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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Oct 27. 2020

뜻밖의 난관, 전 여친 #5

이대로 시작해도 괜찮을까?

한국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지난 5년을 함께한... 이제는 끝나버린 전 연애의 추억도... 외국에서 살며 롱디를 할 때는 몰랐다. 그와의 추억이 많지 않은 줄 알았다. 혹은 내 마음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방안 풍경 눈에 밟히는 물건마다 그와의 추억이 서려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괴로웠다. 시간을 오래 끈만큼 이번 이별은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이제 나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더블린에 있는 그에게서 오는 메시지와 전화였다. 우리는 9시간의 시차를 극복하고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3일간의 인연이 이렇게 계속 이어질 줄 몰랐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했다가는 마음만 아플 것 같아서...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 또 어떤 날은 한국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단다. 이 말만 듣고 나는 이미 그와의 한국생활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나는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Would you like to visit us this Christmas? I will be really happy if you come."

(이번 크리스마스 때 오지 않을래? 네가 온다면 정말 기쁠 거야.)


나는 11월 15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나에게 다시 더블린으로 놀러 오라는 그.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농담인가 싶었다. 


"Christmas is the biggest holiday of the year here. Companies also take a break for two weeks. There will be a lot of fun."

(크리스마스는 여기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야. 회사들도 2주간은 쉬고 재밌는 일이 많을 거야.)


그러니깐 나보고 다시 더블린에 오라는 거다. 와서 1달간 지내면 어떻겠냐고 했다. 비행기표와 숙소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일단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 막 시차 적응을 마친 나였다.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에서의 일상에 나를 꾸겨넣고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 채찍질하지 않으면 다시는 영원히 "서울러"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또 한 달간의 휴식을 주는 건... 죽을힘을 다해 뛸 각오로 이제 막 레이스를 시작한 선수에게 '이번판은 리허설이에요.'라는 말로 맥을 빠지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의 제안이 싫었던 건 아니다. 그와 함께 지내게 된다면 그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너무도 짧았으니까... 나는 조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우리의 달콤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귀여운 한국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를 애칭으로 불렀고 여자 친구가 되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나는 조금 이른 것 같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12월 15일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알 수 없지만 눈앞에 보이는 행복을 좇기로 했다. 변명을 하자면 12월은 어차피 공채시기도 아니니깐. 본격적으로 구직을 하려면 연초는 되어야 할 것 같았고 이렇게 매일 전화기만 붙잡고 사느니 그냥 더블린으로 날아가서 조금 더 그를 만나보는 게 내 마음에 확신을 더해줄 것 같았다.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인지, 내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


여느 때와 같이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핸드폰 건너편에 보이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잘 웃지도 않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어제저녁, 그러니깐 내가 자고 있을 때 전 여자 친구를 만났단다. 서로의 물건을 정리하여 돌려주기 위해 만났다는 그. 근데 어찌 그의 표정에는 상심이 가득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간 자신감 있게 밀어붙이던 우리 관계에 조금 쉼표를 두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 난 일주일 뒤 너를 보러 가기 위해 한국에 온 지 1달 만에 또 15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데?' 싶었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우리의 꿈같았던 시간들이 정말 꿈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지금 헤어지자는 소리를 하는 거야? 얼마 전 너의 여자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냐고 했잖아. 그런데 그 관계를 정정하고 싶다는 이야기지?"

"I just broke up with my ex-girlfriend. But how can I break up with you?"

(난 방금 내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어. 그런데 어떻게 너랑 또 헤어질 수가 있어? 난 방금 이별을 겪었다고....)

"그럼 우리는 뭐야? 그 여자가 다시 만나자고 하면 돌아갈 거야?"

"I don't know. Maybe not."

(모르겠어. 그렇진 않을 거야..)




이 남자는 나를 가지고 논 걸까? 3년간의 연애, 2년간의 동거를 했다는 그. 그 여자를 잊는 게 힘들었던 걸까?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난 날 밤, 그는 자신의 전 여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여자는 중국인이고 나이가 어려서 미성숙한 연애를 했던 것 같다고. 자신은 노력했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그녀는 그의 가족들과도 분란을 조성했단다. 연애가 끝나갈 때쯤 깨달은 사실이 그는 그녀에게 이용당한 기분이 들었고, 그녀를 위해 회사도 주거지도 옮겨가며 헌신했던 걸 후회한다고.


나는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내가 그녀를 닮은 아시안이기 때문에 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걸까?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나를 만났던 걸까? 아니면 그저 그녀를 어떻게든 잊어보려 나를 잠시 이용한 걸까? 수많은 물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카르마라고 했던가... 내가 나의 전 남자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던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듯했다. 그렇다. 갑자기 이런 행복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3일간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마침내 연인이 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아직 끝은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켜봐 주세요:)


1편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lullukumi/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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