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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맞닿음

두 아버지의 딸을 향한 마음

by 능수버들


사위가 쓰러진 이후 첫 대면하는 장인어른


세상에 하나뿐인 사위를, 우리 아버지는 마치 아들처럼 든든하게 여기셨다. 그럼에도 사위가 쓰러진 지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뀔 때까지 아버지는 사위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즈음 아버지는 치매로 말문이 닫힌 상태였고, 궁금해도 묻지 못하셨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22년 초여름 당시 남편이 입원해 있던 병원은 코로나로부터 안전지대였다. 방송에서 연일 사망자가 급증한다는 뉴스 특보를 보면서도 남의 일처럼 여겼다. 고요하던 어느 날 갑자기 전수 검사가 시작되면서 병원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병실 복도에는 환자와 간호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원무과 남자 직원들은 침대를 이방 저 방으로 옮겼다. "203호 양성이래. 105도 걸렸다는데" 두런두런 거리는 말들이 오가는 사이 긴장감이 더해졌다. 마치 무균실 같았던 병원에 어마어마한 코로나 균이 침투한 것이다. 큰 병실에 줄 세운 침대들 사이로 빨간 표시가 붙은 환자들이 하나 둘 격리되더니, 결국 병실마다 코로나 확진자로 가득 찼다. 코로나 환자가 40만에 육박해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 시점이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병원 측의 선조 치로 가퇴원을 하게 되었다. (가퇴원하던 날 남편은 코로나 증상이 시작되었고, 덕분에 나도 애먼 엄마, 아버지도 순차적으로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남편은 초죽음 상태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팬데믹 마마나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친정으로 향했다. 남편과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엄마가 끓여 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주문을 해 놓은 터라 김치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 왔다. 밥을 두 공기는 너끈히 먹어 치울 것 같았다. 띄엄띄엄 지팡이가 바닥을 찍는 소리가 현관을 가득 메웠다. 덧문을 열자 우리 아버지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뜬금없이 우리 아버지는 반신이 불편해진 사위를 마주하셨다. 말문이 막힌 아버지였지만, 사위를 애달파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팡이를 짚은 사위를 본 아버지는 온몸으로 충격을 표현해 내시 었다. 마치 故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권양숙 여사를 향한, 故 김대중 대통령의 애절한 마음처럼. 마치 故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권양숙 여사를 향해 애절한 마음을 건넸던, 故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 같았다.


다물지 못한 입과 만면에 가득한 뼈저린 아픔.
큰 눈을 껌벅이며 금세 눈물이 가득 고였던 아버지.
사위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긴 팔과 긴 다리를 연신 주무르셨다.

간간히 막걸리를 같이 나누며 담소를 즐겼던 막역한 둘 사이였 건만, 위로의 말씀 한마디 건넬 수 없었던 아버지. 만약 그때 아버지가 말씀을 할 수 있으셨다면, 이런 메시지를 전하셨을지도 모른다.


"조서방,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어쩌다가 그 강건한 몸이 이렇게 허물어져 버린 건가.

시간이 지나면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는 게지?
운동 열심히 해서 꼭 몸 회복 되어야 하네.

우리 딸 고생 덜하게 하려면 자네가 반드시 털고 일어서야 하네.

암, 그래야 되고 말고!”


나태주 시인의 문장을 옮겨 오다


아버지는 점점 치매가 깊어지셨다. 엄마만 알아보시고, 그토록 애지중지 여기셨던 딸도 낯선 사람일 뿐이다. 평소 글씨도 단정하고 문장력도 좋은 분이셨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고 싶어 워드로 글을 하나 옮겨 적었다. 나태주 시인의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의 프롤로그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끝에 아버지의 뜨거운 감정이 내 마음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글 속 문장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가슴에 콕콕 박혔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딸들은 애당초 꽃다발로 왔고 그 향기로 왔다...
딸들아, 너희가 있어 아비의 생은 조금쯤 더 따뜻하고 넉넉해질 수 있었단다.
고맙구나,
딸아.
너를 내 딸로 만나서 참 행복했다.”


이태 전에 아버지가 급성 폐렴으로 돌아가신 후, 다시 나태주 시인이 쓴 글을 읽었다. 마치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 같았다. 글 속 문장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가슴에 콕콕 박혔다.


"비록 이다음에 아비 없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너무 울거나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아 다오.
다만 잘 살아라. 네 인생의 꽃을 피우다 오너라.
언젠가 어두운 밤길을 걷다 문득 누군가 너를 바라보는 것 같거든 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를 떠올려다오.
그 별 속에, 아비의 마음이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딸에게 맞닿은 두 아버지


사위도 딸 못지않게 좋아하셨던 아버지. 내게 수호신이었던 아버지. 온기 가득한 아버지를 닮아 나는 아버지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배웠다. 지금은 별이 되셨지만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신 사랑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이제는, 남편이 딸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우리 아버지의 그 마음을 종종 본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진 이후에 딸이 주는 감정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한다. 퇴근하는 딸의 정겨운 목소리, 그 전화 목소리 톤으로 딸의 마음 상태를 세심하게 감지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딸의 아빠. 딸과 통화 후 하루를 잘 살아 냈다는 뿌듯함으로 딸의 아빠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또 다른 한 남자가 딸을 통해 다시 살아가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남편이 쓰러진 지 1년 8개월 만에 아버지 장례식을 치렀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라고 피천득 선생님이 찬양해 마지않았던 그 찬란한 오월에, 아버지는 급성 폐렴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치매로 기억과 말을 잃으셨지만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재활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처음으로 외박이 허용되었다. 아버지의 부고로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조금 완화된 시점이라서 2박 3일 외박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위에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게 해 주신 셈이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남편은 장례식장에서 종일 손님들을 맞으며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띄우기도 하고 덜컥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면서, 불편한 몸으로 아버지를 곱게 보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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