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규/희 망
집에서 7분 거리, 남편의 걸음으로는 20분이 걸리는 헬스장을 찾았다. 관장과 면담을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관장님은 반기며
“운동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라는 그 말 한마디에 남편은 단박에 ‘합격’이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찾아온 남편의 용기를 그가 알아봐 주었고, 몇 가지 운동까지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관장이 고무 밴드로 운동하는 시범을 보였다. 밴드를 당길 때마다 ‘착, 소리가 헬스장의 넓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더불어 기구 이용 시 주의사항도 곁들였다. ‘과유불급’, 운동도 지나치면 회복이 더뎌진다며,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보호자가 함께 해줄 수 있는 스트레칭 방법까지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남편은 헬스장을 향한 발걸음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이전에 스쾃이나 계단 오르기 같은 운동은 내가 등을 떠밀어 겨우 하던 그가, 이제는 자발적으로 추위와 더위, 비와 눈을 뚫고 스스로 헬스장에 간다.
헬스장 안으로 들어서면 강렬한 음악 소리가 가득 채워지고, 기구가 움직일 때 나는 ‘쿵쿵’하는 진동까지 느껴져 몸을 절로 움직이게 하는 공간이다. 헬스장은 남편에게 운동장이자 놀이터, 쉼터이기도 하다. 좋은 습관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처음엔 운동 기구를 하체 중심으로 하다가 지금은 어깨까지 활용한다. 덕분에 나도 매일 헬스장을 오가며 지금, 가장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마음을 뭉클하게 붙잡은 대목을 필사하다가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인지능력이 점점 회복되면서 그가 무심히 내뱉던 말들이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심들이었다.
“운동을 해도 나아지지도 않고,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들어.”
“청○가리 사다 줘.”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닌 그 말들. 나는 무심한 듯 진심을 흘려보냈다.
“진짜로 죽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그냥 넋두리예요?”
내가 물었더니 남편은 그저 침묵한다.
“당신, 입장 바꿔 생각해 봐요. 내가 쓰러졌다면, 안녕히 가세요 마나님 하면서 쿨하게 보낼 수 있겠어요?”
이 질문에 남편 역시 대답하지 못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편마비. 이전 삶과의 단절. 형제들조차 멀리하는 고립감 속에서 남편은 날마다 절망을 삼킨다.
“운동해도 늘 제자리야. 형제자매도 나를 *신처럼 여겨. 헬스장에서조차 눈치가 보여.”
칭찬도 그에겐 비아냥처럼 들린다. 감정의 필터는 왜곡되었고, 모든 시선은 짐이 되기에 이른다.
처음 헬스장에 갔을 때, 반갑게 인사해 준 남자가 있었다.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밝고 젊은 기운이 도는 이였다. 그는 편마비를 앓고 있는 자신의 친구가 집 안에만 머물러 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남편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은근히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이였다. 오른손으로 아령 25킬로그램을 들고 운동하는 것을 본 회원이 남편에게 "욕심부리다가 큰 일 난"라고 참견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에 한 번만 더 간섭을 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면서 벼르고 있었다. 남편의 그 말이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칭찬과 비아냥이 분명 다를 진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 남자에게 돌려서 남편의 심정을 전달했다.
“남편이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회원님의 칭찬을 곡해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겠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남편의 상황도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다. 의도치 않게 그 분하고는 맹숭맹숭한 사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왼손을 못 쓰니 당신한테 미안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없이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어.”
그럴 때마다 나는 조심스레 대꾸한다.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요. 당신 없었으면 우리 회사, 벌써 무너졌을 거예요. 당신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예요!”
의사가 지적을 해 준 것처럼 남편은 전전두엽 손상으로 감정 조절이 어렵다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마술을 한 수 알려 준다.
“화가 올라오면 ‘전*환 이노옴’ 외치면서, 이마를 탁 쳐.”
우리는 농담처럼 진지하게 그 방법을 연습하며 오랜만에 화들짝 웃는다.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조용해진다. 눈시울을 붉히면서 뚜벅뚜벅 말을 이어가는 남편.
“당신이 없었으면 나는 진즉 죽었을 거야. 늘 마음 써주고 재활 운동도 시켜주고, 결정적으로 도망가지 않고 살아 줘서 고마워. 당신한테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해 야 되는 데, 말이 잘 안 나와. 그렇지만 당신이 내 마음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 마음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몸이 불편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에요. 몸도 불편한데 마음까지 병들어 버리면 너무 슬프잖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고은이 생각하면서 웃고,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딸내미 생각하면서 한번 더 웃고, 당신을 대신해 가장이 되어 버린 든든한 아들을 떠올리며 크게 웃고, 당신 말처럼 도망가지 않고 꿋꿋하게 당신 곁을 지켜내고 있는 마누라. 마누라한테 고마운 마음 더해 호탕하게 웃어봐요. 자주 웃다 보면 마음의 건강은 물론 몸도 불편함이 줄어들 거예요!”
어깨를 토닥이자, 남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소리도 못 내고 속울음을 삼키는 남편의 모습이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