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파마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반나절이 미용실에 묶인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두려운 건 아니다. 그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게 두렵다.
서너 시간 넘게 내가 바라보고 있어야 할 커다란 거울이 부담스럽고, 거울에 비친 미용사의 얼굴과 내 얼굴을 바라보며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어색함'이다.
어색한 느낌이 주는 불편함이 싫다. 어떻게든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데 뭐라도 억지로 끄집어낸다. 입 밖으로 억지로 가지고 나온 말이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무마해주면 다행인데 그 말 때문에 어색함이 더해지면 그땐 정말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도망가는 건 쉽지가 않다. 내 머리에 미용사의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색함을 좀 덜어내면 사는 게 더 편해질 것 같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심지어 우리 부모님에게도 어색함을 느낀다. 내 동생들에게도 어색함을 느낀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 있어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 세상에 단 한 사람, 남편밖에 없다. 딸들도 사춘기가 되니 가끔은 어색하다.
인터넷을 뒤져봤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나 질문들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함이라는 감정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일단 안심이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서. 또 한참을 뒤지다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The Sceince of Awkwardness 어색함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었다.
어색함과 수줍음이라는 감정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바탕으로 인간이 '어색함'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그저 인류 진화의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정상적인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 동영상에서 이런 말을 한다.
"어색함을 느낀다는 건 당신이 사회 교류를 이해하고 부드럽게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어색함을 잘 느끼는 사람들을 EEE라고 말한다. EEE는 쉽게 공감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Easily
Empathetically
Embrrassed
공감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요소다. Matthew Feinberg 등(2011)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공감할 줄 알고 상황에 따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공감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지나치면 타인을 배려하는 걸 넘어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까지 타인에게 내어주게 된다. 내 자리까지 타인에게 내어주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진다. 그때 '나'는 그냥 'self자아'가 아니라 'self-consciousness 자의식'이다. 타인을 보듯이 내가 나를 본다. 나를 보는 시선이 나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다. 내 마음은 사라지고 타인의 마음만 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다.
동영상에서는 이렇게 EEE가 균형을 잃을 때 'Sonder'를 떠올리라고 한다. 'Sonder'는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 애매한 슬픔의 사전> 이 만든 신조어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세상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나의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그의 세상에서는 그가 주인공이며 나는 조연일 수도 있고 일개 엑스트라일 수도 있다. 아예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의 시선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것이다. 생각만큼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균형인 것 같다. EEE를 갖춘 채 Sonder를 잊지 않을 수 있는 균형.
공감을 하는 게 눈치를 보는 걸로 변질되어 버리지 않는, 부끄러움을 느끼되 부끄러움과 비굴함을 구분하는, 부끄러움을 정말 느껴야 하는 순간에만 느낄 줄 아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균형 감각과 어울리는 컬러가 있다.
올리브 그린!
그린과 옐로를 섞으면 올리브 그린이 된다. 그린은 가슴을 상징한다. 타인의 마음이 들어올 수 있는 가슴의 공간이 그린이다. 반면 옐로는 '나'를 상징한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 그 소중한 '자아'를 상징한다. 타인에게 내어주는 마음과 자아 사이, 그곳에 올리브 그린이 있다. 거기는 바로 EEE와 Sonder 사이이다.
<올리브 그린 컬러의 키워드>
올리브 나무, 올리브 열매, O-live(오! 삶이여), 쓰디씀을 겪다, 죄책감, 희망
여신의 지혜, 여성적 리더십, 개방성, 유연성, 용서, 실천적
올리브 그린이 말하는 여성적 리더십이란 EEE와 Sonder가 따로 놀지 않게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걸 알았으니 내일은 파마를 하러 갈 수 있으려나?
올리브 그린 컬러가 끌리는 날, 당신에게는 어떤 키워드가 와 닿나요?
당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골라서 당신의 색깔 있는 하루를 글로 표현해보세요.
A. O-live(오! 삶이여), 쓰디씀을 겪다, 희망
1. 지금 나는 인생의 쓰디씀을 겪는 중인가?
2. 지금 너무 힘들어서 막막한가? 앞이 보이지 않는가?
3. 무언가 힘든 일이 있는데 애써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B. 여신의 지혜, 여성적 리더십
1. 나는 나와 다른 것 혹은 낯선 것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인 사람인가?
2. 나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편인가?
3. 나는 고집에 센 편인가, 유연한 편인가?
4. 타인을 잘 용서하는 편인가?
5.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잘 용서하는 편인가?
Matthew Feinberg 등(2011). Flustered and Faithful : Embrrassment as a signal of prosocia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