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달링’
회사 퇴직 기념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결혼하고 25년 넘게 쉬지 않고 일했던 것에 대한 작은 선물이기도하고, 새해부터 다른 일을 하게 되는 남편에게 주워진 2주의 휴식시간에 바닷가 마을에 가서 편안히 쉬고, 얘기도하고, 맛난것도 먹으면서 바쁘게 달려왔던 시간을 잠시 멈춰 보자. 우리가 선택한 여행지는 영국의 땅끝마을 콘웰지방이다. 콘웰은 영국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도 ‘미낙씨어터’라는 야외 소극장은 사진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올라올 만큼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15년 넘게 런던에 살고 있는 친구는 ‘영국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며 극찬을 하기도 했다.
콘웰은 생각보다 멀었다. 런던을 출발해서 휴게소에 두 번을 쉬고도 두 시간 반을 더 가야 했다. 12월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때아니게 파란 하늘은 초록 들판과 맞닿아 회색도로를 달리는 우리를 자연이 삼키는듯한 그림이 연출되었다. 오후 네시가 좀 넘어서니, 동지가 다가온 줄 깜빡 잊었던 나를 상기시키는냥 어둠이 서둘러 세상을 덮어갔다.
가로등도 없이 좁은 길을 여러 차례 오르락 내리락 언덕을 넘어 도착한 호텔은 잔잔한 파도가 찰싹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에 보글보글 작은 거품으로 선을 그려내는 땅끝, 대서양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급히 몇시간전에 예약한 것 치고는 숙소 위치를 너무 잘 잡았고, 시설이나 분위기도 지불된 비용에 비해 훨씬 좋았다.쏟아지는 별빛 아래 야외 수영장과 따끈따끈한 물이 수증기를 피우며 방울 맞사지를 할 수 있는 저쿠지가 있었고 해변이 내다 보이는 곳에 벤치가 여러 개 있어서 한 낮엔 스웨터 한장 어깨에 두르고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한껏 내일이 기대 되었다.
아침이 되었지만 왠일로 남편은 사진찍으러 나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외출했으니 일출사진이나 밤새 총총했던 별사진을 당연히 욕심 낼 줄 알았는데 조용했다. 어제 낮에 휴게소에서 쉴때부터 내내 피곤해 하고 기운 없다며 저녁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더니만 아무래도 엊그제 먹었던 것이 탈이 난게 분명했다. 호텔 앞 해변을 잠깐 거닐었고, 노천탕에 잠시 몸을 담그고 그리고는 조금 기운을 내어 기대하던 미낙씨어터로 향했다. 펜잔스항구는 시골항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기찼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고 고깃배와 하얀 레져요트가 불규칙하게, 그러나 참 잘 어울리게 정박되어 있었다. 고작 사십분 거리였지만 남편이 힘들어 해서 중간즘 있는 펜잔스 항구에서 잠시 쉬어야 했고, 오후가 되서야 미낙씨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낙’은 콘웰 지방 고어로는 돌이 많은 장소라는 뜻이란다. 땅끝마을은 바다를 향해 공격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바다의 공격을 막으려는 것인지 온통 바위와 절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리고 험악한 바위로 이루어진 벼랑 밑으로는 살구빛 모래가 바닷물을 만나 소꿉놀이라도 할듯, 반달모양으로 은밀한 보금자리라도 되는냥 오목한 해변을 만들고 있었다. 나였다면 감히 이곳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을텐데 오밀조밀 좌석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어간 케이드 여사를 생각하면 그저 단순히 멋지다는 생각을 넘어 경이롭기까지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늘을 무대 커튼으로 그리고 바위와 절벽은 관람석으로 배치한 케이드 여사의 작품 미낙씨어터.
중산층의 부유함을 누리던 여성은 대서양의 거친 바람만큼이나 험한 시대를 만나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땅끝까지 내려와 살게 되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이루었으니 행복하였으리라. 현실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비록 가냘픈 팔다리로 돌더미들을 옮겨야내야 했고, 시멘트를 붓고 개고 발라가며 온몸이 흙투성이였겠지만, 구석구석 반반히 발라진 시멘트 벽면에 세겨진 작은 매듭조각과 그림들은 그녀가 얼마나 육체의 고통에 앞서 마음의 행복을 누렸는지 감히 짐작케했다.
근처 경관 좋은 해변에서 어느 노부부가 바닷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미낙씨어터에서도 만났던 노부부였다. 영감님께서는 아내로 보이는 흰머리 성성한 여자분을 ‘달링’이라고 여러 차례 불러 주면서 망망대해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을 가르키며 이야기를 하기도하고 목도리를 다시한번 단도리하며 조여주기도 하였다. 아무리 까치발을 하고 바다 건너편 어디를 가르키는건지 찾아 보려해도 내겐 파도 말고는 별로 보이는 것이 없건만….저들은 무엇을 보며 저리 재밌게 도란도란 얘기하는 걸까 싶고 부러운 마음도 들어서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앞으로 25년을 더 같이 살 수 있다면, 저분들 같은 모습일 수 있을까?”
마침 회사를 퇴직하여 마치 대단한 여정을 마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다가 좀처럼 아픈적이 없는 남편이 시름시름한 모습을 보이니 땅끝에 선 느낌이 예상치 않았던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런던을 출발할때만해도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을 바라보는 야외 공연장, 땅끝마을에 줄지어 서 있는 항구와 마을을 소녀처럼 감상하게 될 거라 기대했었는데, ‘인생의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니 아무리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데도 어찌되었던 내가 상상하던 낭만과는 거리가 먼 복잡한 세계로 스며들었다. 만약 남편이 없어도 내가 케이드 여사처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지속해 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도 들고 무엇으로부터 행복을 찾아야 할까 싶은 철학적인 생각들까지 끝날줄 모르고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들처럼 생각도 꼬리를 물어가며 밀려오고 있었다.
남편 코앞까지 얼굴을 밀착시키고 방글방글 웃어가며 물었건만, 민망하게도 남편은 “아마 아닐거야”라고 답했다. 아파서이기도 하겠지만 단호한 말투에 약간은 내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웃음기 서린 눈웃음에서 절벽밑으로 심장 한조각 떨어트린 사람처럼 뭔가 가슴이 무너지는듯하여 한바터면 와락 눈물이 날뻔했다. 안그래도 흐린하늘만큼 우울한데 그냥 거짓말이라도 한마디 ‘당연하지, 그때즘엔 저들보다 우리가 더 다정하게 이런곳을 다닐 수 있을거야! 마이 달링'이라고 해 줄 수 있는거 아닐까. 오랜만에 외출인데 말이다. 그리고 일분여즘 지났을까….
“그녀 이름은 ‘달링’인가보네. 어쩌면 영감님이 그녀의 이름을 기억못해서 ‘달링’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지.
25년 아니라 50년이 지나도 나는 써니 이름을 잊지 않을테니까 ‘달링’이라고 부를 일은 없을 거야. 얼굴만 봐도 환한 해처럼 밝은 써니…”라며 말끝을 흐리고는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꼭 끼운채 서둘러 뒤돌아 걸었다.
“여보, 당신 나한테 지금 고백한거에요? 하하 그런거지? 크크 죽을때까지 나한테 그렇게 써니라고 부르겠다고, 죽어도 내 이름은 잊지 않겠다고? 그치?”
독백인지, 약속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이던 땅끝에서의 고백덕분에 흐린하늘에 흔들리는 파도소리처럼 참 오랜만에 찰랑찰랑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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