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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정체성을 다잡다.

내가 나를 위대하다 재평가하기

by 마음은 줄리어드

어제저녁 8시 반 독서 시간. 독서 시간에 책을 읽다 말고 기타를 연습하고 있는 둘째에게


"악기는 이제 내일하고 책 읽는 시간엔 책을 읽자."라는 엄마에게


"엄마는 왜 살림 안 하고 음악해?"


어안이 벙벙. 지혜롭게 답변을 못 하고 그만,


단순히 놀이나 취미가 아니라 엄마도 목표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고자 충동적으로 "엄마 취미로 하는 거 아냐. 엄마 3년 뒤에 음대 갈 거야." 해버렸네. 어쩔. 이제 진짜 가야 하나? 남편이 학교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랬는데 쩝.


나는 어제 기타를 치는 아이에게 책 읽기를 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하나?


내가 뭐라고 답했어야 할까? 사실 그때 난 악기 연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고 셋째 책 읽어주고 있긴 했는데...


어렵다. "나도 취미라는 게 있다고?!" 그랬어야 하나?


살림하지 않고, 돈도 벌지 않는 나는 베짱이인가? 살림도 돈벌이도 하지 않는 순간의 나를 어떻게 설명하지?


사실 뜨끔하긴 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바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내가 악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안의 자연스러운 음악 교육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도 집안일을 덜 하고 악기 연습을 하는 내가 떳떳하지 않았나 봐.


오늘 다시 알려줘야지. 네 명 곁을 지켜주는 거, 엄마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설거지, 빨래, 청소를 꼭 하고 있지 않는 모든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너희를 지켜주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이따금 나 자신이 한 줄기 흐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체처럼 충일하고 단단하고 안정된 자아라는 개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보다는 한 줄기 흐름이 나는 더 좋다. 이 흐름은 인생의 주제곡처럼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계속 흐르고, 전성기에도 화해나 조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흐름은 점점 '멀어지고' 제자리에서 벗어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항상 움직이고 있다. 시간 속에서, 장소 안에서, 온각 기묘한 형태로. 그렇다고 반드시 앞으로만 움직일 필요는 없다. 이쪽저쪽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중심 되는 하나의 주제가 없이 대위법적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p.486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살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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