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Eyre Dec 14.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10주 차(2019.12.09 - 2019.12.13)




페랑디의 마지막 수업을 한주 앞두고 쓰는  글의 서문을 다른 글보다  많이 수정했다. 살면서 많은 마지막을 마주할 때마다 속상하고 아쉽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이 아픈 것은 비단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피부색과  색깔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철저하게 다르다. 진심이 가득한 이야기들과 작은 생각들을 조금  자세하게 그들과 나누기에는 부족한 나의 불어 실력에도 내가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려'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없다. 매일 새벽 비에 흠뻑 젖어있는 파리의 도로처럼 나도 그들에게 어쩌면 흠뻑 젖었나 보다. 2019년과 우리의 수업이 맞물려 마지막으로 향해 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꿈의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비가 안오면 꼭 하늘을 보게 되는 요즘



CAP BLANC - 2
이론시험의 대부분은 주관식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정당화시키는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주관식으로 답을 적은 뒤에 옆에 왜 그 답을 적었는지 이유를 적어야 한다. 주관적인 답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동의할 만한 객관식 문제는 학생들에게 일괄적인 지식을 심어주고 단편적이나 표현력의 자유를 억제하는 단점을 가져오기도 한다. 반면 주관식 문제는 학생들의 자유 반응을 허용하고 답의 정확성과 질을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내가 객관식 시험에 노출이 많이 되면서 자라왔지만 주관식 시험의 그러한 장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존중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학교 끝나고 줄 집에 놀러갔다가 근처에서 햄버거에 맥주



화요일은 C.B 이론 시험이 있는 날이다. 실기 시험의 비중이  크기 때문인지  빼고 모두가 실기 시험 때처럼 긴장감은 없다.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서로 공부 많이 했는지 물어보지만 질문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일 공부 많이  사람이 제일 공부  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한국이랑 똑같다. 전날 늦게까지 공부하고 오전 실습수업 까지 끝난 상태라서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엉켜 버린 느낌이다. 지금   없다. 이대로 두고 시험이 끝나면 이것들은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 믿어본다. 식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대화도 하면서 머릿속의 모든 것을 다시 정리 정돈하는 단순한 복합적 행동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양해를 구하고 그들보다 식당에서 먼저 나왔다. 제과기술, 위생 과학, 식품 과학, CEEJS(Connaissance de l'entreprise et de son environnement économique, juridique et social - 회사와 경제, 법률  사회에 대한 지식)  4과목을 제빵 CAP 과정을 듣는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시험 봤다. 수업시간에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급하게 공부해서 결과에  기대는 없었다. 하타나가 전날 저녁  가지 시험에 나올만한 것을 추려서 보내줬던 것들이 시험에 나왔다. 힐끗 건너편에 창가 밑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왼손은 손바닥을 이마 위에 올리고 있었고 펜을  오른손은 멈춰있었지만 가끔씩 좌우로 움직였다. 시험장은 한숨소리만 가득하고 불규칙적으로 펜으로 무언가를 적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어려운 만큼 그들에게도 어려운 건가?'



파업 때문인지 주말에 도서관도 문닫아서 스타벅스와 집에서 공부



CEEJS 과목은 절반을 지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질문을 이해한 것들은 정확한 전문 지식이나 단축 용어의 본래의 뜻을 모르면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았다. 답을 적어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시험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C.B 가 완전히 끝난 것에 대해 가슴속 깊은 곳부터 묵은 한숨을 차가운 공기 사이로 크게 내뱉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엉켜있던 머릿속의 모든 것들이 느슨해지며 풀리는 느낌이다. '우리 고생했잖아' 맥주 한잔 마시러 가자는 마날과 엘로디의 권유를 뒤로 한채 줄의 오토바이 뒤에 몸을 실었다. 빨리 눕고 싶었다.



기름 넣으려고 줄이랑 같이 주유소


FRANCE 2 티비에서 발송 촬영 / 인터뷰



전염성 감기와 파업

매도 먼저 맞는  좋다고 했던가?   전쯤 나는 24 중에 제일 먼저 감기에 걸렸다. 밀가루가 가득한 주방은 감기에 치명적이다. 마스크를 쓰고 거의 2주간 주방에서 제품을 만들며 모든 친구들의 관심을 받았다. 나에게서 떠난 감기는 하타나에게 갔고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고 고열에 시달리는 것이 끝날 무렵 다발성으로 감기가 친구들에게 퍼졌다. 파업과 맞물려 일주일 동안 24명이 온전하게 출석하는 날이 없었다. 그나마 학교에 무사히  1/3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으며 셰프의 시연 도중 이따금씩 기침 소리를 낸다. 이미 감기와 마주했던 나와 하타나는 한편으로 그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안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파업 때문에 파리 외곽에 사는 친구들은 학교 주변 호텔에 2-3명씩 짝을 지어 호텔에서 묵었다. 그것이 여의치 못하는 친구들은  시간씩 걸려서 걸어오기도 했다. 자가용이나 줄처럼 오토바이로 등교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사는 친구와 등하교를 하기도 한다. 전염성 감기와 대규모 파업으로 번갈아 가며 조퇴나 결석이 잦았던 한주다. 절반 정도 되는 인원으로 수업한 적도 있고 셰프가 2시간이나 늦어서 다른 셰프가  시간을 메운 적도 있다.  덕분에 지각과 결석 없이 평소보다  일찍 등하교하는 나는 우리에게 불어 닥친  악재에서 벗어났다.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감기도 파업도 하루빨리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완고하게 철창으로 닫힌 파리의 지하철 입구에 낙엽이 가득하다. 프랑스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말들이 누군가에 의해 스프레이로 지하철 내려가는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가장 왕래가 많아야 할 곳, 가족들의 품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의 마비로 흉측하게 변해버린 곳, 대규모 파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향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하늘은 수많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눈이 부시게 찬란하지만 오토바이 아래로 보이는 파리는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어느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느냐가 참 중요하다.  



다른 그룹 발표. 이제 우리 모두 발표가 끝났다



선물의 의미


크렘 파티시에(슈 안에 들어가는 슈크림)를 만들다가 시리엘에게 12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물어봤더니 축 내려간 금색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얼마 전에 셰프의 SNS에서 작년 그의 생일날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날이 12일이었다고 말해줬다. 갑자기 다들 분주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셰프의 생일을 위해 깜짝 파티 준비에 들어갔다. 그보다 조금 늦게 알았지만 엠마도 셰프와 같은 12일에 생일이었다.



적막하고 나른한 그날 오후 이론 수업시간에 종이 한 장이 빠르게 친구들 사이로 이동 중이다. 하타나가 손으로 직접 만든 설문지다. '셰프 생일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선물은 무엇이 좋을지, 얼마씩 돈을 모으면 좋을지'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모두 찬성은 하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거나 의견을 내지 않아서 몇몇 친구들끼리 정하고 그날 오후 샴페인과 지역 특산 맥주를 샀다. 나는 그날의 엠마를 위해 혼자서 마카롱을 사기 위해 PIERRE HERME로 향했다.



셰프 !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요


많은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로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 선물들은 사실 선물 자체와 종류에 의미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전체의 과정 안에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셰프에게 주목될 작은 파티 안에서 같은 날 생일인 엠마가 혼자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고 나에게 처음으로 "우리는 함께야"라고 말해준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아가 어느 순간 선물을 어떻게 어디에서 전달하는지에 따라서 비로써 선물의 가치는 최고가 된다.



생일 파티하고 핫초코와 커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 하는중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던 눈치 빠른 셰프는 조용히 자리를 비워줬고 다행인지 우리는 여유 있게 주방에서 그의 생일 파티를 잘 준비했다. 우리는 다 함께 불을 끄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셰프는 24명 모두에게 돌아가며 BIsou(프랑스식 인사)를 해줬다. 내 차례가 끝나고 조용히 엠마를 불렀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그녀의 상처부위 실을 제거한 손에 쥐어주고 생일 축하한다고 해줬다. 그녀가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더니 말이 없다. 그리고는 나를 버럭 끌어안더니 한참 동안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나도 가만히 있다가 그녀를 안아줬다. 선물의 가치가 최고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 세상 행복했던 엠마, 친구들이 실습모자에 써준 편지들




스피드 맨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피드맨이다. 늘 바쁘게 움직이고 속도가 빨라서 친구들이 종종 그렇게 부른다. 몸이 주방의 동선을 기억하고 수업의 전체적 흐름을 읽기 시작해서 이제는 페랑디의 주방이 완전히 편하다. 학교에서는 개인별로 작업할 때 주로 500g 이하의 반죽을 다루기 때문에 매일 평균 100kg(밀가루 한 포대 20kg 기준 하루 쓰는 양의 평균) 무게의 반죽을 다루던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보다 3-4배 정도 빨라서 늘 셰프가 작업이 일찍 마친 나를 다른 사람에게 붙여서 도와주도록 한다. 심지어 셰프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짜 다 했냐고 몇 번 확인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그럴 때마다 어떻게 빨리하는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신기해 하지만 나는 빠른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것이다. 매일 같은 일은 성실하게 한다면 속도는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에게 찾아온다. 생산량과 직결되는 속도가 현장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난 그들에게 '스피드 맨'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빠르게 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고 깨끗하게 작업하라고 말해준다. 빠르게 하려는 순간 더 느려진다.



이번주에 내가 만든 제품들 이제 셰프도 칭찬을 자주 해준다




CAP BLANC 실기 결과


금요일은 24명 중 절반 정도만 학교에 왔다. 셰프도 교통문제로 2시간이나 늦게 주방에 도착했다. 매주 금요일은 실습만 10-12시간 정도 하는데 일주일의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지쳐있는 모습이 보인다. C.B가 끝난 금요 일여서 그런지 나도 긴장감이 풀려버린 것이 사실이다. 청소까지 끝나고 반대로 뒤짚혀진 A4용지들을 가지고 있는 셰프 앞으로 모였다. C.B 실기 점수가 나왔다. 실기 총점 220점을 다시 20점 만점으로 환산해서 10점 이상이면 실제 시험도 합격이다. 우리는 셰프가 가지고 있는 종이를 보고 각 부분의 점수를 알 수 있고 셰프는 이 점수가 우리의 현재 위치라고 했다. 서로에게 점수를 공개하지도 말고 보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다. 종이를 받고 주방에서 나오자마자 친구들이 나에게 오더니 만족하는지 물어본다. 후회가 없었기에 만족할 수 없었을까? 안정권의 점수를 떠나서 내가 생각하는 최소 점수가 아니라서 불만이 가득했다. 점수 자체가 전체적으로 낮은 모양인데 그것은 감독관이 일부러 경각심을 가지게 하려고 그랬다는 이야기 귓가에 스쳤다. 애써 웃으며 친구들을 보내고 학교 의자에 앉아 점수를 바라보았다. '비록 제빵 위주의 경력이지만 내 위치가 여기쯤 있구나' 고객이 아닌 시험을 통한 숫자로 평가받는 내 기술의 위치가 익숙하지 않다. 그날 밤 많은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절대 걱정하지 마. 우리는 네가 제과에 열정과 재능이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C.B에서 너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에게 너의 철저함과 집중력과 속도를 배울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감독관이 경각심을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점수를 준거라고 셰프가 말했잖아. 안 좋은 생각하지 말고 진짜를 위해 우리 더 나아가자. 좋은 저녁 보내 성민.
그들이 원하는 진짜가 
내가 원하는 진짜와 같을까?

 진짜가 CAP 자격증이라면 
나는 너무 허무할  같다.




만족하고 납득 할수 없었던 결과, 한참을 저기 앉아있었다


시험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있지만 개개인의 역량을 놓치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보는 시험이었다. 이미 결정  점수를 보고  없이 시험 보던 날의 나를 생각해 봤다. 다시 생각해도 후회가 없다. 대부분의 감독관들이 나보다 현장 경력이 부족했고 우리의 창의성이나 노련함에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었고 가장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expres(일부러)'  그랬다는 것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많은 감독관의 관점이 다르니 18  어떤 감독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평가가 주관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없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걸까? 기대가 컸던 것일까? CAP 합격하는 것이 내가 프랑스에  최종 목표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번째 맞이 하는 생일 선물로 달갑지 않지만 정확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점수로 확인했고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것에  위안와 힘이 된다. 마지막 한주 남았다.



셰프, 그래도 이 단어 잊지 않고 살게요 어디서든





이전 10화 가지 같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