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Eyre Dec 22.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11주 차(2019.12.16 - 2019.12.20)




브런치에 페랑디의 생활을 처음 적기로 결심했던 순간이  올랐다. 그리고  글과 함께 페랑디의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지금은 페랑디 편의  마지막의 서두에  있다.  글은  경험이고 추억을 간직한  자신이다. 페랑디의 이야기를 적었지만 머리말의 글처럼  글은  순간 기억들의 퍼즐이다. 공기에 흩날려 버리는 말이 아닌 영원히 남길  있는, 내가 좋아하는 글로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한 나와의 약속이었다. 짧은 과정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그래도 탈고의 압박에 부딪힐 때마다 부족한 글에 끝까지  힘과 관심을 잃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 덕분에  마무리할  있게 됐다.  글을 빌어 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페랑디 편의 마지막 퍼즐의 조각을 완성시킬 준비가 되었다. 



다른때보다 유난히 친구들 모습을 더 많이 담고 싶었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순간이 아니라 살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했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픔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우리는 매일 새벽을 함께 시작했고 서로 의지했다. 서로의 인생에서  영향을 주고받았고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의자에 앉아서 듣는 수업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가며 듣는 현장에서의 수업시간이었기에  각별했다. 마지막과 헤어짐의 이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미리 당겨서 슬프지 않기 위해 마지막 한주의 하루하루를  번이나 곱씹으며 소중하게 보냈다. 그리고 시작보다 마지막이  중요한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다.  글을 쓰는 순간에 다시 생각해도 우리의 추억이 마냥 슬픔으로만 남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별이 찬란할  있는 특별함과 다시 돌아올  없고 잊을  없는 경험을 안겨준 나의  셰프와 23명의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 조리모자에 편지 써주는 친구들, 엄청 그리울꺼야





낭만과 최악의 사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비 오는 파리는 최악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월요일 새벽 5시 30분. 등교를 위해 줄과 항상 만나던 장소로 가기 위해 추운 새벽을 가로질렀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약속시간이 몇 분 지나서야 줄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너무 아파서 학교에 못 간다는 사과의 내용이었다. 방금까지 낭만의 도시가 최악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장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학교에 가는 방법을 찾았지만 파업 때문에 쉽지 않았다. 지하철로 가는 입구는 전부 굳게 닫혀있고 택시를 타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학교 근처까지 가는 버스의 운행 여부도 확실하지 않지만 친절한 프랑스인 덕분에 일단 믿고 정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내리는 빗소리만큼 마음도 몸도 다 젖었다.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수업 전에 도착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셰프에게 문자를 보내고 급하게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인파를 가로질러 버스 구석에 겨우 몸을 세웠다. 그리고 줄에게 문자를 보냈다. "괜찮은 거야? 나 버스 타고 학교 가고 있어. 몸 관리 잘해! " 덜컹거리는 버스의 유리창에 소리 없이 빗방울이 튕겨져 나간다. 요 근래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의 흐린 파리의 새벽을 만끽했다. 비 오는 파리가 낭만스러워질 무렵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리는 늘 그대로인데 낭만도 최악도 모두 내 마음 안에 있었구나 싶었다. "저 이번 역에 내려요! " 늦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줄의 오토바이가 소중했던 월요일 새벽, 그리고 첫 지각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생일



12월 14일, 올해는 토요일이 내 생일이었다. 프랑스 친구들과 셰프의 문자가 토요일 하루 동안 불규칙적으로 나에게 도착했다. 답장을 하면서도 태어나서 외국인에게 처음 받아보는 생일 축하가 신기하기만 했다. 월요일 20분쯤 늦게 주방에 도착했다. 셰프가 어깨에 아직 도구가방이 걸려져 있는 나를 안아주며 생일 축하한다고 Bisou를 해주었다. "고마워요 셰프" 하타나와 엠마, 엘로디가 차례로 내 손에 선물에 쥐어주며 한참을 꽈악 안아주었다. "생일 축하해 성민"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몇 번 더 포옹과 Bisou를 마치고서야 도구가방을 어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지각한 나에게 과한 생일 축하였다. 뒤늦게 수업 준비를 하는 동안 엘로디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딸기잼과 살구술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오늘따라 유난히 빨간 그녀의 입술 색깔 때문에 사실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엘로디와도 이제 한주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슬픔을 감추기 위해 환하게 웃자 "이해한 거 맞지?" 하더니 오랜만에 엄지를 올려주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 머리카락에 남은 빗물이 마를때쯤 빗줄기는 약해지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일을 축하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생일 받은 선물과 그들의 편지, 주말이라 늦게 챙겨줘서 미안하다던 그들




기능보다 더 값진 것


기술은 사물을 인간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나 그런 사물을  다룰  있는 방법이나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기능은 권한이나 직책에 따라 일정한 분야에서 하는 역할과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습관처럼 보통 제과제빵에서도 '기술'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언어학적이나 논리적으로 '기능' 맞는 말이다. 한국의 자격증 시험들이 '제과제빵 기능사, 제과기능장' 것이  이유다. '제과 제빵 기술 대회'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나와 같은 우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기능자'들이다.



 예쁜만큼 만들기 까다롭지만 셰프에게 극찬을 받은 나와 엘로디의 제품들


높은 기능이나 수료증 따위가 필요했으면 다른 더 명성 있는 학교에서 짧은 단기과정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페랑디를 통해서 내 제과 기능이 혁신적으로 개선되거나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도 CAP 자격증 취득이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이유 없이 좋아했던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나에게 필요한 '쉼'을 통해서 내 직업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내 목적과 결과에 만족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배우는 것과 느끼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배우는 것을 통해 느낄 수도 있고 느끼는 것을 통해 배울 수도 있다. 나는 사실 후자였다. 경험상 배움에만 중점을 두면 많은 것을 놓친다. 세상에는 배움보다 기능보다 값진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것이야 말로 현장에서 근무할 때 필요한 덕목이다. 그 덕목이 갖춰진 사람에게 시간이 더 해지면 '기능'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페랑디를 통해 겸손함을 배웠고 솔선수범과 배려에 대해 더 확실하게 배웠다. 주변 친구들보다 늘 앞을 먼저 봤고 셰프의 손을 보며 하루의 제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읽어 내고 일주일 전체의 수업을 내다봤다. 주방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손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며 8년을 넘게 일했다. 남들과 다르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물을 관찰하려는 일련의 느끼는 과정이 곧 '배움'의 지름길이다. 한 가지에 몰입하지 말고 전체를 보면 기능보다 값진 것을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24명의 얼굴, 크리스마스 부쉬 드 노엘



논리 없는 고집은 아집이다


어느 날 제품에 들어갈 크림을 만들기 위해 전기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오니 냄비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 자리에서 다른 친구가 자신의 냄비를 올리고 사용하고 있길래 "내 냄비 봤어? 여기 있었는데?" 했더니 자기가 아니라고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그 옆에서 보던 시리엘이 "네가 성민이 냄비 내리고 네 거 올렸잖아! 왜 거짓말해?" 했더니 억울한 듯이 자기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셰프가 와서 끝이 났다. 시리엘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내 냄비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보았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네가 내 냄비를 치우고 너 냄비를 올렸으니 비켜달라고 말하거나 네가 내 것 치웠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이미 대화의 흐름을 잃어버린 이 대화에서 내가 아무리 불어를 잘해도 그들보다 부족한 불어로 굳이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그녀의 제품이 12명 중에서 제일 늦게 만들어졌다. 가끔 그녀는 자신의 조금 남들보다 느리다는 이유로 남들이 각자 준비한 재료나 도구를 말없이 가져다가 쓴다. 단점이 치명적일 때는 장점을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내가 제일 빠르고 경력이 있어서 인지 모르지만 몇 주 전 그녀는 나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그녀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잘못에 대한 '인정'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라고 느꼈고 그대로 이야기해줬다. 고맙다고 웃으며 돌아선 그녀는 그날 오후 셰프와 언성을 높이며 억울한 듯이 무언가에 대한 핑계와 잘못을 부인하고 있었다. '내가 오전에 누구랑 이야기를 한 거야?' 말없이 불편한 그곳에서 시선을 피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점보다 장점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 일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노력했다. 대화가 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위치에 맞게 행동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원만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논리 있는 고집은 좋아하지만 아집은 질색이다.




교육자의 길, 셰프라는 무게



마지막 이론 수업시간에 '좋은 셰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떠한 재료와 환경에서도 지식과 경험으로 일정한 제품을 실수 없이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과학적이고 이론적으로 납득이 갈 수 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셰프가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좋은 셰프의 여러 가지 덕목 중 하나를 이야기 해준 그 대답의 자체보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셰프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 압도되었다.



그리운 셰프들, 배운 대로 당신들처럼 좋은 셰프가 될게요



셰프는 해년마다 우리와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우두머리다. 주방에서 만큼은 수없이 사진이 찍히는 인기스타이기도 하고 그의 작은 언행과 행동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이야깃거리에 오르기도 한다. 그들은 수없이 같은 제품을 반복하고 학생들의 반복되는 실수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들을 바라봐도 가끔은 놀랄 때가 많다. 셰프 두 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정한 톤 이상의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놀란 표정을 짓지 않는다. 장난 삼아 이야기하던 '셰프'라는 위치와 무게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처럼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대표 과자로 손꼽히는 마카롱 사이에 들어갈 캐러멜 크림을 만들었는데 냉장고에 넣어 놨더니 돌처럼 굳어버렸다. 셰프에게 보여줬더니 웃으면서 해결 방법을 순서대로 알려주고 다른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떠났다. 추가할 크림의 양을 숫자로 정확하게 말했는데 심지어 1g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캐러멜 크림에 광택이 나고 마카롱안에 들어가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슈퍼맨은 그렇게 떠났다.



11년 전 제과제빵 전문학교에서 처음 학문으로써의 이 직업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첫 직장에서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줄 곧 교육자의 길을 꿈꿨다.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보다는 그들이 내가 가진 실수나 의문점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하거나 해결해주지 못했던 반감 때문이었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기능, 실수한 제품을 다시 판매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기능, 그 기능을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기능. 기능을 가르치는 교육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필수 덕목임에 틀림없다. 모든 말과 행동이 같은 선상에 오게 하기 위해서 셰프는 페랑디에서 그렇게 수없이 달려왔고 또 달려갈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소중한 순간을 위하여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모두가 다림질이 잘된 깨끗한 순백의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 셰프가 우리가 쓰던 모자의 2-3배쯤 되는 큰 셰프 모자를 나눠줬다. 서로 어색한지 모자를 자꾸 만지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기 바쁘다. 몇몇은 옷매무새를 몇 번이고 다듬는다. 나도 몇 번이나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모자의 크기만큼 무게도 더 무겁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라고 했던가. 새로운 출발의 앞의 우리들의 어깨가 모자의 무게만큼 무겁다. 조명이 좋은 곳에서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고 모자를 공중에 던지는 것으로 우리의 CAP의 과정이 정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들 큰 셰프모자를 어색해하지만 이 모자 쓸 자격 있어 !


그들을 위해 나는 개인적으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국 제과점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흔한 빨간색 고무 주걱이 프랑스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무틀로 찍어서 만드는 한국의 약과와 고무 주걱 그리고 내가 일일이 꾹꾹 눌러쓴 손편지까지 25개를 각각 포장했다. 한국에서 준비해서 택배를 보내 프랑스에서 받고 다시 내가 준비하기까지 노력과 정성이 쉽지 않았다. 무려 한 달이 걸렸다. 주말에 각각 담을 선물 종이가방과 엽서를 사고 불어로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조금씩 학교 사물함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진짜 프랑스를 보여준 그들에게 외국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였다.



친구들 엽서를 직접 고르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하타나에게 따로 줄 선물까지



짐이 너무 많아서 비가 엄청 오는날 결국 택시를 탔다. 막걸리와 함께


우리는 각자 가져온 삼페인과 와인, 프랑스 음식들을 3개월 동안 열심히 우리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었던 작업 대위에 펼쳐 놓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우리의 과정을 축하하기 위한 작은 파티였다. 셰프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하고 샴페인을 각각의 잔에 부어주었다. 그리고 단체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산 선물을 두 셰프에게 전달했다. 나도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 선물을 셰프와 친구들에게 전달했다. 셰프만 고생하고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오늘의 주인공이고 3개월 동안 잘 달려왔다. 내 편지를 읽은 엠마가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전염처럼 모두 울기 시작했다. 셰프가 돌아다니며 모두 안아주었다. 몇십 번의 Bisou와 눈물 가득한 포옹을 했는지 조리복 어깨가 그들의 눈물로 젖었다. 짧았던 3개월이 진심으로 특별했던 이유는 꿈이 간절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어두운 새벽을 맞이 했기 때문이다. 페랑디의 모든 불이 꺼졌다. 내년의 새로운 수업 전까지 다시 켜지지 않을 것이다. 페랑디의 학생이라서 행복했고 마지막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하게 잘 마무리해서 감사하다. 안녕 페랑디.


내가 준비한 선물과 눈물바다였던 마지막 만찬


사물함 짐을 다 정리하니 진짜 마지막이 실감난다


2019년 페랑디 제과 CAP를 통해 배우고 얻은 것이 수 없이 많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중에 한 가지만 뽑으라면 나는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사람"이다. 23명의 친구들과 두 명의 셰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들때문에 너무 행복했어요 감사합니다



친구들에게 받은 메세지, 그리고 셰프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Sungmin, tu es l’interprétation de la gentillesse sur notre terre. Quelle humilité, tu nous manqueras à jamais et à la formation Ferrandi.
 (성민, 너는 지구 상에서 친절의 정석이야.
최고의 겸손, 우리는 너를 영원히 그리워할 거야)
-Chef Bruno-



끝과 시작은 늘 연결되어 있어.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이지

잊지 마 우리가 함께 했던 51일의 순간들을


Joyeux Noël et Bonne année



 




이전 11화 가지 같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