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이름을 바꿨다.

결국 승자는 며느리였다.

by Redsmupet

"개명하자."

나의 평생소원을 엄마가 말한다.

"정말? 나 이름 바꿔도 돼?"

엄마는 나에게 이름 잘 짓기로 소문난 작명소를 알려주었다.

"아빠도 허락한 거야?"

엄마 혼자만의 생각일 것 같아 살짝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아빠도 허락을 했단다. 의외였다. 개명 전 나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한자로 지은 이름은 향기 향香, 아들 자子였다. 많고 많은 한자 중에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저 두 글자를 제일 좋아하신 걸까?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지만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엄마를 처음 엄마로 만들어 준 아이, 첫 딸의 이름이 영 내키지 않았던 엄마는 시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고 한다.


"내 딸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는 없어요!"


안타깝게도 엄마의 반항은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기 바로 전 날 엄마는 아빠와 함께 가서 '향자'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엄마가 좀 더 버티지!

엄마가 이겼으면 얼마나 좋아!

40년 가까이 평생 나를 따라다닐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름을 바꾼 건 나의 불운이었다.

웅덩이에서 나오는가 싶으면 또 다른 웅덩이에 빠져버리는 딸을 보며 고집 센 아빠가 엄마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안 좋다는 말,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엄마는 사실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엄마가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말할 때 문득 스쳤던 생각이다. 나만큼 엄마도 그때 버티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걸까, 꽁한 마음을 나만큼 엄마도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내 이름은 내 이름이기도 하지만 엄마에게는 누구 엄마로 불리게 될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바꾼 덕분인지 내 인생의 날씨가 개기 시작하는 타이밍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바꾸고 정말 내 생의 날씨는 온화해졌다.

이름이야말로 제 성질대로 붙여져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길,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 세상의 틀에 갇히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에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기싸움에서 이긴 시아버지의 전리품 같은 이름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내 이름을 내가 선택했다.

나의 이름을 내가 선택하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줄 것을 세상에 요구하는 행위, 그때까지 유예된 통과의례를 치르는 느낌이었다. 옛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함부로 불리지 않도록 '호'를 지었다고 한다. 이름을 새로 짓고 나니 정말 '호'라는 게 그런 의미만 가졌을까 싶어 졌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성장해서 세상에 나갈 때는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자신의 세상을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들도 몰랐을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바이올렛 컬러를 보며 나의 개명 스토리가 생각난 건 '개명' 사건이 나에겐 스스로 선택하는 삶으로 들어서는 관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렛 컬러의 키워드>


변형, 변화, 끝

봉사, 치유, 영성

비탄, 숨겨진 분노, 현실 도피







바이올렛 컬러가 끌리는 날, 당신에게는 어떤 키워드가 와 닿나요?

당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골라서 당신의 색깔 있는 하루를 글로 표현해보세요.


A. 변형, 변화, 끝

1. 지금 내 삶의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가? 몸과 마음 어떤 것의 변화라도 상관없다.

2. 무언가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 앞에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한가?

3. 변화에 저항하고 싶은가?

4.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가?


B. 봉사, 치유, 영성

1. 누군가에게 무엇을 내어줄 때, 봉사할 때 내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가?

2.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마음이 편한 편인가?

3. 요새 부쩍 종교에 관심이 생기는가? 마음을 돌보고 싶어 지는가?


C. 비탄, 숨겨진 분노, 현실 도피

1. 끝나버린 관계, 지나간 나의 과거 등 무언가에 대해 지금 나는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가?

2. 내 안에 숨겨진 분노가 존재하는가? 자신에게 조차 감추고 싶은 분노가 존재하는가?

3.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가? 숨어버리고 싶은가?




사진 : 홍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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