서 만든 집을 완성했을 때 며칠 학교를 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 했다. 그런 집을 잃고 추방당한 김불이는 갈 곳이 없었다. 달나라 천문대지기를 꿈꾸던 그는 달과 가장 가까운 곳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 달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하루에 수도 없이 찍어내는 벽돌로 만드는 집, 그러나 노동자들은 실제 자신의 집은 갖지 못했다.
“내가 ‘난쟁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 작가 조세희의 인터뷰에서
‘난쏘공’은 초판 이후 300쇄를 넘게 찍고 15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작가 조세희는 이 성공을 슬퍼했다. 4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이 소설을 보고 눈물지어야 하는 불행한 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쏘공’ 출판 40년을 넘긴 2022년, 작가 조세희는 성탄절에 세상을 떠났다.
매립되기 전 묘도는 노을이 유명했단다. 인천 8경 중 하나가 묘도석조였다. 지금은 고개를 들어도 보이는 것은 희부윰한 하늘뿐이다. 그때 노을의 맛보기라도 볼라치면 만석부두로 가야 한다.
해 질 녘에 도착한 만석부두는 노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종도에 색색의 불빛이 차례로 밝혀지자 야경 맛집이 되었다.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1의 14화 촬영지가 만석부두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끈질긴 추격과 격투 끝에 여기에서 악당을 응징한다.
생각하니 서글프다. 우리는 왜 매 번 악전고투 끝에 악을 응징하는 주인공의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는 것일까? 주인공이 아닌 법과 제도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악을 응징하는 사회는 올 수 없는 것일까? 작가 조세희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혁명이 필요한 때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자라지 못해 우리 모두가 난쟁이다. 난쟁이 김불이는 일할 수 있고, 일해서 먹고 입고, 자식들 공부시킬 수 있는 것이 꿈이었다. 법과 제도가 부리는 자의 권력이 되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성실히 사는 난쟁이들의 방패막이가 되길 바랐다. 지금의 난쟁이들의 꿈도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미래일까?
저문 하늘에 뜬 별들이 빛을 밝혀 왔다. 별빛은 세기 벅찬 시간과 재기 힘든 거리를 달려와 우리에게 닿는다고 한다. 온몸으로 빛을 내고 있지만 가만히 보아야 눈에 들어오는 별, 별, 별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어둠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여기에 닿은 것이다. 작가 조세희와 김중미는 마치 별을 찾듯 가만히 보아야 보이고 가만히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했다. 단순히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불행을 회피하는 난쟁이들에게, 자신이 난쟁이가 아닌 척 외면하는 우리모두에게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 삶을 보여줬다.
몇 천만년을 두고 싸웠지만 인간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하고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