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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an 10. 2024

태어난 우리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를 함께 읽으며

 “엄마는 왜 둘을 낳았어요? 나만 낳던지, 아니면 나를 낳지 말지! 온이 때문에 이렇게 괴로울 거면 다른 집에서 태어나는 게 나아!”

 매운맛으로 감정을 분출하는 아홉 살 인이.

 “다른 집에서는 다른 애가 태어나지, 너는 우리 집에서밖에 못 태어나.” 한두 번 겪어보는 캡사이신이 아닌지라 ‘오랜만에 나오셨네.’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무심히 대답했지만 나 또한 모르는 것이 아니다. 둘도 없는 친구인 양 부대껴 놀다가도 어느 순간 미워져, 같은 집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얼굴이 누구보다 싫은 그 마음. 가족이란 이름의 뜨거운 끈끈함.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언니 인이의 말을 듣는 온이의 얼굴에는 이제 민망함과 슬픔이 드리워 있다. 온이를 무릎 위에 앉혀 끌어 안자 인이의 반격.

 

 “그럼 그냥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아.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운 맘, 힘든 맘, 무서운 맘 다 없잖아!”


 그렇지. 모든 괴로움은 욕망에서 오고, 욕망은 불안으로 야기되며, 모든 불안은 결국 소멸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니, 생명은 곧 불안 그 자체, 태어나지 않으면 욕망도, 불안도, 괴로움도 없겠지. 너는 아홉 살에 그것을 알게 되었구나!


 다행히 우리 집엔 사노 요코님의 아름다운 책 ‘태어난 아이’가 있으니 그걸 갈등 탈출 카드로 쓰려는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네, 이번 방학에는 꼭 책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 없이,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맞아, 인이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또 있었지.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대. 옷을 안 입어도 춥지 않고 사자를 만나도 두렵지 않고, 개에게 물려도 아프지 않았대.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았대. 인이 말대로, 괴로움, 힘듦, 무서움을 하나도 느끼지 않았대. 그런데 그 아이가 어느 날 태어나기로 마음먹었대.

 

 왜요?


 자기랑 같이 개에게 물린 아이가 있었거든. 그 애가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아파요!” 하니까, 그 아이의 엄마가 그 애를 꼭 안고 눈물을 닦이며 반창고를 붙여주었대. 그걸 보고 태어나기로 결심하게 돼.


 두 아이는 어느새 머리를 맞대고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태어나서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떻게 됐는데요?


 그 아이는 아주 까다롭고 짜증이 많은 아이였대. 더울 때는 덥다고, 추울 때는 춥다고, 피곤할 때는 졸리다고, 눕히면 안 잔다고 마구 울어댔대.


 졸린데 안 자고 싶은 거 나랑 똑같네! 근데 난 그렇다고 울지는 않아.


 맞아, 말로 잘 표현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너희도 말을 배우기 전에는 울음으로 표현했어. 그럴 때는 엄마가 창문을 열어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안아주고 책을 읽어줬대. 그래서 투덜거리면서 잠들어 매일 태어난 하루를 다시 살아갔대.


 인이와 온이는 조용하다. 태어난 아이의 마음으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중.


 “온아, 아까 내가 만들기 하는데 니가 자꾸 방해해서 내가 하지 말라는데도 계속했잖아. 그래서 니가 싫은 맘이 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니가 속상할까 봐... 그래서 아빠한테 귓속말로 할려고 한 건데 니가 나 나쁘다고 해서 너무 화가 났어. 나랑 아빠가 귓속말해서 싫었지? 미안해.”


 온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대꾸가 없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인이는 말한다.

 “온이 너는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아. 잘 들어줘서 고마워.”


 온이는 이제 내 무릎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언니, 아까 그거 뭐야? 나 만져 봐도 돼?”

 인이는 온이의 방해를 받으며 완성한 캐릭터 스퀴시를 온이에게 건네준다.

 “온아, 내가 고양이 할 테니까 너 토끼 할래? 저 상자가 집이야.”

 거실로 쪼르르 달려가는 둘.


 살면서 갑자기 찾아오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게 해주는 서로가 되길. 그런 너희를 잘 태어나게 한 내가 되길. 그리하여 매일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시 태어나고 뜨겁게 끈끈하길.


 다툼 끝에 미안하고 고마워 쪼르르 함께 달리다 넘어지면 서로에게 반창고를 붙여주는, 우리의 잘 태어난 하루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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