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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Oct 21. 2020

어른의 연애란 달지만은 않다. #4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게 될까? 

우리는 결국 그날 같이 밤을 지새웠다. 서로의 외로움을 껴안듯 불안정한 두 남녀는 위로를 나눴다. 이틀 동안 36시간을 함께한 우리. 그리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남자.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 오히려 다시는 안 볼 사이라고 생각해서 더 편했던 건지. 우리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날이다. 이미 끝이 정해져 있던 이야기. 그렇지만 우리는 그 끝까지 용감하게 같이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더블린에서는 흔치 않은 화창한 날씨가 반겼다.


"Let's have a breakfast together."

(같이 아침을 먹자.)


"Okay!"

(그래!)




우리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이리쉬 브랙퍼스트를 주문했다. 아이리쉬 브랙퍼스트란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아침식사인데 햄, 소시지, 블랙 푸딩, 계란 프라이, 베이크 빈과 빵 그리고 티가 함께 나온다. 아이리쉬 브랙퍼스트라고 해서 아이리쉬들이 매일 아침 이렇게 먹는 것은 아니다. 한가로운 주말 아침이나 조금은 특별한 날(?) 이렇게 먹는 것 같다. 


"This could be the last Irish breakfast for me."

(이건 나에게 마지막 아이리쉬 브랙퍼스트가 될 것 같아.)


"Who knows."

(어떻게 알아.)


정말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빵 위에 녹아든 버터처럼 따사로운 햇살은 내 마음을 녹였다. 우리의 눈은 반짝였고 이제 곧 헤어져서 평생 못 볼 사람으로 산다고 해도 그건 마치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일인 양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이틀간 그와 시간을 보내느라 짐을 다 싸놓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이미 싹싹 비워진 접시를 앞에 두고 언제 일어나야 할지 모른 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누구도 먼저 집으로 향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There's a place that I want to take you to."

(너를 데려가고 싶은 장소가 있어.)

"Where is it?"

(어딘데?)

"Do you want to go?"

(가보고 싶어?)

"Yes."

(응.)


마침내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마음 한편에는 짐을 싸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당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하게 해주는 그의 제안이 반가웠다. 일단은 잊기로 했다. 나에게는 9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더블린 동쪽의 해안가를. 지난밤 그렇게 이야기를 나웠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수다 모드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목적지. 풀벡 라이트하우스(Poolbeg lighthouse)라는 등대였다. 참 별 것 아닌 빨간 등대 하나가 뭐 그리 로맨틱했던 걸까. 푸르른 바다와 빛나는 물결, 맞잡은 손, 뜨거운 입맞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비행 편은 우선 1시간을 날아 런던으로 간다. 그곳에서 2시간을 대기하고 11시간의 비행 끝에 서울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길고 긴 비행.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나. 지난 3일은 나에게 뭐였을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나의 지난 연인과의 관계는... 


한국에 도착한 날 약속을 잡았다. 왠지 이번에는 확실히 끝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3일간의 데이트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그와 나는 어떤 사이인지 몰랐고 미래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것과 별개로 나의 지난 연애는 생명을 다한 것 같았다. 우리는 2년 동안 롱디를 하고 있었고 각자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애매모호한 태도로 서로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헤어져. 이번엔 진짜야."

"그래. 하지만 우리 다시 만날 것 같아."

"아니. 마지막이야. "


우리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만난 그와 나. 우리의 시작도 참 아름다웠다. 때론 너무 뜨거워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 상처는 우리 관계를 끈끈히 이어주는 훈장이 되기도 했다. 나에게 참 잘해준 그였다. 밖에선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에게만은 한없이 다정한 그였다. 


나는 많이 울었다. 뭐가 그리 슬펐을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밤만은 그저 이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시간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일간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마침내 연인이 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아직 끝은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켜봐 주세요:) 


다음 편 보기

https://brunch.co.kr/@lullukumi/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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