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사기 당하고 싶은 마음

by Redsmupet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황당한 기사를 봤다.

"소원 들어주는 요술램프" 사기 사건. 기사 속 주인공은 인도의 한 의사였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그런 걸 1억 원이나 주고 사나 믿기지가 않았다. 가짜 뉴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뉴스는 진짜였다. 보도하는 매체마다 금액이 좀 다르긴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1억 7000만 원가량에 이 램프를 샀다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5100만 원가량에 샀다고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1억에 그걸 사?"라던 놀라움이 웃기게도 5100만 원이라는 글에 "그나마 다행이네"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기가 막힌 건 어쩔 수 없었다.

의사가 경찰에 신고를 한 건 램프를 아무리 문질러도 지니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램프를 문질렀을 때는 내 눈앞에 분명 지니가 나타났어. 아라비안 나이트가 그냥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실화였던 거야!! 그런데 지니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왜 내 앞에 지니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그는 도대체 지니에게 무슨 소원을 빌고 싶었던 것일까? 저렇게 큰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지니를 손에 넣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마음이 진짜 지니와 지니 분장을 한 사기꾼을 분별하지 못하게 그의 눈을 가려버린 것일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남들은 다 아니라는데 내가 보기엔 진짜 같아서 계속 고집을 부리게 되는 때가 있다.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하니 의심이 되긴 하지만 믿고 싶어서 믿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해버리는 순간도 있다.

아닌 걸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걸 선택할 때도 있다.


믿기로 작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믿어온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순간 나를 부정하게 되는 때, 그냥 믿기로 작정하는 것 같다.

믿어온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순간 내가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려울 때, 두 눈을 감아버리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게 나에게 더 유리한 것 같을 때, 모르는 척해버리는 것 같다.

진짜는 가지기 힘들어서 의도적으로 가짜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램프 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정말 꿈에도 몰랐을까? 자기 눈 앞에 나타난 지니가 가짜라는 걸.

정교한 명품 짝퉁도 금세 판별해내는 세상에서 진짜 지니와 짝퉁 지니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그가 믿은 게 정말 사기꾼 일당이었을까? 아니면 요술램프가 진짜이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었을까?


나라면 후자였을 것 같다. 나의 마음이 믿고 싶은 대로 들었을 것 같다. 믿고 싶은 대로 봤을 것 같다. 믿음에 위배되는 정황들은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모두 삭제해버렸을 것 같다. 의심하는 순간 내가 바라던 현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테니.


나는 잘 믿는 편이다. 게다가 한번 믿으면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끝까지 가보는 편이다. 사기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랄까. 실제로 소소한 사기도 많이 당했다. 엉뚱한 물건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환불하러 가기도 하고, 눈물이 질금 나오게 혼나기도 참 많이 혼났다. 부모님 속도 속이었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속상하고 억울했다. 왜 자꾸 그걸 사기당한 거라고 말씀하시는지 답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가 아닌 것 같았다. "아~ 그거 정말 사기였네!"라고 느끼는데 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십 년 정도?


내가 진짜라고 믿었던 게 가짜임을 인정하는데 필요한 건 용기였던 것 같다. 나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 어떤 미사여구도 변명도 붙이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


가짜를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나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구나!"


나의 욕망은 이것이었다.

나를 알아주는 타인.


글로 쓰고 보니 좀 창피하다. 하지만 이게 가짜를 진짜로 믿어버리게 만드는 나의 욕망이었다. 그게 가짜라는 걸 알려주는 모든 단서에 눈 감아버리게 만드는 나의 욕망이었다.


나의 욕망은 나를 농담과 사기 사이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내가 가진 짝퉁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 앞에서 농담을 할 것인가, 사기를 칠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그런 때이다.

신용카드를 만들면서 받은 사은품이 있었다. 잘 만든 짝퉁 루이뷔통 가방이었다. 가볍고 사이즈도 적당해서 잘 들고 다녔다.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 놓은 내 짝퉁 루이뷔통 가방을 보고 한 친구가 화들짝 놀란다.


"야! 이게 얼마 짜린데 이렇게 막 굴려?"


이 순간 잠깐의 망설임, '카드 아줌마가 줬다고 말할까? 그냥 진짜인 척할까?'


농담을 선택한다.

"응? 이거? 요새는 카드 아줌마가 사은품으로 루이뷔통 가방을 주더라~"


농담과 사기, 어떤 쪽이든 이미 나의 욕망은 충족된 상태다.

'내가 들고 다니면 다 진짜처럼 보이나 봐!'라는 마음, 인정받았다는 느낌.

나의 욕망.


<핑크 컬러의 키워드>


조건 없는 사랑, 자기 수용, 자비

여성성, 따뜻함, 보살핌, 친절, 상처 입기 쉬운

사랑을 갈구하는,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의 핑크는 아직 스스로를 수용하기보다 타인의 인정을 갈망한다.

내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이거 하나만'이라며 조건을 붙인다.

램프요정이 진짜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인도의 어떤 의사도 나와 같은 핑크가 아니었을까?


"지금 내 인생에 지니가 가져다주는 건강과 부, 행운만 더해진다면 완벽할 거야!"


Photo by 홍윤성



핑크가 끌리는 날, 당신에게는 어떤 키워드가 와 닿나요?

당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골라서 당신의 색깔 있는 하루를 글로 표현해보세요.


<핑크가 끌리는 당신의 체크리스트>

A. 조건 없는 사랑, 자기 수용, 자비

1. "지금 나의 모습이 나의 베스트 버전 Best Version이다"라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가?

2. 나의 장점과 단점, 성공과 실패 모두 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인가?

3. 나는 나에게 자비로운 편인가, 가혹한 편인가?


B. 여성성, 따뜻함, 보살핌, 친절, 상처 입기 쉬운

1. 나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인가?

2. 사랑에 빠진 상태인가?

3. 무방비상태로 마음을 열고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C. 사랑을 갈구하는

1. 지금 나에게 '연애'가 가장 중요한 이슈인가?

2. 내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한가?

3. 사랑받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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