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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과학자 Jul 16. 2021

백신이야기-인두법(Variolation)

신의 선물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의 전설에 의하면 신 God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신은 첫째 아들 샤포나(Shapona)에게는 땅을, 둘째 아들 샹고(Sango)에게 하늘을 위임했다. 샤포나는 인간들에게 곡식을 주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게 했다. 샤포나가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는 방법은 그들이 심고 거둬 먹은 곡식 알갱이들이 피부에 알알이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두창 바이러스(Variola virus)에 의한 질병인 천연두는 요루바족에게는 샤포나, 즉 천연두 신의 분노와 징벌이었다.    


천연두 환자/ 두창 바이러스



인간은 오래전부터 천연두와 함께 살아왔다. 호흡기를 통해 두창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온몸에 발진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발진은 수포로 변해 때로는 고름이 가득 찬다. 고열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얼굴엔 보기 흉한 흉터가 남거나, 실명, 관절염, 골수염 등의 합병증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힘들게 싸워 이긴 존재가 박테리아인지 바이러스인지 그 존재 조차 모를 때부터 그들은 그 죽음의 그림자를 신에 의한 징벌이라고 믿었다. 인도를 비롯한 힌두교 문화에서는 시탈라 마타(Shitala Mata)라는 천연두 여신이 등장한다. 그는 한 손에는 질병을 몰고 다니는 빗자루를 한 손에는 질병을 낫게 해주는 냉수 단지를 들었다. 여인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탈라 마타를 모시는 사원에서 빌고 또 빌었다. 중국에서는 변덕스럽고 질투가 많은 천연두 여신인 두진낭랑(痘疹娘娘)이 있다. 예쁜 얼굴을 좋아하는 두진낭랑를 피해 명절이면 못생긴 가면을 쓰고 자는 풍습이 생겼다.


폭스바이러스과(Poxviridae) 오르토폭소바이러스 속(Orthopoxovirus)에 속하는 두창 바이러스(Variolo virus)의 기원은 과학계의 끊임없는 화두 중 하나이다. 과학자들은 두창 바이러스 유전자의 진화적 분석과 자연 숙주의 분포 등을 조사한 결과 두창 바이러스는 동아프리카에서 3천-4천 년 전에 출현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창 바이러스의 유전자 계통발생학적 분석에 따르면 낙타두바이러스(CMLV)와 설치류를 감염시키는 타테라두바이러스(TATV)와 함께 공통 조상으로부터 출현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숙주에 특이적인 바이러스이며 치사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자들은 그 공통 조상을 다양한 종에 감염되는 우두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로부터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타테라두바이러스의 숙주인 설치류(naked-sole gerbil)의 서식지, 낙타두바이러스의 숙주인 낙타가 아프리카로 수입된 지역과 시기, 그리고 약 4천 년 전 이 지역에 인류의 대규모 정착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가지 지정학적, 문화적 공통점을 기반으로 아프리카 동쪽 끝의 뾰족하게 나와있는 지형(Horn of Africa),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을 두창 바이러스의 출현장소로 추측하고 있다.



오르소폭스바이러스의 계통 분석.

두창 바이러스(VARV-variola virus)는 테트라두 바이러스(TATV—taterapox virus), 낙타두 바이러스(CMLV—camelpox virus)와 계통적으로 가까운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의 공통조상은 우두 바이러스 (CPXV—cowpox virus) 종류로 예상된다. (HPXV—horsepox virus, MPXV—monkeypox virus, MA VARV—variola minor alastrim strains, WA VARV—West African variola virus strains, WA MPXV—West African monkeypox virus strains)



3천 년 전의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머리에는 이 두창바이러스의 흔적으로 보이는 흉터가 남아있다. 전 세계에 산재해있는 천연두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면, 고대 인도를 거쳐 중국에 전파가 되고 기원전 1세기에는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은 천연두로 인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아랍의 군대가 아프리카로부터 천연두 바이러스를 유럽으로 옮겨왔다고 이야기한다. 산발적인 풍토병에 지나지 않았던 천연두는 중세시대 이후 유럽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십자군 전쟁을 통해 16세기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천연두는 신대륙으로 옮겨가 북미 원주민들을 거의 말살시켰다. 


천연두의 흔적 뒤에는 신의 징벌에 대항하는 민간요법이 등장했다. 존재도 몰랐던 병에 대한 백신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10세기경 중국에서는 경미하게 천연두를 앓고 있는 사람의 천연두 딱지를 갈아 코로 흡입하는 방법으로 두창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유도시켰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점막면역을 유도하는 방법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17세기 인도 뱅골 지역에서는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날카로운 쇠바늘로 찍어 팔이나 이마에 찌르고 쌀로 만든 페이스트를 바르는 방식으로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유도했다. 아랍인들은 팔에 상처를 내고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넣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이러한 방식들을 인두법(Variolation)이라고 불렀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에서 행해지던 인두법은 서양의학과 만나 현대 백신의 기반이 된다. 그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레이디 몬태규는 천연두로 동생을 잃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본인도 천연두에 감염되었다 살아났다. 천연두는 그의 얼굴에 흉터를 남기고 속눈썹을 잃게 했다. 글쓰기와 모험심이 강했던 그는 중매결혼을 피해 ‘에드워드 워틀리 몬태규’와 결혼을 한다. 그의 남편이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터키)의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남편과 함께 영국을 떠나 터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여행기와 편지를 남겼다. 터키 전통 옷을 입고, 하렘과 목욕탕을 방문하고,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는 스스럼없이 콘스탄티노플의 여성들과 어울렸으며, 그를 통해 여성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인두법을 접하게 된다. 콘스탄티노플을 떠나기 전인 1718년, 그는 영국 대사관의 의사 찰스 메이틀랜드와 터키인 노파를 통해 5살 난 아들에게 인두법을 시행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1721년 천연두가 영국을 위협했고, 그는 그의 딸에게도 인두법을 시행했다. 레이디 몬태규의 두 아이에게 인두법을 행했던 의사 메이틀랜드는 1723년 인두법에 대한 경험을 책(Account of inoculating the smallpox)으로 출판했다. 


(레이디 메리 워터리 몬태규)



웨일스의 공주와 친구였던 레이디 몬태규는 왕실에 인두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의사인 한스 슬론 경은 1721년 ‘왕실 실험’을 조직해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6명에게 인두법 임상 시험을 하게 된다. 그 후 6명은 모두 석방되었고, 그중에 한 명은 천연두에 감염된 아이와 한 침대에서 6주간 함께 생활을 하도록 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확인했다. 캐롤라인 공주는 고아들에게 인두법 임상시험을 실시하게 했고, 이 시험이 성공한 이후 왕실의 공주들에게 인두법을 시행했다. 1729년까지 876건의 추가 접종이 이루어졌고 그들 중 천연두로 사망한 사람은 17명에 불과했다. 왕실은 1746년 ‘런던 천연두 접종 병원 (small-pox and inoculation hospital)’을 설립해 인두법을 무료로 시행했다. 영국 사회의 인두법 접종 기술은 의료 행위의 혁신을 가져왔으며, 임상적인 보고서와 토론으로 영국의 과학적 사고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민간요법으로 전수되었던 인두법은 영국의 의료 시스템을 통해 공중보건을 위한 대규모 예방접종으로 발전하게 된다. 의사인 존 헤이가슨의 ‘’ 영국의 천연두 박멸 계획 스케치”라는 책에는 전국적인 예방접종과 함께 환자 격리, 잠재적 오염 제거, 각 구역을 감독하는 검사관, 가난한 사람의 격리 규칙 준수에 대한 보상, 규칙 위반에 대한 벌금, 항구의 선박 검사 그리고 기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1721년 미국 보스턴에서는 천연두의 대규모 유행이 발생한다. 보스턴 인구 10,600명 중 5,759명이 감염되고 그중 844명이 사망했다. 보스턴의 청교도 목사이자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코튼 매터와 의사 잡디엘 보일스턴은 이 천연두 유행을 통해 인두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매터 목사의 아프리카 출신 노예 오네시무스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두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스턴 내의 의사 14명에게 편지를 썼다. 보일스턴이 그 편지에 응답했고, 마침내 1721년 자신의 아들에게 처음으로 인두법을 시행한다. 그 후 노예들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한 보일스턴과 매터는 예방접종 캠페인을 시작한다. 천연두에 감염된 4,917명 중 842명이 사망할 때 인두법을 시행한 287명 중에서는 2%만이 사망했다. 이 예방접종 캠페인을 통해서 그들은 대조군과 시험군의 사망비율 측정 등 정량적인 데이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는 첫 번째 수치 분석을 사용한 임상시험 평가가 되었다.



(잡디엘 보일스턴이 쓴 인두법에 대한 보고서)



백신의 역사에서 인두법은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우두법)이 나오기 전의 미완성으로 비치곤 한다. 실제 피부를 절개해 천연두 종기의 고름을 주입하던 방식은 천연두를 경미하게나마 앓게 했으며, 인두법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복기간이 길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두법은 종두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공중보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었고, 예방접종과 임상시험에 대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했다. 레이디 몬태규와 코튼 매터 목사의 과학적 사고를 통한 급진적인 시도가 없었다면 제너의 종두법부터 시작된 천연두 박멸의 여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길어졌을 수 있다. 


인두법은 신의 징벌로 여겨지던 천연두라는 질병을 신에게 대항하는 민간요법에서 공중보건을 위한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을 완성하게 한 ‘신의 선물’이 되었다.



본 글은 APCTP 크로스로드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para4=0022&id=1660&Back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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