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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느닷없이 번개팅을 청해 온 사돈마님

정감 넘치는 위로

by 능수버들


어느덧 병원 생활도 겨울과 봄을 지나 세 번째 계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데, 남편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회복됐는지는 여전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주치의는 '70%쯤'이라 했지만,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모호하기만 하다. 가족 간병 덕분에 남편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지만, 정작 재활에 대한 의지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의지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재활뿐이라서 의무적으로 재활실을 가기는 하는 데 반쯤은 넋을 잃은 모습이 태반이다.


재활실 풍경은 뚜렷하게 나뉜다. 목에 두른 수건이 흠뻑 젖도록 몰입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교통사고 환자이거나 인지에 문제가 없는 이들이다. 반면 뇌 손상을 입은 이들은 대체로 마지못해 운동에 임한다. 의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태라서 왜 재활 운동을 해야 되는지 이해를 잘 못한다. 그러기에 회복도, 그만큼 더디다. 의사가 최고의 회복 기간을 6개월을 언급하지만 길게는 2년도 더 걸릴 수 있다고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나는 기다린다. 간절히. 남편이 다시 왼 발로 땅을 딛는 그날을. 그래서 재활치료를 받은 후 ‘숙제’는 빼놓지 않고 시킨다. 안전봉을 붙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게 한다. 때론 마귀할멈처럼 윽박지르고, 때론 달콤한 초콜릿 하나 입에 '쏘옥' 넣어주며 당근과 채찍질로 담금질을 한다.


사돈 마님의 전화


병실엔 창문이 없어 바깥 날씨를 짐작할 수 없다. TV 속 일기예보를 보니,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 재활도 없는 날이라서 병원은 유독 조용하다. 남편은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로 OCN 채널에서 영화를 본다.(남편이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지 모르지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는 노트북을 펼쳐 전자책 <불안>을 읽고 있다. 아들이 지금 이럴 때 읽어보라며 건넨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내용이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동등하다고 여기는 이가 나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드러나는 감정이 불안의 원천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이 울리자, 병실의 정적을 깨는 울림이 메아리친다. 사돈마님이다.


우리 안사돈은 나를 친동생처럼 대한다. 목소리엔 항상 정이 넘친다.

“고은이 외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짧은 안부는 뒤로 하고 곧장 본론으로 넘어간다. 오늘 애들이 의정부 사돈댁에 가기로 했는데, 애들이 갑작스러운 식중독 증상으로 못 가게 됐단다. 음식을 한가득 준비해 놓고 허탈했던 사돈은, 며느리한테 오후에라도 다녀가기를 종용하신 모양이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사돈아가씨(서른둘 미혼)가 노발대발했단다. 몸 아픈 며느리한테 시댁에 오라 하다니, 제정신이냐면서.


후덕하고 넉살 좋은 사돈 마님은

“딸한테 이렇게 혼나고 살아요.”

라고 고해바치더니 대안을 제시한다. 느닷없이 번개팅을 청하시는 게 아닌가. 음식 해 놓은 것 싸들고 갈 테니 애들 집으로 오라신다.


병원에서 먹는 음식은 뻔하다. 필살기로 차려낸 온갖 닭고기 요리와 무채 나물, 뭇국. 고기 한 점 없는 미역국이 주를 이루는 식단, 가끔씩 외식하듯이 함박스테이크랑 불고기가 나올 때도 있긴 하다. 우리 사돈은 음식 솜씨도 좋지만 손이 크다. 오늘 우리는 포식을 할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 듯이.


통화가 끝나가기 바쁘게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사돈이 딸네집에서 만나자는 거야?”

묻는다. 비도 오니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돼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있다가 우리는 분주해진다. 부랴부랴 단장을 하고 딸래 집으로 출발.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우리가 있던 병원은 주말 외출로 숨통을 틔워주었다.


딸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자, 검은 RV 차량이 막 도착한다. 예상대로 우리 사돈 내외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안사돈과 얼싸안고, 바깥사돈과는 악수로 인사를 나눈다. 트렁크를 여니 다섯 개나 되는 음식 보따리가 쏟아진다. 겉절이를 해 오셨는지 김치 향이 코끝을 스친다. 식욕을 자극한다.

“아이고, 웬 음식을 이렇게 많이 해 오셨어요?”
“세 가족 점심, 저녁 먹고 남은 건 병원으로 가져가라고 넉넉히 해 왔어요.”

진심이 담긴 음식들. 지난번엔 겉절이, 고사리나물, 진미채 볶음, 갈비찜, 잡채가 있었는데, 오늘은 또 어떤 요리일까.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양손 무겁게 딸네 집으로 들어서니, 손녀가 눈을 반짝이며 반긴다. 우윳빛 피부에 풍성한 머리숱, 커다란 눈망울. 어느새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어버린 손녀. 남편은 말 그대로 ‘손녀앓이’ 중이다. 영상통화, 사진, 동영상 등등 하루 종일 손녀로 채워진다.


살아 있다는 건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실은 기적이고 축복이다. 대동맥 파열 환자의 3분의 2는 목숨을 잃는다는데, 남편은 살아남았다. 남편은 비록 왼쪽이 마비된 몸이지만, 사돈 내외와 딸 가족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 남편이 아픈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그중 가장 앞자리에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사돈 내외다. 음식으로, 금일봉으로,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격려로 남편과 우리 가족을 다독였다. 특히 며느리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 차마 볼 수 없다면서 응원에 응원을 거듭하신다. 아직 인지 회복이 완전치 않지만 몸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걸 남편은 안다.


그는 온전하게 걷고 싶어 한다. 남편은 오늘도 안전봉을 붙잡고 스쾃을 한다. 손녀의 푸릇푸릇한 기를 받으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다리에 힘을 보탠다.

“손녀 손잡고 아이스크림 사러 가야 하잖아요. 세 번만 더 해요.”

라며 남편을 부추긴다. 나는 지금, 가족 간병이 환자에게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뇌 손상 입은 부위는 절대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신에 검지 손가락이 손상을 입었어도 양쪽 손가락(엄지와 중지)이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 주면 손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덜 한 것처럼 뇌도 그와 마찬가지라 한다.


환자 의지 여하에 따라 호전 정도가 달라진다 하니 간병인은 끊임없이 환자를 회유해야 한다. 환자 의지가 꺾일라치면 다시 일으켜 세우고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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