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 이제는 물길을 바꾸는 사람”
햇살이 눈부시게 좋은 정오의 강남역.
나는 발걸음을 강남역 테헤란로로 향했다.
며칠 전 밤의 그 거리에서 느꼈던 묵직함과는 달리,
이번엔 대낮의 분주함 속에 나를 흘려보내고 싶었다.
점심시간,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커피를 들고, 통화를 하며, 무표정하게 걷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거대한 강물 같았다.
그 강물 속에서
나는 마치 강가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조용히 혼자 튕겨 나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보고서를 위해 뛰는 사람도 아니고,
상사의 호출에 뛰어가는 사람도 아니며,
내일 회의를 준비하며 걷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수의 속도에 묻혀 살아오던 한 사람이
흐름 밖에 선 느낌.
나만 정지된 화면 속에 있는 듯,
도시의 리듬에서
잠시 ‘제외된 존재’가 된 듯한 낯선 기분.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불쑥 시큰거렸다.
“저 안에 여전히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여전히 뛰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지쳐 있었을까?”
부러움과 서운함,
상실과 회한,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방인의 감정’이
나의 발끝에 엉켜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엉킴은
다짐으로 천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흐름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지금은
그 방향이 선명하진 않더라도,
나는 내 보폭대로
나만의 속도로
또 다른 물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 2막에서 나는
흐름을 따라 올라갔고,
예고 없이 하산했다.
하지만
그 내려옴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산을 오르기 위한
쉼과 숨고르기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테헤란로의 햇살 아래,
나는 내 마음 속에서도 작게 선언했다.
“세상의 흐름에서 비켜났다는 건,
흐름을 바꿀 또다른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메인 본류속에서 개인이 그 흐름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퇴직이 ‘소외’로만 느껴지던 마음이
그 순간
‘재구성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다시 정렬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결국
어디에 속하느냐보다,
어디로 걸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오늘의 나는
소속을 잃은 대신
방향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