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로 누린 1인실/ 절친의 한 마디로 평정
병원 안의 모든 소리가 남편을 괴롭혔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할 할때마다 나는 발소리,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이동할 때마다 휠체어를 사용하다 보니 휠체어 펴고 접고 끄는 소리 등등, 심지어 숨소리조차도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이른 아침부터 켜 있는 TV 소리와 통화하는 전화 통화하는 소리까지, 병실은 온갖 소음으로 그의 감정을 조여왔다. 또한 형광등 불빛도 견디지 못해 소등을 요구했고, 에어컨 온도를 두고도 병실 사람들과 자주 부딪혔다. 병원은 마치 남편의 감각 하나하나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고통의 전시장이었다.
재활이 없는 한가로운 일요일 낮, 병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그는 자기 침상(우리 침대 맞은편)에서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병실을 가득 채울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마치 확성기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릴 수밖에 없는 그 소리에 머리끝이 곤두섰다. 그의 우렁우렁한 통화 소리에 다른 환자들과 간병인들도 모두 낮잠에서 깨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선잠에서 깬 남편이 마침내 참다못해 폭발을 하고 말았다. 염려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어? 눈치 없이 살려면 호텔이나 1인실로 가야지! 사람들 자다 깨서 불편한 거 안 보여? 통화할 거면 나가서 해!”
남편은 반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한밤중도 아닌데 통화하는 게 뭐가 문젭니까? 불편하면 당신이 나가면 되지, 왜 반말로 난리를 치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그 환우는, 옆 병실까지 다 들릴 정도로 통화할 때보다 더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폭발 직전에 놓인 남편의 언어폭력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몰아쳤다. 제지할 엄두조차 나지 않은 나는, 재빨리 꾀를 냈다.
“남편, 분노조절장애가 있답니다. 일단 멈추시면 제가 나중에 사과드릴게요.”
그 환우에게 불쑥 내민 쪽지로 발화 직전의 불씨를 극적으로 끌 수 있었다.
남편의 상태를 그에게 조심스레 설명하고, 과일을 건네며 대신 사과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듯했지만, 눈빛 한쪽에는 경계와 피로가 서려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방어 본능과 자존심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도 환자였으니 무엇을 바랄 쏜 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원무과에서 호출이 왔다. 같은 병실에서 지낼 수 없다는 민원이 접수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은 마치 숨 막히는 공기를 한껏 끼얹는 듯, 병실 안의 긴장을 한순간에 폭발시켰다. 옆 환자들의 시선, 간병인들의 조심스러운 움직임, 남편의 숨죽인 분노까지 한데 뒤섞여, 나는 그 속에서 점점 조여 오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짐을 싸야 했다. 남편한테 이실직고하면 그 환우한테 해코지를 할 우려가 다분하였기에 연기를 해야만 했다. "2인실 병실 자리가 나서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우리한테 배정해 주는 것"이라고 했더니 원무과에서 자기를 특별 대우해 주는 듯이 느끼며 좋아라 했다.
특혜로 누린 1인실
세 번째 병실 이동은 남편이 감정 조절을 잘 못한 덕을 톡톡히 본 결과였다. 마침 1인실(다인실과 병실비 동일)이 비어 있었고, 원무과에서도 골칫거리였던 남편에게 그 방을 배정해 주었다. 오, 1인실을 사용하게 되다니! 괴팍한 남편 성격 덕에 호사를 누리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마치 복권이라도 맞은 것처럼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여기저기 자랑질을 해 댔다.
1인실은 그야말로 지상낙원 같았다. TV 볼륨도, 에어컨 온도도, 식사 시간도,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밤 9시만 되면 잠을 자야 되는 규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었고, 이른 아침부터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마지못해 잠을 깨야 되는 불편함도 없었다.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사소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그동안 짐처럼 마음을 짓누르던 잡다한 고통도 잠시나마 물러났다. 병실은 절간처럼 조용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코끝을 간지럽혔다. 문을 닫으면 복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고, 참외의 달큼한 향과 헤이즐넛 커피 향이 은은하게 베었던 201호 병실. 여러 식구들과 한방에 살던 복잡함에서 벗어나니, 마치 신혼 때 분가한 듯한 느낌이었다. 안온함과 평화가 가득 채워졌던 그 공간에서 우리는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흘 정도.
환경이 바뀌어도 남편의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나흘 조용했던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다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아도, 그의 몸속에서 감정이 끓고 있었다.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는 몸.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현실. 가해자가 없는 그의 분노는 속에서 곪다가, 결국 마땅한 표적이 나타나는 순간 감정의 뚜껑이 열리고야 마는 패턴을 반복하였다.
남편의 몸과 마음 상태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분노가 나를 향해 쏟아질 때조차 나는 숨을 고르고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남편이 화를 내도, 나는 가능한 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제 때 해소되지 못한 남편의 감정은 병실 문을 넘어, 병원 바깥세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마다 마셔야 되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듯, 매일 쏟아내야 할 ‘화’의 양도 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남편의 ‘화’,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노리는 짐승 같았다. 방향을 바꾼 남편은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소한 일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터뜨릴 태세였다.
병원 밖 산책길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편의점 앞에서 고약하게 흩날리는 담배 연기, 절뚝이며 걷는 남편을 쳐다보는 시선들, 길가에 버젓이 널브러져 있는 킥보드와 자전거,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그 모두가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다. 화를 낼 대상을 찾지 못한 날은 똑바로 세워져 있던 킥보드를 일부러 쓰러뜨리기도 했다. 서너 번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참다못해 격앙된 숨소리 사이로 소리를 "꽥" 질렀다.
“당신이 쓰러뜨린 킥보드, 누가 다시 세우는 줄 알아? 누구 때문에 이 생고생을 하는 데! 제발 나 좀 힘들게 하지 마!”
내 안에 쌓여 있던 분노가, 탁하고 습한 공기를 가르며 터져 나와 울부짖듯 소리쳤다. 그날 이후, 남편은 길에서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생긴 것처럼, 그는 격하게 한 발 물러섰다.
그 후 퇴원한 지 2년이 지났다. 예전의 나는 남편의 분노는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남편을 달래고 설득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쓰러지기 전에는 대화를 통해서 가능했기에 그 미련과 기대를 놓지 못하였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감정 표출은 남편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절망 속에서, 무력감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바깥을 향해 내지르는 남편의 외침인 것이다. 온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환자로서 이해받고자 하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절친이 남긴 한마디
며칠 전, 제주에 사는 50년 지기 절친 부부(여자들이 먼저 친구였는데 지금은 남자들이 더 친숙한 사이)가 우리 집에 다녀갔다. 요양병원에서 오래 일한 내 친구가 남편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요양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봤어요. 뇌출혈 환자 중 덕원 씨처럼 말도 잘하고 인지 능력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한 사람은 드물어요. 이건 기적입니다.”
친구가 하는 말에 가만히 귀 기울이던 남편이 물기 어린 목소리로 거들었다.
“와이프랑 아들이 고생한 덕분이지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요.”
친구는 남편의 말을 이어받아 전문가답게 단단한 어조로 남편에게 주입을 시켰다.
“가족이 케어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환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호전되지 않습니다. 덕원 씨의 힘으로 예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강한 의지를 믿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덕원 씨가 행복해야 내 친구도 행복하다는 것 명심하시고요.”
본인의 의지와 본인의 힘으로!
라는 친구의 말에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스스로를 붙들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결연함이 느껴졌다.
친구가 다녀간 이후 남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잠깐 멈칫하고, 자신 안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물론 분노가 밀려들면 남편은 여전히 휘청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남편의 단호한 눈빛 속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보았다. 분노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으려면 분노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심리 상담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가족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마음속 깊은 말들, 남편이 속 시원히 털어놓을 출구가 필요하다. 치료가 목적은 아니다. 마음이 후련해지고,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