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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an 08. 2022

영화관에서 자는 여성

허구

그리 어둡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은 곳.

팔걸이가 있는 나름 푹신한 의자.

고소한, 짭짤한, 달콤한 향이 뒤섞여 눈가를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

운이 나쁘면 온기에 질식할 것 같은 곳.


그러한 곳에서 잠이 드는, 그러니까 잠을 잘 수가 있는 안쓰러운 D. 매일 저녁 8시 집에서 나와 가까운 극장에 들어가 새벽 4시에 끝나는 영화를 상영하는 관이 그녀의 침실이 된다. 앉아서 자야 하기 때문에 너무 두껍게 입어서도 그렇다고 너무 얇게 입어서도 안되고 신발은 발이 붓기 때문에 최대한 여유로운 신발을 신고 적당히 소음을 막아줄 귀마개까지 챙기면 잘 준비 완료이다. 매일 그녀의 침실 메이트는 바뀐다. 수많은 사람들과 침실을 공유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독방으로 쓸 때가 있다. D가 선호하는 수는 4-7명이 가장 좋다. 보통 4-7명이 보러 오는 영화는 시간대가 애매하거나 영화가 애매하다. 이 애매함이 군데군데 빈 공간을 채운다.


아아-

어쩌다 D는 이렇게 됐는가

글쎄, 어느 날 문득 영화관에서 영화가 보고 싶어 퇴근 후 들린 영화관에서 제일 빠른 상영작을 골라 들어갔더니 7명의 사람만이 있었고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날 유독 피곤했던 D는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피로감을 느꼈으며, 영화가 시작되는 타이밍에 이미 정신은 반쯤 수면 상태로 들어섰고 영화가 끝났을 때에는 수십 년간 깊이 잠들지 못했던 만치병이 없었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그 길로 영화관이 아니면 잠을 못 자는 오히려 더한 불치병을 얻었다고 하면.


중간에 영화가 바뀌는 때에 D는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 비상구로 나가 다시 상영관 입구로 돌아가 침실에 들어갈 시간을 기다린다. E열 11번. D의 고정 좌석은 이미 그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D의 엉덩이의 모양으로 자국이 남은 의자와 팔꿈치의 힘을 받은 팔걸이의 쿠션은 어쩌면 남들이 알아챌 만큼 움푹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시간대의 그 좌석을 택하는 사람은 여태 그녀밖에 없었다. 인터넷 예매는 하지 않는 D. 그것은 나름의 노력이다. 그 자리에 누군가가 미리 예약을 했다면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 '진짜' 자신의 침실에서 잘 수 있는 경우를 우연에 기대어 희망하는 최선이다.


사실 영화관은 어둡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으며 물리적인 시간을   없으며 오히려 세상과 단절시키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웃음을 누군가는 울음을 누군가는 외로움을 누군가는 온기를 느끼는 그곳에서 잠을 잔다는 행위는 세상과의 단절이면서 그러나 어쨌든 타인과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세상과의 작은 연결이다. 모순과 모순만이 남아 그저 단순하게 남은 사실은 '그녀는  공간에서만   있다.'이다. 


잠자다. 자는 행위. 잠.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 아직 각성되지 못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

그렇다면 무의식 활동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꿈은 무의식의 통로이며 인간의 무의식은 수면 아래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덩어리이며 차마 자각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의 집합체이다.

거대한 덩어리.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


D는 그렇게 오늘도 영화관에 간다.


사적인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행위, 왜냐하면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를 마주하기 때문에. 깊은 무의식의, 나조차도 이것을 원하고 갈망했던가 자문하며 동시에 향연 해야 하는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럴 때 나의 얼굴은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으며 어떤 소리를 내고 있으며 어떤 향을 풍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밤은 깊어져 가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는 욕망 속에서 유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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