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생은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때도 동생은 내 기억과 다른 우리의 기억을 말했다. 나 때문에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내 동생이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쏟아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며칠 전 오래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네 글 잘 보고 있어. 좀 놀랐어. 네가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 줄 몰랐어, 항상 편해 보여서. 네가 쓴 글 보면서 너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같아. 좋다!"
기억은 밖으로 나온 적 없는 타인의 마음을 담고 있지 않았다. 나의 기억도 타인의 기억도 그저 자기 마음만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나를 어떤 시간에 묶어둔 기억들, 그것도 어쩌면 사실이 아니라 나의 마음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스토리가 나의 기억이 되어 수많은 시간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상처라고 말하는 기억,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렌지 컬러의 키워드>
깊은 기쁨, 열광, 지복, 성(sexuality)
본능적 지혜, 심오한 통찰
상처, 트라우마, 쇼크, 타임라인, 놓아버림(Letting go)
의존성, 상호의존성, 사교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가 나와 다른 기억을 말한다.
"내가 너 때문에 우리 엄마한테 잔소리 엄청 들었던 거 알아? 엄마가 나 좀 잘 봐달라고 우리 담임선생님한테 촌지도 주고 선물도 주고 엄청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너만 예뻐했잖아. 너네 엄마는 학교에 한 번도 안 갔는데."
3, 4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우리 반은 반 전체가 합주부였다. 나는 내심 아코디언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멜로디언을 주셨다. 속상했다. 내 덩치가 너무 작아서 내 능력도 덩치만큼 작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선생님이 미웠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은 왜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조막만 한 아이, 목소리도 작은 아이, 그나마 말수도 적은 아이, 그래서 선생님 눈에는 내가 안 보이는 건가 싶었다. 그 생각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점점 더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출석을 부르지 않으면 내가 교실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아이.
그런데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내가 그때 정말 그런 아이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기억 속에서 나는 존재감이 확실한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이 편애하는 아이였다.
뭐가 이렇게 안 맞는담?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는데 기억이 달랐다. 그런데 친구의 기억, 그 속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게 영 싫지 않았다. 친구의 말속에서 되살아난 어린 시절의 나는 이상하면서도 꽤 괜찮은 아이였다. 내가 갖고 싶던 모습을 그 아이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파랑새 얘기랑 비슷하잖아.
결국 내가 갖고 싶었던 모습이 나였어? 빙빙 돌아서 도착한 게 결국 나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나는 그런 모습을 가질 수 없다고 좌절하고 상처 받았던 시간들은 그럼 뭐야?
기억의 장난.
기억은 그걸 맹신하는 사람에게 자비롭지 못한 것 같다. 나를 우쭐대게 만드는 기억이든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기억이든 기억을 맹신할 때 우리는 기억의 장난에 휘말리게 되는 것 같다. 가벼운 장난은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억이 파놓은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리면 기억의 장난에 갇혀버리게 된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평생을 지내기도 한다.
나도 그 구덩이에 몇 번은 빠졌던 것 같다. 그때마다 그렇게 깊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타인의 기억 덕분이었다. 나를 구덩이로 밀어 넣은 나의 기억과는 다른 타인의 기억이 던져준 밧줄을 타고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맞아~ 그걸 내가 잊고 있었네!"
이 한마디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 제각각인 내 모습들은 그 자체로 모두 나였다.
오렌지 컬러가 끌리는 날, 당신에게는 어떤 키워드가 와 닿나요?
당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골라서 당신의 색깔 있는 하루를 글로 표현해보세요.
A. 깊은 기쁨, 열광
1. 나는 얼마나 활동적인 편인가?
2. 나는 평소에 얼마나 명랑한 편인가?
3. 내 안에 주체할 수 없는 흥이 존재하나?
B. 본능적 지혜, 심오한 통찰
1. 나는 나의 직감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2. 내가 지금 혹시 나의 느낌이나 감각에서 비롯되는 직감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C. 상처, 트라우마
1. 지금 나는 어떤 이유로 상처 받았는가?
2. 어떤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
3. 무엇이 나에게 충격을 주어 휘청이고 있는가?
D. 타임라인, 놓아버림(Letting go)
1.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계속 떠오르는가?
2. 떠올리기 싫은 상처나 트라우마를 마음 깊이 묻어두지는 않았는가?
3.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E. 의존성, 상호의존성, 사교적
1. 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편인가?
2.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주려다 지쳐있는가?
3. 뭔가 결핍된 느낌, 채워지지 않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