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Oct 29. 2020

내 아들 방에서 잘래? #6

국제연애의 황당한 순간

결혼까지 가지 않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짧은 기간 충분한 설렘을 전해준 사람이라면

내 인생에서 한두 달은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과 돈의 문제보다는 

내가 주는 마음의 깊이 그리고 그 후 받게 될 상처의 크기만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어차피 모든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법이니깐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가는 길 

크리스마스가 하룻밤의 마법이듯

우리도 한 달 간의 마법 같은 시간으로만...


2019. 12. 17


이건 내가 그를 만나러 더블린으로 날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쓴 노트이다. 그랬다. 우리 사이에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가족 포함 주변인들에게 한 달간의 여행 계획을 공표했고 비행기표도 사둔 터,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시작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흘려보내는 인연으로 충분하다고. 그만큼이 좋았던 것 같다고...




공항으로 마중 나오기로 한 그는 보이지 않았다. 15시간 마음을 졸이며 날아온 나는 한번 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잘해준 건지. 왜 그렇게 다정했는지. 내 마음을 흔들어 놨는지. 그를 원망하는 나 자신조차 싫었다. 할만치 한 연애, 할만치 한 이별. 이렇게 또 감정에 속아 어리석게 구는 나 자신이 미웠다.


"Hey. I am sorry. I am a bit late. Couldn't park here so I had to travel. How was your flight?"

(늦어서 미안! 이 근처에 주차를 할 수가 없어서 좀 돌았어. 비행은 어땠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한 우리 둘은 차마 포옹도 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행히 나를 데리러 나왔고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 둘만의 공간, 어색한 공기, 갈 곳을 잃은 눈동자의 우리는 그저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집 앞에 다다랐다. 그의 부모님을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더이상 우리 둘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매일 영상통화를 하던 지난날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조용했다. 하필이면 내가 오기 바로 전 그런 일이 있었기에... 둘 중 누구도 먼저 다정하게 대하기가 어색했다. 내 입장에선 전 여자 친구와의 마음 정리가 덜 된 남자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없었다. 사랑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에게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보고 알아가 보겠다고 15시간 비행을 하고 날아온 내가 참... 비참할 뿐이었다. 


"Dinner is ready. Come and seat."

(저녁식사 준비되었으니 와서 앉거라.)


인자한 미소의 그의 어머니는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셨다. 신체적으로 정식적으로 고단했던 나에게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따뜻한 아이리쉬 스튜는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비로소 마음의 문을 조금 열고 앞으로 닥칠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나는 이 집에서 한 달을 보내게 될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나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고, 나 또한 그의 가족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선 환경.. 나는 금방 피곤함을 느꼈고 시간이 늦은 만큼 이제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2층을 안내해주겠다며 앞장섰다.


"Here are two rooms. One is Steve's and the other is an empty room. Which room do you prefer to stay?"

(여기 방이 두 개 있어. 하나는 스티브 방 그리고 또 하나는 빈 방. 어디서 머물래?)


황당한 질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부모님과 같이 사는 이 집에서 우리 둘이 방을 같이 쓰라고? 3초간 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보려고 하다가 답했다. 


"오른쪽의 빈방에서 잘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나의 첫날밤은 깊어갔다.







*3일간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마침내 연인이 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아직 끝은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켜봐 주세요:)


1편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lullukumi/25


이전 05화 뜻밖의 난관, 전 여친 #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