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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Feb 14. 2020

가지 같은 시간

리츠호텔 1주 - 6주 차(2020.01.06 - 2020.02.13)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니 13시 17분을 지나고 있다. 역 안에서 낮은 천장을 두고 반쯤 보이는 파리의 푸른 하늘이 무색하게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Madeleine 역 안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 곳은 내가 일주일에 다섯 번씩 오는 곳이다. 가끔은 오늘처럼 푸른 하늘에서 거센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Madeline 사원 주변을 방황한다. 변화가 많은 파리의 날씨처럼 요즘 내 마음은 변화가 많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내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준 새로운 곳에 나를 정착시키는 시간과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센 비가 점차 그치고 역 밖으로 향하는 젖어있는 계단 위에 오늘도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 계단 위에 올리는 발걸음의 무게와 고민은 매일 달랐고 나는 외국인이지만 여느 프랑스 직장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아직 한겨울인데 벌써 봄맞이가 한창인 꽃들



내 직업보다 어쩌면 글을 쓸 때 내가 좋아하는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고 살아있음을 더 분명하게 느낀다. 내가 쓴 글을 보면,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쓰고 나서도 몇십 번을 수정한 기억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수 없는 내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그때의 순간을 기억한다. 기억은 우리에게 잊히지만 글은 남는다. 나는 이 글들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글인지 잘 알고 있다. 한 달이 넘게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글을 써야 하는 스스로의 압박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의 마음가짐으로 글을 쓴다면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는 글을 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나는 글을 못쓴 것이 아니라 안 쓴 것이다. 다시 펜을 잡아 내 이야기를 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퇴근길에 보는 마들렌 사원





파리 RITZ 호텔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
나에게 강한 끌림을 주었던 그날



프랑스의 5성급 호텔 중에서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호텔에게 프랑스 관관청은 2009년부터 “Palace” 등급을 부여하는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물론 여러 가지 엄격한 검사와 합당한 가치가 인정돼야 하지만 “세계에 프랑스의 이미지를 드높일 수 있는 높은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을 내 걸었다. 한번 부여받은 등급은 5년간 유효하며, 프랑스에 총 31곳의 “Palace” 등급의 5성급 호텔이 존재한다. 파리 리츠도 2012년에 시작된 대규모 공사를 거친 뒤 당당하게 Palace 등급을 획득했다.



문학가들의 흔적과 호화로움이 공존하는 곳



“여러 문학가와 세계적인 유명한 사람들이 다녀갔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초호화스러운 호텔”을 제외하고 나에게 이 곳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특별할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실습을 하기 위해 한 달간 진행되었던 4번의 면접에서도 받았던 질문이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날카롭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다. 나는 왜 여기 있어야 하고, 왜 그들은 나를 채용해야 하는가?



리츠호텔에서 실습생으로 근무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페랑디 수업 일정에서 의무인 4개월간 현장 실습은 입학 전부터 고민이었다. 2018년 늦은 겨울, 리츠호텔에 고객으로 처음 방문을 했고 나는 그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학교를 시작하기 전 같은 해 늦여름 이미 나는 면접을 다 마치고 4개월간의 실습 합격 통보를 받아냈다.




내가 처음 먹은 리츠 호텔의 디저트는 산딸기 치즈 케이크와 마들렌(흔히 생각하는 구움 과자류의 마들렌이 아닌, 안에 무스와 크림이 들어있는 형태만 마들렌과 유사한 케이크 같은 제품)이었다. 그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빵과 디저트를 보면 이런 맛이 나겠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산산조각 부셨던 제품들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보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조합이었다. 고객의 입속에서 사라지는 크림의 순서까지 계산했다는 느낌에 존경심이 먼저 들었다. 이후 종종 세계적인 제과 셰프들의 제품을 먹기 위해 Palace 등급의 파리 호텔을 다녔지만, 리츠호텔의 디저트만큼 신선함을 나에게 안겨주지 못했다. 아니 나는 이미 리츠호텔의 자체의 화려함보다 그의 디저트에 담겨 있는 철학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것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기에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이 제품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내가 제과를 대하는 태도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고, 모든 것이 적합했다. 진열되어 있는 디저트에서 강한 기운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나와 리츠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다른 Palace 등급 호텔의 디저트들




해가 지지 않는 집, 그리고 저녁



2019년 1월 6일 월요일 오전 9시에 첫 출근을 했다. 페랑디 이별의 여운을 안고 리츠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동안 몇천 번을 출근했던 발걸음과 달랐다. 프랑스에서 내가 꿈꾸었던 대로 이뤄졌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4번의 면접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면접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리츠의 한 일원으로써 출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어깨는 가볍지만 적당한 자신감이 있었고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무게가 밀려왔다. 정확히 그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없지만 주변 프랑스 친구들의 연락에 내가 엄청난 곳에서 실습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틀 동안 나는 그렇게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고 소개를 들으면서 그들의 구성원이 될 준비를 했다. 


입사 동기들과 이틀간 교육 시간



직원들끼리 리츠라는 말보다 "La grande maison"(큰 집)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집은 하나의 집을 연상시키는 가족 같은 느낌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은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숙박업소이다. 이 곳은 해가 지지 않는다. 약 7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누군가가 잠든 시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틀이 끝나고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녁 제과팀(16시~24시)에 배정받았다. 과연 저녁의 제과팀은 어떤 느낌일까?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매일 저 기계에 직원 카드를 가져다 대면 잘 다려진 유니폼이 나온다



귀를 열고 매장 전체를 읽어라



직원 출입구로 들어서면 개미굴처럼 길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양한 리츠의 유니폼을 입은 나와 다른 외국인들이 분주히 움직이지만 고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하라서 창문은 없지만 창문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어떻게 이곳에 이 많고 큰 제과 기기들을 적절하고 효율적인 위치에 집어넣었을지 의문이 드는 주방이 나타난다. 제과 주방의 문을 열면 3개의 음식을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이곳에서는 스피커로 수시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고객이 무언가를 주문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영수증을 뱉어내는 기계가 있다. 그리고 작은 무선전화기는 조금 직급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늘 가지고 다닌다.




더 자주 먹어도 먹을때마다 놀라는 리츠 제품들



2년 전까지는 '과장'이라는 직급의 한국 제과점의 책임자였고, 3개월 전까지는 파리 페랑디의 학생이었다. 지금은 리츠호텔의 제과팀 실습생이다. 불과 길지 않은 시간에 나의 신분의 많은 변화가 있지만 나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내가 다 원한 것들을 하나씩 이뤄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무선전화기, 쉴 틈 없이 영수증을 뱉어내는 기계는 다른 파트와 제과팀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호텔 내부의 고객이 서비스를 받는 공간에서 고객에서 주문을 받으면 즉시 3가지 중 한 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이 되고, 우리는 분주하게 그것을 준비한다. 주방 안에서 직급을 불문하고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호텔 내에 근무하는 인원수만큼이나 이곳의 시스템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 재료의 위치, 제품을 잘 만드는 방법을 빠르게 터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매장, 그 주방의 시스템을 빠르게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이다. 기술은 모든 것 이후의 제일 마지막 단계다. 숲을 볼 수 있으면 작은 길은 금방 찾아갈 수 있다.




셰프, 그리고 그의 팀원들



첫 주방 근무 날, 나에게 큰 신선함을 안겨준 디저트를 만드는 팀원들과 인사를 하고 주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세계적인 제과 셰프 François perret를 만날 수 있었다. 금장의 리츠 로고와 그의 이름이 새겨진 우리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는, 주방 평균 키보다 한두 뼘은 더 크다. 유일하게 주방에서 앞치마와 조리모를 하지 않는 그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고무로 된 시계를 차고 있다. 그의 표정에 여유가 가득하다. 세계적인 셰프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가볍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도 엄청난 압도감에 눌리는 느낌이다.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받은 직원들은 "Oui, Chef"을 외치며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불과 9개월 전쯤 이 호텔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와 내가 멀지 않은 거리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이 밀려왔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방 들어가는 복도에 셰프사진과 그의 책에 친필사인


프랑스에서 셰프라는 말은 참 중요하면서 무거운 단어다. 제과팀 인원은 나와 같은 실습생을 포함해 대략 35명 정도 된다. 직급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서로의 직급을 부르거나 다른 호칭을 쓰지 않는다. 한 제과점에서 셰프는 단 한 명뿐이고, 그를 제외한 모두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주방에서 직급을 알아야 하는 것보다 그들의 이름을 빨리 알아야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이름보다 직급을 아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이미 직급이 묻어 나온다. 나와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저녁 팀원은 보통 5명에서 6명(sous-chef 1명, commis 2~3명, 나머지는 실습생)이다. 우리가 출근하고 그 전 시간 근무자들과 한 시간에서 두 시간가량 겹치는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받는다. 나는 비록 같은 규모와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제과점이라는 같은 유사형태의 직종에서  그들의 모든 직급을 거치며 올라왔다. 그들의 행동과 업무방식, 누군가를 가르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에 큰 관심이 간다. 비록 직급을 나누자면 나는 실습생이지만 머리와 몸은 아니길 바랬다. 내 과거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 버리고,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그때의 나는 그들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조금 더 현명하고 보람 있는 실습 생활을 그리고 있었다.



반복되는 업무에서 보람 있게 일하는 방법
 대화와 상대를 이해하기



제과제빵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실습 9개월 동안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모카번을 굽는 일을 했다. 그리고 이후 2년이 넘게 오븐 업무를 봤다. 다른 것은 일체 할 수 없었다. 한국 제과점의 안 좋은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을 이겨내고 그 제과점에서 4년 만에 최연소 부점장을 달았다. 장소와 환경을 탓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춘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반복된 일에 당연히 능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현명하게 일해야 하며 자신의 업무영역은 스스로 넓혀 나가야 한다.


매일 출근하면 나는 주로 과일 손질을 한다. 멋있게 리츠 유니폼을 입고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과일을 손질한다. 다음날 호텔 조식을 준비하는 것에 일부이다. 며칠 지켜보니 꼭 해야 할 일이지만 덜 중요한 업무다. 처음 이주일 정도는 당황스러웠다. 몇 시간 동안 구석에서 초콜릿실을 바라보며 과일을 손질하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유리창 건너편으로 멋있게 초콜릿을 만드는 동료를 바라보니 자괴감도 밀려온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나는 내 실습 기간 동안 과일 손질이 주된 업무가 될 것 같았다. 무언가 나를 위해서 현명한 제안을 할 상대와 명목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고 싶은것은 어떻게든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타입


롤라라는 친구는 27살의 금발의 친구인데  페랑디의 시리엘보다는 연한 금발이다. 리츠는 3번째 직장이고 전체 경력은 5년쯤 되는데 경력에 비해 할 수 있는 게 많은 친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SNS 친구가 되고 모르는 것들을 퇴근하고 귀찮게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변해준다. 꼼꼼하고 제과를 대하는 태도나 기술에 있어서 배울 부분이 많은 친구다. 그리고 저녁팀에서 영향력이 있는 친구다. 나는 그녀에게 확실히 배울게 많다.



롤라는 내가 한국에서 일했었던 것도 알고, 내가 이 직업에 대해 얼만큼의 열정이 있는지 아는 친구다. 내가 3주쯤 되었을 때 퇴근하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Je fais de mon mieux pour en savoir plus. Si je pense que je suis un stagiaire, je m'arrête là et je pense que je peux faire beaucoup de choses si j'essaie” (나는 더 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만약 내가 실습생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거기서 멈출 것이고, 내가 시도하면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했고 나와 일하는 것을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자기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머지않아 나는 리츠호텔 실습생 중에서 처음으로 분사작업(제품에 원하는 색을 분사기로 입히는 작업)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서 조금 더 다양한 작업과 전체를 보는 눈을 익히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일을 지시받으면 꼭 질문을 한다. 이것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에 쓸 것인지?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는지 있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이 재료를 쓰면 장점이 무엇인지? 어렵긴 하지만 내가 아는 지식과 비교를 해서 질문해보기도 한다. 여전히 과일 손질은 내 몫이다. 내가 충분히 티 안 나게 느리게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그 작업을 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이 깔끔하고 빠르게 한다면, 나는 그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고 새로운 일들을 더 많이 해볼 수 있다. 어떤 업무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 업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업무의 다음을 꿈꾸고 실현하자. 그리고 기왕이 하는 거라면 즐겁게 하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리츠 직원 식당의 토끼고기


특히나 프랑스는 대화나 요구가 중요하다. 때가 되면 해주겠지 보다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한국보다 텃세나 실습생을 무시하거나 일방적인 고정 업무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생각을 전달하기 편하고 호칭이나 직급을 부르지 않아도 돼서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내 생각을 확실하게 롤라에게 전했던 것은 내가 기존의 업무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어느 수준에 다 달랐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심지어 지금까지 실습생들 중에서 다른 업무를 원하는 사람도 없었고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내 미래를 그려본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



제과에서 자주 쓰이는 Ganache는 초콜릿과 우유와 물엿 등을 넣고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 만드는 소스의 일종인데, 다른 크림과도 섞어서 많이 쓴다. 보통은 바로 만들어 쓰는데 어느 날 저녁에 냉장고에 남은 Ganache 소스를 사용할 일이 생겨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녹인다는 것이 그만 사용할 수 없는 상태까지 녹여버렸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만들겠다고 하니 모두 모여들어 엄청 심각해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고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노파심에 내 곁에서 만드느 과정을 몇 번이고 설명해주는데 그것도 그냥 부끄럽고 화가 났다. 결국 퇴근할 때까지 나는 그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나는 항상 남의 실수에는 관대한 편이지만 내 업무적 실수에 대해서는 냉철함을 넘어서 감정이 주체가 안될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더 노력하면 되는 부분을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알고 있던 것에 조금 부족하거나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그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솔직해 지자. 나는 그들 모두를 내 선배로써 인정하지 못했다. 달라지고 싶어서 왔고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무너지고 부서지면 고쳐질 수 있을까? 제일 막내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직장이 나에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될지, 나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게 될지는 내 노력과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롤라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았다.


j'ai compris que t étais en colère après toi! Il ne faut pas se mettre dans tes états, il faut juste faire attention et précis sur tout ce que tu fais, bon courage et bonne soiree!

( 네가 너 자신에게 화났던 것을 이해해. 너의 상황들에 너를 넣을 필요가 없어. 단지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신중하고 정확하게 해야 해, 힘내고 좋은 저녁 보내 )
저 답장 받고 나오는데 비가 엄청 오고 있다 12시 37분 회사 앞





철저한 완패



저녁팀이 해야 할 일중에 마지막은 창고에 가서 다음날 필요한 재료를 가져와 주방의 냉장고에 가득 채워 놓는 일이 있다. 빠진 재료가 없도록 채워 넣을 때 반드시 '선입선출'(먼저 입고된 것은 먼저 출고한다)을 생각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을 앞쪽에 놔두고 그것을 먼저 사용해야 한다. 음식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몇 번 강조해도 중요한 부분이고, 이곳에서 조차 10번은 넘게 들었다.


퇴근길과 출근길에 본 에펠탑, 다시 예전처럼 설레야 할텐데



나는 리츠 출근 이후로 매일 30분에서 40분을 일찍 주방에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습관이다. 주방뿐만이 아니라 약속도 보통 사람들보다 일찍 가는 편이다. 여느 때처럼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날 조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롤라와 sous-chef 한 명이 오더니 어제 재료 정리할 때 날짜 확인 안 했는지 물어보고 먼저 사용할 것을 앞에 두라고 이야기했었잖아 하며 표정이 좋지 않다. 두 사람이 출근하고 인수인계 도중에 아침 근무 책임자에게 주의를 받은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제저녁에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그것을 정리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억울한 마음에 라텍스 장갑을 벗고 그들에게 주의를 준 오전 sous-chef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Hier soir, je n’ai pas rangé à la chambre froide et à la crémerie, donc, c’était pas ma faute!”( 어제저녁, 내가 냉장실과 크림 창고를 정리하지 않았어. 그러니 내 잘못이 아니야) 뿌듯한 마음과 당당함도 잠시, 그녀는 완벽하게 나에게 민망함과 내 그 발언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Sungmin, C’était soit ma faute, soit ta faute, soit notre faute. C’est pas grave qui a rangé, C'est une chose qui est plus importante que nous devons tous vérifier ça » (성민, 그것은 내 잘못이었고, 너의 잘못이었고, 우리의 잘못이었어. 누가 정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확인하는 거야)



드디어 맡아서 하게된 분사작업 진짜 이날 날아갈 것 같았다


강함을 부러지게 하는 것은 더 큰 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다. 직급이 올라가는 것과 경력이 쌓이는 것이 대단한 것은 기술이 뛰어나게 훌륭하거나 직원들에게 강요하거나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해서가 아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한 명씩 만들어 내는 것,  직원들의 눈높이에서 경청하고 그들을 존중해주는 것, 직원들을 잘 다독이고 그 팀이 잘 운영되게 하는 것에 있다. 그들이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더 나은 환경에서 최상의 업무 상태로 일할수 있게 해주는 것이 책임자의 역할이다. 웃으면서 오늘도 파이팅하라는 그녀의 엄마 같은 미소에 나는 철저하게 완패했다.



배합표가 언젠가부터 무기가 되었나



돈으로 배합표를 사고파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배합표 때문에 오랜만에 연락을 받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배합표는 제품을 만들 때 중요한 숫자들이 적힌 고급의 성장 수단과 제과사들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5년 전에 처음으로 오픈 매장을 준비하는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 때 느꼈다. 재료 하나만 바뀌고 장소만 바뀌어도 몇 년을 만들던 제품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남의 제품을 같은 배합표로 똑같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내 제품이 되지는 않았다. 배합표를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의 여부에 따라 좋은 제과사가 될 수 있을까에 문득 생각을 하다가 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생각을 영원히 지우기로 했다.



원없이 먹고 또 먹고 리츠 디저트와 신제품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리츠의 제품은 인기가 좋다. 새로운 디저트가 나올 때마다 방송이 나가고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독특한 그만의 디저트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독창성은 유일 무의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디저트가 과하지 않아서 좋다. 제과가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맛의 균형은 무시한 채 모양에만 너무 신경 쓰는 제품들을 보게 될 때마다 불편하다. 셰프와 디저트에 대해 이야기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sous-chef들에게 그의 생각과 재료에 관해서 많이 물어본다. 호텔에서 쓰는 재료들을 한국에서 다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구해서 만든다고 한들 그 제품은 판매가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원재료의 선택은 물론 제품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것에 따라 제품에 가격이 정해지고, 그 이전에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합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나는 수만 개의 배합표를 가지고 있고 기술이 화려한 사람보다 절제할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은 뚜렷하되 생각이 갇혀있지 않은 제과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꼭 필요한 재료와 과하지 않은 맛을 내기 위한 건강한 재료를 넣고 기본적인 제과 이론과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배합표 자체가 좋은 제과사가 되기에 큰 무기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배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면 내 인생은 남의 인생이 된다.







좋은 셰프란 어떤 사람일까?





  동안 리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 나갈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어떻게 풀어낼  가장 나다운 이야기들이 될지 생각했다. 두서가 없으면 없는 대로, 꾸미지 않으면 꾸미지 않은 대로 그것은  글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나를 위한 기록이지만 누군가에게 읽힐 글이다. 리츠호텔의 화려함이나 제과팀 내부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흥미 없는 글이   있다. 나라는 사람 자체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곳에서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것을 나를 통해 다시 해석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적었고, 적을 것이다.  글이 앞으로 "가지 같은 시간 : 리츠호텔 " 좋은 신호탄이 되길 바라고,  글을 통해 글과 행동과 언행의 간격이 조금  좁혀질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글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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