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처럼 쓰러져 버린 남편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벼락처럼 고꾸라져 버렸다. 몸이 쓰러지면서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 그 순간 극도로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면서, 눌린 매트리스처럼 나도 숨이 막혀왔다.
"여보, 왜 이래. 왜?"
죽은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 순간 남편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포효하는 동물의 소리처럼 크고 거칠게 흘러나오는 코 고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코 고는 소리는 혀가 말리면서 기도를 확보하기 위한 남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남편이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상황을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119가 떠올랐다.
요원과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끊기곤 했다. 그럼에도 요원은 침착하게 대응을 잘해 주었다.
“환자 숨은 쉬고 있나요?”
“코 골면서 자고 있어요. 코 고는 소리 들리지요?”
“환자 기도 확보하셔야 합니다. 의식이 있는지, 숨 쉬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코 골면서 자고 있는 것 같으니, 숨도 쉬는 것 아닌가요?”
“빨리 기도 확보하셔야 합니다.”
119 요원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기도 확보’만을 반복했다. 기도 확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가 물었지만, 요원은 기계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 짧은 사건으로 평범했던 우리 가족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뀔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기도 확보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는 적이 당혹스러웠다. 고민의 틈새로 불현듯 아들이 생각났다. 후닥닥 뛰어가서 아들 방문을 벌컥 열었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아들은 벌써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들은 두서없는 내 표정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들이 남편을 안고 기도 확보를 하고 있었다. 숨 고르듯 짧게 들리는 아들의 숨소리와, 힘껏 굽힌 팔에 온몸을 실은 자세로 119 요원의 지시대로 매우 진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119 요원이 1초라도 빨리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움직였다. 현관 밖으로 나가, 5층에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내려놓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 고정해 뒀다. 문 앞에 놓여 있던 신발 세 켤레도 거실 안으로 던져 놓았다. 최대한 이송 동선이 원활하도록 모든 길을 터 둔 것이다. 아직 요원이 도착하기 전이지만 나는 넋 놓고 그들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더디 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낮추기 위함이었는지 병원에 가져갈 것들을 정신없이 가방에 담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지랑 수건 등을 로봇처럼 챙기고 있을 때 마침내, 요원들이 도착했다.
바깥공기가 거실의 숨을 끊듯 다급하게,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요원 두 명이 안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매뉴얼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들것에 남편을 옮겼다. 요원 두 명, 아들까지 장정이 셋이나 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위중한 장면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통곡은커녕 눈물도 나지 않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도 만감이 서렸다. 남편은 산소 호흡기를 장착하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헐떡이는 기계음과 엔진 소리 사이로 날카롭게 울리는 구급차 경보음이 귀를 찌르듯 울렸다. 그 소리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고, 숨조차 조용히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을 때 10여 분도 채 안 돼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모니터와 의료 장비의 기계음, 긴박하게 움직이는 소리들이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서류 작성과 문진 몇 가지를 마친 후, 나는 대기실로 밀려났다. 남편의 상태를 설명받으리라 기대했지만, 담당자는 CT 찍고 결과 나오면 알려주겠다며 단호하게 나를 밀쳐 냈다.
대기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9월 중순 아직은 더운 바람인데도 팔에 닭살이 돋았다.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응급실 안의 불안한 공기가 신경을 계속 자극했다. 아들한테 겉옷 하나 가져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칠 때, 응급실 간호사가 다급히 다가와 툭 던지듯 말했다.
“조*원 씨 병명 뇌출혈입니다.”
‘뇌출혈이라니. 뇌에서 출혈이 있었단 말이지. 터지면 다행이라던데, 그럼… 다행인 건가?’ 며칠 입원하여 치료하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계속 응급실 주변을 서성거렸다. 수술을 해야 된다했기에 기다리다 지쳐서 또 응급실에 갔더니, 오! 남편 잃었던 의식이 ‘깨어’ 있었다. 심지어 말도 했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 순간은 찰나였고 남편은 눈을 마주치는가 싶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면서 오만상을 찡그리더니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의사가 남편의 상태를 체크했다. 왼손을 들어보라고 하고 왼발도 들어보라고 하는데 평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말쑥하게 생긴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대동맥이 터지면서 뇌에 손상이 생겨서, 왼쪽에 마비가 왔습니다.”
마비가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제대로 몰랐다. 담당 의사가 남편의 상태를 정확하게 고지해 줬는데도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 왼쪽 마비라는 말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맨 먼저 아들한테 전화했다. 간단명료하게 알렸다.
“아빠 뇌출혈이래. 수술 시간 정해지면 연락할게.”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고, 병명조차 검색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럼에도 뇌출혈이 착한 병은 아니라는 것과 최소한 골든타임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남편의 의식이 돌아왔고, 병명이 나왔으니, 일사천리로 수술하면 급속도로 회복이 될 줄 알았다. 수술 후 며칠 치료받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럼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바닥에 땀이 배었으며, 입술은 바짝 달라붙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에게 계속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속이 타서 응급실로 쫓아가 수술 시간만 다그쳐 묻기를 서너 번 하면서, 작은 종이컵으로 물을 연달아 한 동이 정도 마신 것 같다. 입 안에 불을 지펴 놓은 듯 입 안이 타들어 갔다. 아들한테 전화 왔을 때 입술이 쩍 달라붙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사나흘은 지난 것 같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드디어 담당 의사가 면담을 청해왔다. 수술해야 할지 시술해야 할지 서너 가지 큰 결정을 해야 했다. 내가 보호자였지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어 난감하였다. 형님한테 전화했더니 아주버님이 이미 병원에 와 계신다는 거였다.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내가 부르지도 않은 아들도 때마침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셋이 의견을 모아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시술은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만약의 경우 시술을 멈추고 수술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여서 수술로 결정을 내렸다.
병 명 : 뇌출혈 및 거미막하 출혈
담당의사의 설명은 10여 년 전 남편의 대동맥에 꽈리가 생겼는데 그걸 모르고 지내다가, 풍선이 부풀다 결국 터지듯 얇아진 뇌혈관이 터져버린 것이라고 하였다. 전조 증상이 하나 없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원망스러웠고, 그날 아침은 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