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소방관
플라타너스의 너른 잎이 진한 갈색으로 변하여 부스럭거리며 후미진 곳을 찾아들고 다시 연한 녹색 잎으로 잉태되려는 준비를 하듯 부서지며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겨울의 문앞에 서면, 준비하던 여행도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특히 아일랜드는 평소에도 비는 자주 오긴하지만 겨울이면 더 많이 내리는 비는 여행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10월말에 끝나는 썸머타임으로 인해 제자리로 돌아온 시계는 낮보다 밤을 훨씬 크게 분배하기에 활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짧아지므로 먼곳 아일랜드까지 큰 돈들여 와서 12시간 넘도록 숙소에서 보낼 생각을 하면 시간이 아깝고 본전생각이 날것이다. 뿐인가! 회색 하늘이 보자기 처럼 감싸고 있는 도시는 만물이 모두 잠든 듯이 고요하다못해 고독함을 느끼게 할 것이고 알록달록 화사하게 피었던 제라늄과 페추니아 조차 시들어 버린 도시에서 여행자를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바람과 구름뿐이다.
그런계절에, K방송 김PD가 아일랜드를 찾았다. 9월초순부터 나와 일정을 조절하였는데 서로 엇갈리는 시간으로 인해서 간신히 찾아낸 시점이 10월말 11월초순이었다. 그리고 열흘정도의 여행일정동안 아일랜드의 모습을 촬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는 내심 김피디의 일정이 걱정스러웠다. 아니 걱정이라는 배려보다는, 원망이라함이 솔직한 심정일것이다. 꽃피고 새우는 그야말로 더운 한국의 여름을 피해서 아일랜드의 쾌청히 맑고 시원한 여름을 보여 줄수도 있는데, 그즘엔 고즈넉히 차분한 건물과 골목을 가득매운 색색의 야생화의 멋진 앙상블을 보여줄 수도 있고, 아이리쉬의 밝은 웃음도 쉽게 찾을 수 있을텐데, 축제도 많고 거리를 채운 여행객들의 각양각색의 다양함이 가득할텐데….이렇게 겨울로 들어가는 아일랜드를 보여주면 실망하지 않을까, 기대도 없어지면 어쩌나...싶은 원망이었다.
아름다운 최고의 아일랜드를 보여주고 싶은 내 욕심은 물거품이 되고, 우린 최악의 조건에서 아일랜드를 소개하는 여행프로그램 촬영을 시작하였다. 김피디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신사였다. 전화 통화로 들었던 그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부분이 있었고 맑은 미성의 청년 같은 음색이었다. 그리고 촬영감독 없이 직접 피디가 카메라를 메고 온다고 하기에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 30대의 피디일거라 예상했다. 사실 피디가 직접 촬영까지 겸하겠다는 것은 어떤면에서 훨씬 일이 손 쉽고 내입장에서 심리적으로 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촬영감독과 피디가 함께 촬영을 하게되면 늘상 그들의 다른 견해가 중간에 낀 나를 난처하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피디가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카메라맨은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다. 피디는 화면이 자신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으나, 카메라 맨은 기술적인 부분과 그림 한장 한장, 영상 한장면 한장면마다의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최대의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혼혈을 기울인다. 그런면에서 피디는 흐름을 중요시하는 받면 카메라맨은 한장씩 컷트되는 장면을 중요시하는데 더 포커스 된다고 할 수 있다. 피디의 막연하고 추상적 이야기를 카메라의 구체적인 그림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TV프로그램의 성격이다. 그리고 종종 그들은 촬영을 마친 후에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충돌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잘려나가는 화면이 속출할때마다 이런 쓸데 없는걸 왜 그렇게 오래 찍었냐고 불평을 하기도하고, 쓰지도 않을 영상을 왜 그렇게 찍어달라고 했냐며 원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일은 나로선 갈등을 최소화 하고 영상 촬영을 위한 장비등도 최소화 되니 촬영장 섭외와 허가등 준비과정이 단순해 질 수 있어서 훨씬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할로윈 발상지마을, 아일랜드 서부에서 연어를 잡고 파는 어부 사업가, 토탄 캐는아저씨, 아일랜드 전통음식 블랙푸딩을 만드는 정육점 아저씨…..등 아일랜드 지도를 반이상 돌면서 최대한 야외 촬영보다는 사람중심의 주제로 전통을 중시하고 사랑하며 보존해 가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그들의 생각, 철학,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중점적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첫날은 더블린을 시작으로 도시 풍경을 찍어야 했다. 여행프로그램 특성상 첫 1-2분은 나라에 대한 소개와 수도에 대한 개략등이 등장하므로 그런 스토리에 입힐 그림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더블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공원, 거리,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서 찍은 부감등이 기본영상이다. 열흘중에 첫날이다. 그리고 그 첫날의 임팩트는 가을을 쓸어 겨울로 담아 내려는 강한 바람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럽 최대의 시민공원 피닉스 파크에 줄지어 서 있는 마로니에 나무 옷은 거의 다 벗겨져 이제 겨우 홉겹 속옷만 걸친듯이 몇 장 안되는 마른잎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베뉴를 지나는 동안 새처럼 바람을 앉고 이리저리 비행하다 착륙하는 나뭇잎을 촬영하느라 여러 번 차를 멈추었고, 카메라를 돌렸다. 그 사이 소나기는 서너번을 오가고, 소나기가 멈춘사이를 무지개가 채우면서 하늘엔 일곱가지 색깔이 가득매우고 회색하늘은 그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바탕색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써니씨, 아무래도 우린 그냥 바람을 찍어야 겠어요. 이 바람을 따라가면 열흘동안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
“…….”
“사람들은 모두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찍어요. 그래서 항상 그곳에서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과 최고치의 영상을 보여주려고 하죠.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쯤 아일랜드에는 바람과 구름뿐이라던 써니씨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맴 돌았어요. 거기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었죠. 그런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거에요. 바람과 구름만으로도 충분히 아일랜드를 설명할 수 있을거 같아요. 어때요?”
일을 할 때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나’와 여행자로서의 낭만과 감성으로 가득한 ‘나’를 한몸에 지니고 있음을 자주 느낀다. 따라서 김피디의 말은 현실적으로는 일정을 전부 다시 조절하고 사과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거라는 사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또 다른 나는 ‘그거에요! 드디어 내가 상업에 승부하지 않는 진실한 피디를 만났군요!’라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 후로 우리는 구름을 따라 다녔고 그 구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듯이 한껏 숨을 몰아 삼키고 한참을 참았다가 푸하하 품어 내듯이, 푸르스름한 회색구름이 하나둘씩 응집하였다가 검은색에 가까울만큼 뭉쳐지면 한꺼번에 소나기를 쏟아내고 이내 날개핀 천사처럼 하얀 뭉게구름이 되어 흩어지곤 하였다. 또한 어김없이 그자리엔 무지개를 선물로 수놓아 주었다. 무지개 뒤에 금단지, 은단지를 숨겨둔다는 ‘레프리칸 요정’이 금새라도 튀어나와 말을 걸어 줄 것 만 같이 우린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하였다.
촬영 막바지즘 되었을때, 아일랜드 서쪽 지방에 있는 작은 B&B에서 묵게 되었다. 그리고 밤 늦은 시간 식사도 할 겸 아일랜드 전통 펍으로 향했다. 그곳엔 마침 주말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편안히 둘러 앉아 전통음악 라이브 연주에 맞춰 노래도 하고 가벼운 춤을 추기도 하며 한참 흥이 나 있었다.
우린 감자칩과 소시지 그리고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기네스 맥주를 주문했다. 펍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서로 모두 아는 사이라도 되는양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짓고 윙크를 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누가 누구하고 같이 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두가 한 테이블 같은 느낌이었다. 어쩐지 동양인 두명이 가족 모임에 초청장도 없이 끼어 있는 듯 하여 처음엔 좀 민망하고 미안함마저 드는데, 순간 음악 장르가 바뀌면서 연주자도 바뀌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던 아저씨는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 옆으로 다가 앉았다.
“어디서 오셨수?” 아저씨가 묻고,
“한국에서 왔어요. 남쪽 한국이요. 이 마을은 작지만 이쁘군요. 당신의 노래도 매우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답했다.
“여행온거유? 아니면 일 때문에 오셨을까?” 아저씨가 묻는다.
아마도 김피디와 내가 커플로 보이지는 않았던 건지, 일 때문에 왔냐는 말을 덧붙였다.
“일 때문에 왔지만, 낯선 곳에 오는 것은 언제나 여행처럼 흥분되는 일이죠.”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늘어 놓던 그는 자신을 소방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맥주를 한잔하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마치 자기 집에 방문한 손님을 접대하듯 옆에 있는 다른 아이리쉬에게 우리를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오전에 비가 와서 토탄 캐는 모습을 찍는데 고생을 했다는 얘기, 그리고 토탄 캐는 작업을 그 마을에서 운 좋기로 소문난 ‘캐빈’이 맡아서 했다는 얘기까지 우리가 하지 않은 얘기도 덧붙여가며 쉴새 없이 영어 꾸러미를 내 놓았다. 나중에 보니 소방관 아저씨는 다리를 조금 절뚝이셨다. 한창 젊을 때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얻은 훈장이라며 대수럽지 않게 웃어 보이시고는, 지금은 소방관인척 일은 하지만 사실 노래하며 지내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소방서에서 아직 일을 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불을 끄거나 위험하거나 위급한 일에 투입되기 보다는 사무실에서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엔 이 펍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그 대가로 맥주를 몇잔 얻어 마신다며 마치 큰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기뻐했다.
요며칠 비가 많이 왔던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날씨를 묻기도 했다. 김피디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오고 밤이 긴 아일랜드에서 당신들은 어떻게 겨울을 지내시나요?“고 물어 보았다.
“나를 보세요! 이렇게 지내요. 노래를 부르지요. 술도 좀 마시고요. 하하”
한때는 푸르른 청춘을 무기로 뜨거운 불길에 뛰어 들었을 그는, 이제 지는 낙엽처럼 조금은 마르고 조금은 절지만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젊었을적에는 노래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누구도 좋아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그의 기타 연주는 그런대로 괜찬은듯 했지만 노래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옆에서 같이 노래를 불러주던 수염난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소방관 아저씨는 음치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젠 노래를 사람들이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만들어간 추억을 반주로 해서 듣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목요일, 금요일 저녁을 무척이나 기다린다나…….하는 허풍까지 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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