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문장으로 남편을 감정을 입히다
한강은 <희랍어 시간> 이 작품과 함께 한 “이 년 가까운 시간, 그와 그녀의 침묵과 목소리와 체온, 각별했던 순간들의 빛을 잊지 않고 싶다”라고 적었다. 작가 김중혁은 희랍어 시간의 문장을 ‘눈(雪)’에 비유했다. 하늘에서 내려와 녹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는 눈. 쌓인 눈은 결국 누군가를 적신다. 한강이 내려준 문장들도 눈처럼 쌓여서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문장들이 들려주는 속삭임 같은 목소리, 그리고 한겨울 코끝에 닿는 차가운 촉감까지 나의 감각은 눈(雪)과 함께 그 안으로 빠져 들었다.
이전 글이 희랍어 시간 내용 중 초승달처럼 한 켠만 비추었다면, 이번엔 반달 안, 그 문장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주인공의 마음에 남편의 감정을 얹어 본다. 뇌출혈 이후 몸의 반쪽을 잃은 한 남자의 마을.
“마침내 그것이 온 것은 그녀가 막 열일곱 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분명 두 귀로 언어를 들었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의 어딘가를 틀어막아주었다.
발음을 위해 쓰였던 혀와 입술, 단단히 연필을 쥔 손의 기억 역시 그 먹먹한 침묵에 싸여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없이 움직였고 언어 없이 이해했다. 말을 배우기 전, 아니, 생명을 얻기 전 같은,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안팎으로 그녀의 몸을 에워쌌다.” (P.15~16)
"그것은 나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인간의 정체성을 상징하던 두 다리와 손의 자유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공자가 ‘이순’이라 불렀던, 인생의 가장 성숙한 문턱에서 나는 내 몸의 반을 잃었다."
"왼손, 왼팔, 왼쪽 어깨. 그것들은 여전히 몸에 붙어 있으나, 기능은 사라졌다.
팔이지만 팔이 아니다.
발이지만 발이 아니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는 감각이 없다."
"그 정적 속에서 내 심장은 귀를 찌르는 듯한 빠른 박동으로 울렸다.
먼지가 떠다니는 공기 속에서 햇살이 작은 먼지 입자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내 코끝과 눈앞에 생생하게 닿았다.
살아 있음이 이렇게 선명하게 닿았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라는 사실과 함께 나에겐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처럼 느껴졌어.
그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차츰 희랍어를 잘하는 동양인으로 알려졌어.
자력에 이끌리듯 플라톤의 저작들에 이끌린 건 그 무렵이었어."(P.119)
“남자 주인공에게 희랍어가 그랬듯, 내게는 헬스장이 내 몸의 언어를 되찾는 공간이었다.
희망을 건져 올릴 것 같은 유일한 곳이었다.
뇌출혈 이후 병원에서 재활치료는 내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내 의지로 내 몸을 조율하고 싶었다.
스스로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 공간이 헬스장이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죽은 언어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듯, 나도 기계들 사이에서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 싶다.
헬스장을 드나든 지 이제 22개월째다.
기계의 철제 마찰음, 덤벨이 바닥에 부딪히는 ‘쿵’ 소리, 러닝머신 벨트 위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발소리들. 특히나 격동적인 음악 소리가 가득한 헬스장은 몸을 저절로 움직이고 싶은 본능을 자극한다.
그 소리들이 내 심장을 깨운다.
기계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다.
팔다리에 근육이 약하게나마 붙기 시작했고 몸의 감각도 천천히, 매우 더디게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왼손가락, 왼팔, 왼쪽 어깨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행여나 손가락이 펴질 것을 고대하며 오늘도 나는 고무 밴드를 당긴다.
헬스장은 내게 가장 안전한 방이자, 가장 깊은 회복의 방이다."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기 위해 걷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집의 정적을 느낄 수 없게 될 때까지, 검은 나무들과 검은 커튼과 검은 소파, 검은 레고 박스들에 눈길을 던질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격렬한 졸음에 취해, 씻지고 않고 이불을 덮지도 않고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설령 악몽을 꾸더라고 중간에 잠을 깨지 않기 위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뜬눈으로 뒤척이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 생생한 새벽시간, 사금파리 같은 기억들을 끈덕지게 되불러 모으지 않기 위해 걷는다.” (P.90)
“나도 그랬다. 헬스장은 단지 회복의 공간이 아니었다. 잠들기 위한, 그 절박한 이유로 난 운동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뇌병변 환자에게 잠은 두려움이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떠다니는 의식 속에서, 아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끊임없이 맴돌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위해서, 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아령 25kg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고, 복근 운동을 세 번에 나눠 60회를 반복하고, 러닝머신 위를 20분씩 세 번을 걷는다. 지치기 위해서. 기절하듯 잠들기 위해서. 사금파리 같은 기억들이 내 정신을 찌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숄더 프레스 머신은 내게 헬스의 꽃이다. 움직이지 않는 왼쪽 어깨에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기구다. 아내가 20분간 어깨를 풀어주는 시간, 그 손길이야말로 회복의 연장이다. 기계의 피스톤이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 손바닥 아래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쇠 냄새가 내 생존의 증거다.
"아내가 20분간 어깨를 풀어주는 시간, 그 손길 사이로 아내의 체취가 스며들고, 체온이 닿을 때마다 나는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그 손끝은 회복의 연장이자, 다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환상적 시간이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꿈에서 뿐이겠지요.” (p.159)
"그렇다.
나는 꿈에서조차 걷고 싶었다.
팔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걷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
바람 소리와 흙냄새를 맡으며, 땅 위를 사뿐사뿐 밟는 발소리.
그 모든 감각 속에서, 나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소망이다.
나도 그렇게 직립보행을 하고 싶다."
그녀의 문장에서 걸어 나온 침묵이, 우리의 삶에 스며든다.
말 없는 말들 위에 남편의 발자국이 온전히 못한
모습이지만 분명하게 찍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