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김에 프로포즈
한해 달력은 불과 몇 시간을 남겨두고 새로 받은 달력이 뒤에 기다리고 있다. 올 한해는 무엇을 했던가, 내년엔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느때 보다 바삐 지나는 하루다. 다른 사람들도 오늘 하루는 분주히 지나고 있을까? 페이스북을 뒤적이며 새해 인사를 상징하는 사진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올려둔 인사 말에 ‘좋아요’ 클릭도 해 준다. 나는 외국에 사는 것을 핑계로 신정 1월 1일을 새해로 지낸다. 추석하고 달리 아이들도 남편도 쉬는 날이라서 아침 차례 상을 느긋하게 차려 낼 수 있어서 편리하다는 이유다. 추석도 그러하지만 구정마저 학교, 직장 가기전에 차례를 지내려면 꼬박 밤을 새워야하는 불편함이 있으니 신정을 지내는 것이 편하긴 하다.
신정, 성탄절, 부활절 등을 제외하면 사실 외국에선 이렇다 할 만한 명절이나 국경일, 기념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새해 달력을 한장씩 넘기다 보니 한국에 훨씬 더 많은 기념일, 국경일이 있어서 이벤트와 선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떤이는 새해가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구정때까지 진행돼 거의 두 달을 그 인사를 하고, 듣고 해야돼서 지겹고 연말부터 끔찍한 생각이 든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도 그럴것이 1월 새해 부터 시작되는 이벤트는 2월 중순에 ‘발렌타인데이’, 3월엔 ‘화이트데이’, 짜장면 먹는 ‘블랙데이’ 등등해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스승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도 있고, 가정마다 생일이며 제사며….이런 날마다 드는 생각은 사탕장수가 사탕을 많이 팔아볼까 해서 만든 날인거야. 뭐 그런거까지 신경쓰고 사니? 짜장면 같이 먹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성탄절? 남의 생일날 왜 너가 그렇게 좋아하는건데? 생일이 뭐가 대수고, 결혼기념이 뭐가 그리 중요하니? 남들이 하는거 말고, 너에게 의미있는 걸 찾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매달 어떤 기념을 연상케해서 장사에 이용하는 장사꾼들에게 휘둘리며 살지 않으려고 이런 질문들을 쏟아놓곤 한다. 남들이 다 이리저리 휩쓸리며 다같이 초콜릿을 사고, 다 같이 장미꽃다발을 앉고 다닐 때 나혼자 고상한척하며 마치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가진듯 고고하고 초연한 척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매달 어떤 기념을 연생케해서 장사에 이용하는 상업적 마인드에 시달리면서도 그런 날들 덕분에 고백을 할 수 있고, 이별을 할 수 있고 또 위로도 받을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다.
아일랜드에는 윤년 윤달인 2월 29일에 여성이 청혼을 할 수 있다는 전통이 있다. 그런 전통을 로맨틱하고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프로포즈데이>도 있다. 애이미 에덤스가 <애나>라는 여주인공 역할을 하였으며 메튜 굿은 아이리쉬 청년 <데클린>역을 맡았다. 이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애나와 사귀던 남자친구가 4년이 넘도록 연애만하고 청혼을 않하자 답답하기만 했던 애나가 <립이어엔 여자가 청혼을 하면 거절할 수 없다!>는 아일랜드의 풍습을 알게 되었다. 마침 아일랜드로 출장을 떠난 남친을 찾아가 프로포즈를 직접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데, 기상악화로 계획은 빗나가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으로 가야했는데 엉뚱하게 남쪽 끝에 있는 딩글에 도착하여 묵뚝뚝하고 촌스러운 아이리쉬 남자와 더블린까지 동행하게 된다. 딩글은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곳이고, 딩글에서 더블린까지 여행을 하게되면 아일랜드를 사선으로 가르며 여행을 하게 되므로 아일랜드의 풍부한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보여지는 아일랜드의 자연, 고성, 아이리쉬의 풍습과 과장된 전통, 아이리시의 코믹함을 극대화 시켜주고 연신 비가오고 흐리며 티격태격하는 남녀 사이를 밝게 조명해주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결국 애나는 2월 29일 청혼을 하긴하는데 그 대상이 원래 남자친구가 아닌 앙숙처럼 다투기만 하던 데클린이었다.
프로포즈데이라는 핑계거리가 아니었다면 애나는 4년동안 사귀었던 습관같았던 남친과 결혼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자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멋진 청혼]은 받지도, 하지도 못한채. 그 누가 [프로포즈 데이 덕분에 청혼을 했는데 거절당하면 어떻게해?]라고 받문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고백 해 봤다]라는 것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성탄절에 산타클로스가 온다고 기다릴 수 있었던 나이를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난 아마 아직도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성탄트리 밑에 내 선물은 없었지만, 올해도 없겠지만 그래도 성탄절 이브면 어릴적 그랬던것 처럼 성탄카드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걸고 선물을 기다리며 설렌다. 성탄절 아침 나무밑에 내 선물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런걸 보면 뭔가의 기다림으로 설레이는 마음 자체를 즐기는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천진하였던 일곱살 어릴적 마음의 일부를 지금도 아주 쬐금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성탄절]이라는 핑계덕분임이 틀림없기에 세상의 이런저런 이유로 발생된 이벤트 데이들이 모두다 상업적이니 놀아나지 말자고 다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만날 일이 있어서 학교에 찾아 갔는데 11월 초순인데도 벌써 교장실에는 성탄절 선물같아 보이는 선물박스들이 꽤 여러개 쌓여 있었다. 아이들이 신발박스에 학용품, 인형, 사탕같은 것들을 넣어서 예쁘게 성탄절 포장지로 포장을 해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것들은 아일랜드보다 못사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배달될 선물들이다. 1년내내 단 한번도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성탄절]이라는 핑계덕분에 따듯한 마음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물을 보내는 아이들도 나눔의 기쁨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의 성탄절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냥 [나눔의 날]의 의미일것이다.
우리집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내 생일날 아침엔 어김없이 임금님 수라상만큼이나 큰 밥상에 반찬을 갖가지 해서 지어주셨다. 명절날 만큼이나 다양한 나물반찬과 전과 국 그리고 과일도. 그런 날 내 도시락은 잡채랑 산적이랑 다른 친구들이 싸 오지 않는 것들로 가득해서 [너희집 제사 지냈니?]하는 질문을 받곤했다. 평소엔 그렇게 풍성하지 않지만 생일을 핑계삼아 온 가족이 포식을 하고, 명절을 핑계삼아 멀리 떨어져 있던 사촌들도 다 모이곤 하는 것은 어쩌면 예전보다 더 바빠지고 개인적인 요즘 세상에서 더 많이 필요할것 같다. 나는 평생 생일날이면 당연히 그렇게 상다리 부러지도록 푸짐한 밥상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그 기대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고, 그 누구도 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는 것도 이 나이가 되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린시절의 생활습관이란 참 고집도 세서, 어떤 계절에, 어느날이 되면 그때 먹었던 음식이 먹고싶어지고, 그때 불렀던 노래가 그리워지고, 그때 만났던 사람이 보고싶고, 그때 했던 행동들이 다시 하고싶어진다.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도 추석즈음이 되면 주먹보다 큰 신고배의 과즙이 생각나고 겨울날 눈오는 날엔 입가에 하얀 밀가루 뭍혀가며 찹쌀떡 한입 베어 먹고 싶어진다. 움추렸던 겨울을 지나 노란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면 누구하나 말 꺼내지 않아도 쌉쌀한 봄나물에 따듯한 밥한공기 비벼 먹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절로나며, 햇살이 눈부신 여름엔 논밭 보이는 원두막에 앉아 큰 수박을 힘껏 쪼개 먹고 싶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그날엔 해마다 그랬던 것 처럼 엄마가 차려주신 내 생일상이 [따듯한 날]로 기억된다.
누구에게나 핑계의 날이 있으면 훨씬 삶이 가벼울 수 있을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서 끙끙앓고 있는 소심한 소녀에게 [립이어]는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용기의 핑계가 되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성탄절이 나에게 [설레임의 날]인것처럼, 그리고 생일날이 [엄마의 정]인 것 처럼. 비록 두어달이나 진행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혼없는 인사말이래도 일년 내내 연락해 보지 못하고 마음에 맺어 두엇던 이에게 오늘 즘은 뜬금 없이 연락을 해도 어색하지 않고, 무안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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