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한다. 관계 공포증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대놓고 은둔형 외톨이인 건 아니다. 막상 사람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긴다. 아쉬워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나에게 힘든 건 사람을 만나기 전과 후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초조해진다.
"혼자 있고 싶어."
결국 약속을 깬다. 전화하는 것조차 두려워 문자를 남긴다.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전화를 못한다. 전화를 하면 괴물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두렵다. 살짝 거짓말을 섞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 약속을 깨고 나면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었다. 더 이상 약속해놓고 안 지키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이제는 거짓말로 약속을 미루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남을 약속하고, 버티고 버티다 문자를 보낸다. 사정이 있어서 이번 만남은 어렵겠다고, 다음에 꼭 만나자고.
고등학생 시절, 대입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혼란스러워졌다.
"난 뭘 하며 살고 싶지?"
엉뚱한 대답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사람 안 만나는 직업"
장래 희망란에 '연구원'이라고 적었다. 기왕이면 나무나 산속의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 수목원 같은 데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기라면 혼자 있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얄궂게도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간호학과를 추천하셨다.
"선생님! 그건 제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과에요. 간호학과라뇨!! "
담임선생님은 내가 생물을 좋아하니 간호학과가 딱이라며 밀어붙였다. 사람 만날 일 없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다. 점점 삐뚤어졌다. 쌈닭 간호사가 되어갔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정말 내 인간성이 파탄나버릴 것 같아 사표를 냈다. 대학원으로 도망을 갔다.
아이러니하게 그다음 선택한 직업이 보건교사였다. 내 발로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는 꽤 버텼다. 10년! 그리고 또 도망쳤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혼자 있고 싶어."
강릉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카페 겸 컬러 세러피 상담센터를 열었다.
미친 거지! 이제 아예 대놓고 사람들을 깊이 만나보겠다는 거야? 미쳤어! 미쳤어!!
간호학과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선택은 나를 점점 더 사람들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간호학과를 선택한 건 담임선생님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쳐도 그다음, 그리고 그다음 선택은 대체 뭐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미쳐버린 거야? 선택의 순간에만 내가 살짝 돌아버리는 건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내가 내 안에 있는 걸까? 혹시 이거 업보야?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아직 어디서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냥 지금도 피해 다닌다. 사람을 만날 기회를. 그러면서 또 기다린다. 사람과 만날 기회를.
알 수 없는 나의 미친 선택 덕분에 점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잠과 명상으로 자주 도피한다.
깨면서 "꿈이었구나!"라고 알아채는 순간 마음을 채우는 안도감을 좋아한다. 현실에서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꿈이었구나!"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없으니.
명상을 하며 온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은 나의 정신줄을 붙잡아준다. 그런데 가끔 그 명상 속에서 나오기 싫은 때가 있다. 영영 그 속에 머무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할머니를 만난 날도 그랬다. 그냥 그곳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었다. 그렇게 새벽녘 어스름한 공기 속에 녹아내려 그냥 그곳이 되어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으로 돌아와 관계의 공포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할머니의 대답이 나를 다시 명상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했다.
"회전문이란다."
현실을 살아야만 존재하는 곳, 회전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
회전문은 돌고 돈다. 회전문 안에서 빙빙 돌다 보면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된다.
빙빙 도는 회전문 안으로 쏙 들어가서 반 바퀴를 돌면 할머니가 계신 초원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반 바퀴를 돌면 이곳,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회전문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아직은 좀 더 용기를 내볼만한 것 같다.
회전문이 나의 관계 공포증을 해결해주지 못해도 좋다.
점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나의 알 수 없는 선택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회전문을 통해 언제든 할머니에게 가서 쉬다 올 수 있으니까!
회전문이 나를 현실에 살게 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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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밤하늘, 깊은 명상, 고차원의 마인드, 이상주의자, 초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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