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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Feb 21. 2020

가지 같은 시간

리츠호텔 7주 차(2020.2.14 - 2020.2.20)




새벽 12시 36분. 하루의 시작을 호텔에서 한다. 이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그 좁은 출입구를 서둘러 빠져나온다. 바깥 찬 공기가 그리웠던 것인지 모른다. 이 시간에도 화려한 호텔의 정문과 다르게 직원 출입구가 있는 이 거리는 어디선가 내뿜는 불빛만으로 가까스로 거리를 밝힌다. 직원 출입구에서 나와 바라보는 Cambon 거리가 낯설다. 정확히 말하면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안 느꼈던 매일 같은 시간의 새벽의 공기와 같지 않음에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높지 않은 파리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은 제한적이다. 호텔과 안의 내 모습과 지금 이 시간의 내 모습은 다르지 않다. 달빛이 유난히 밝아 따라간 거리에 중간쯤에 유일하게 불이 켜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 맥주 가게는 대부분의 손님이 나와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리츠의 직원들이다. 피곤할 법도 한데 가끔은 한적한 이 파리의 새벽을 골목골목 누비고 싶은 마음도 억누를 수 없다. 마치 오늘처럼. combon 거리는 그렇게 또 지난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에게 하루의 끝은 누군가에게 하루의 시작이다. 모든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combon 거리에 나를 태운 택시가 미끄러지듯이 지나간다. 벌써 2월의 끝자락으로 가고 있다.



퇴근하고 나와서 바라보는 combon 거리




올바른 인재상, 건강한 회사


한국의 서점에 가면 회사 생활의 노하우가 담긴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회사란 무엇인가? 會社 모일 회, 일 사.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다. 그다음 필요한 조건으로는 "영리성"이 있어야 한다. 회사마다 구성원들마다 가지각색인데 이게 의미가 있는 책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전에 나도 회사원일 때는 손이 먼저 갔었다. 재밌는 점은 작가와 책의 구성은 달라도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다른 규칙이 없을 것 같지만 나도 11년째 제과제빵이라는 한 직종에서 변함없이 몸을 담고 있으면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다듬어진 것이고 또 다듬어질 선상에 있다.




내가 배움이라는 명목이 아닌 일을 시작한 리츠호텔의 실습 생활은 정확히 주방을 떠난 지 27개월 만이다. 언어적인 부분도 물론 걱정이 되었지만 더 걱정되었던 것은 경력자로서 누군가에게 다시 평가받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하는 일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소홀히 한다기보다는 다른 곳에 더 공을 들인다. 일이라는 것은 반복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속도라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생각의 중점이 흐려지면 모든 것을 놓친다.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개개인의 특성을 알아내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다.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굳이 그것을 가지러 가지러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유심히 보고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밝게 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있었지만 이 넓은 큰 집에서 가족이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전체가 운영되는 상황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나는 각자가 하는 업무와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보았다. 펜과 노트를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글씨가 안 보일 때까지 들고 다니던 11년 전의 내 모습은 이제 없지만 보이는 것도 봐야 할 것도 많았다.



들어갈때 나올때 느낌이 매우 다른 곳, 직원 출입구




상대를 알면 내가 일해야 하는 방향이 보인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직원이 그 회사의 구성원이 된다. 어느 회사에서 근무를 해도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은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내가 입사했고, 이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과 가치관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하는 시기다. 그것이 없으면 주변의 모든 것이 장애물이고 지속력이 떨어져 원만한 회사생활을 하기 힘들어진다. 일을 못해서 실습생이 아니다. 바라는 기대치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사장처럼 행동해라" 참 어려운 말이지만,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난 직급은 실습생이지만 이것이 잠깐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있는 동안 잊지 않으려 한다.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귀를 기울이고 웃음을 잃지 않으면 그들도 마음과 손을 내밀어 준다. 그 관계에 고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미 건강하고 슬기롭게 일할수 없다. 모든 직업의 기술적인 문제는 제일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다.


나는 회사에서 만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배운다는 이야기를 선배나 동료들에게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것을 잘해서 그렇지 않다. 여기 와서 한국에서 해보지 못한 일을 할 때가 더 많다. 회사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이거 배우고 싶어요"와 "이거 제가 할 수 있어요, 해볼게요"는 땅과 하늘의 차이다. 몇 주 전 롤라에게 내가 요구했던 것처럼 기회가 왔을 때 적절하고 정확하게 내 입장과 요구를 이야기하면 언어가 원만하지 않아도 그들은 내 마음을 받아 드릴 확률이 높아진다.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 웃음으로 인사하는 것, 내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내 생각과 목적을 확실히 하는 것. 내가 당신들의 안전한 구성원이 됐다는 느낌을 그들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내가 그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들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뜨거운 진심은 전해진다.





밸런타인데이



제과점에서 근무하면 한국의 설이나 추석처럼 큰 성수기처럼 중요한 날들이 있다. 제과점의 품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날만큼은 업무량도 많고 매출을 올리기에 좋은 시기다.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같은 날이다. 리츠는 작년과 동일하게 마들렌 산딸기 제품을 준비했다. 파스텔 톤의 핑크색에 빨간 작은 하트를 분사해놓은 제품인데 기존의 리츠의 제품에 대한 기대층이 높은 고객은 대부분이 만족도가 높았다. 충성고객들은 제품에 대한 기대도 높지만 한번 신뢰한 제품은 꾸준히 찾는다. 제품을 진열하러 제과사들 올라가는데 그날은 고객과 접촉할 수 있는 공간부터 그 제품은 유례없는 사진 세례를 받았다. 내가 만드는 모든 공정에 관여하지 못했지만 내심 뿌듯했다. 주말까지 판매하고 이제 내년에 만나볼 수 있는 제품이 되었지만 한국에서 가서도 내 혀와 머리가 그 맛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진열을 마치고 주방으로 오는 길에 생각했다. 단순히 제품이 화려하고 맛있어서 사람들이 리츠의 디저트에 환호하는 것일까? 나는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모양만큼 맛도 훌륭했던 원없이 먹은 산딸기 마들렌



필요한 구성원이 되어라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필요한 구성원이 아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퇴사하고 또 그 사람이 필요하면 비슷한 만큼의 실력을 가지거나 더 역량이 뛰어난 직원을 채용하면 된다. 더군다나 일을 잘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일하기 힘들다. 인격이 갖춰진 사람과는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 오래 할 수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두 사람은 누적되는 결과치가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심지어 지속력이 없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차별화 두고 마음과 귀를 닫아 버린다. 나와 같이 일하는 직원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나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들이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업무 하는 공간도 "존중"이 필요하다. 리츠에서 나는 내가 나의 직원이 되어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들의 생각도 읽어보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하고 내가 먼저 존중하려고 한다.


직급에 의미를 두는 순간 자신도 멈추고 주변도 힘들어진다. 책임자로 있을 때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잘 모르겠는데 같이 알아보자"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럼으로써 나도 더 공부하게 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했다. 존중받는 느낌이 회사를 다닐 때 들었다면 서로 성장하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진 것이다.


내가 리츠에서 채용된 이유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특별한 것 없었지만 난 이미 필요한 사람으로 채용된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업무부터 성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만들어 낸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기존 구성원들이 나를 필요한 진짜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까지 그들에게도 나를 관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모든 굴레를 경험했고 다시 역순환을 하면서 체험하고 있다. 실수한 것들을 다시 실수하지 않고 수정하고 계획하고, 작게는 이 곳에서 크게는 매일 나의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적어나가면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장이 되지 않을까? 찾아오는 반복을 값지게 보내는 것은 지금의 작은 행동들이다.



호텔 직원 식당에서 저녁식사





갑자기 생이별



유키라는 친구는 내가 입사하고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들어보니 주방에서 마니또와 유사한 게임을 했는데 자기는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며칠 동안 나에게 줄 게 있다고 하면서 기회가 없어서 못주다가 퇴근 전에 개인 사물함에 수줍게 꺼내는 초콜릿에 긴장했던 마음이 녹았던 기억이 있다. 27살인 그는 나와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저녁팀인데 오븐 업무를 맡아서 한다. 분사작업을 하거나 제품을 굽기 위해 철판에 가지런히 놓고 제품을 구워내고 수량을 체크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외모는 아시아인이고 이름까지 듣고 보니 일본인 친구인데 나처럼 유학을 왔다는 생각이 확실해질 때쯤 "언제 일본에서 왔어? 불어 진짜 잘한다"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아버지가 프랑스인인데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나보다 입사일이 한 달 정도 빠르지만 그는 경력자이고 직원이며 전 직장들도 전부 5성급 호텔이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말수가 조금 없어서 인지 나에게 건네는 인사가 다른 친구들의 습관처럼 하는 인사보다 더 진심이 느껴졌다.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택시를 기다리다가 나보다 조금 늦게 나온 유키와 Combon 거리에서 만났다. 조명이 환환곳에 그가 지나가자 지쳐 보이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에게 "일 어때?'라고 물어보는 그에게 "만족하고 재밌어"라고 말했다. 별 다른 말 대신 약간 쓴 무언가가 입안에 있는 것처럼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Malheureusement, je ne serai pas là à partir de la semaine prochaine, Le chef m'a dit de trouver un  nouvel emploi, c'est un licenciement. j'ai un peu deçu”

(불행하게도 나는 다음 주부터 여기에 없어. 셰프가 나에게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이야기했어. 그것은 해고야. 나는 조금 실망했어”)




그가 부른 택시가 더 일찍 도착하고 애써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좋은 저녁 보내라고 택시에 오르기 위해 내 옆을 떠났다. 택시에 오르는 그에게 큰소리로 힘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힘이 날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게 너무 슬프다. 그가 타고 있는 택시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해 오고 있는 택시를 취소하고 한참을 걷기로 했다. 춥지도 않은 바람이 갑자기 매서워졌지만 이 기분에 조금 더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바람소리가 그 동안 내가 해고 했던 친구들의 목소리 같았다. 그래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거의 다 돼서 잠이 들었다.



한국은 저렇게 눈이 온다는 파리는 이날 진짜 봄날씨 였어요





떨리는 셰프와의 대화



직원들과 이제 제법 친해져서 내가 이치에 어긋나는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면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롤라의 도움도 크다. 무엇을 해보겠다던지, 공정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도 서스름 없이 부탁하게 되고 그들도 내 부탁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핸드폰을 꺼내면 포즈도 취하고 찍은 사진 공유해달라고 한다. 천진난만한 20대의 친구들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빛이 변한다.



면접 합격 통보를 받을 때 내 요청대로 나는 4개월간 실습을 하기로 했었다. 출근 이후에 일주일쯤 되었을 때 셰프가 2개월 더 할 수 있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학교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해서 제출했다. 그 문제의 완료와 근무시간에 대해 요구할 부분을 셰프와 이야기해야 했다. 일하면서 그가 한가해 보일 때 사무실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달력을 펼치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 실습시간이 연장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고 두 번째 근무시간의 요구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모든 제과사들의 근무시간표를 직접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15분 정도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나와서 엄청 떨렸다는 듯이 한숨을 크게 내쉬니 건너편에서 마블 케이크 크림을 채우던 롤라가 손을 멈추고 소리 없이 나에게 입모양으로 "잘 이야기했어?" 물어봤다.



6개월 동안 실습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은 내 개인적인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셰프는 친절하게 이해했다고 했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그것으로 사실 되었다. 롤라는  회사 내에서 제일 친한 친구라서 내 이야기를 잘 안다. 그날 퇴근 후 combon 거리 앞에서 로라에게 저녁 근무 끝나면 슬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너는 저녁 근무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고 우리 같이 근무시간 바꿀래? 하면서 농담도 던졌다. 그리고 일 잘하고 너랑 일하는 것 좋다고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더니 그녀가 급한일이 있는지 자기 이야기하고 먼저 간다고 그 자리를 떠났다.



"En tous cas, Merci beaucoup, moi aussi, Je suis très contente de travailler avec toi en soir, tu es comme machine, tu vois? par contre, c’est mon destin, même si je ne le pourrai pas accepter ça, je crois que ça va bien rouler et tout va bien comme ta passion.  Bonne soirèe"

(어쨌든, 정말 고마워. 나 또한 저녁에 너랑 일하는 것 매우 만족해. 너 기계 같은 거 알지? 반대로 그것은 내 운명이야.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더라도, 나는 그것이 잘 진행되고 모든 것이 잘 되거라도 믿어 마치 너의 열정처럼. 좋은 저녁 보내)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좋다. 진심이 통해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려고 노력해 주는 프랑스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페랑디와 다른 모습에, 오랜만에 주방에, 실습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위축되었는데 그들의 작은 제스처나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과일 비싼데 엄청나게 올라간다 그것도 초특급 품질로 내가 한거 짠




좋은 선배, 좋은 제과점


좋은 책임자라는 것은 무엇일까? 말보다 행동이 올바르고 그 두 가지가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말은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무엇을 지시할 때 " 이거 해"가 아니라 "이거 조금 있다가 같이 할 거야, 그거 내가 알려줄게",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부탁할게, 하다가 모르면 물어봐" 글자가 단순히 많아지는 문제를 넘어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은 완전하게 다르다. 어떤 일을 할 때 물론 신속함도 중요하지만 "왜 이 일을 해야 하고 준비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원리와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면 일의 능률이 오른다. 말해주지 않으면 끝까지 기다려서라도 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고 우스개 소리로 하던 좋은 제과점의 3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일하는 사람들이 좋다. 둘째는 급여가 많다. 마지막 셋째는 일찍 퇴근시켜준다. 이 중에 하나만 맞아도 일 할 맛 난다는 소리를 하고 반대로 3가지가 다 충족되지 못할 때면 일 못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소라고 정한 것도 재밌다. 첫 번째는 면접 볼 때 나는 면접자이면서 반대로 그곳의 회사의 가치관이나 생각, 구성원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종 선택은 회사가 하지만 면접자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면접관이 마지막에 "질문 있어요?"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둘째는 급여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내 급여를 측정해보기 위해 유사 규모의 제과점에 면접자처럼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내 급여도 측정해보고 상대 회사의 시스템이나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현실적이고 좋은 방법이었다. 내 가치는 누가 높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셋째는 일과 개인의 삶을 구분하지 않는 단계에 오르면 쉬운 일이지만 그전까지는 근로계약서에 의거하여 맞게 요구하고 조율할 수 있다. 근로계약서에는 3시까지 근무인데 2시에 퇴근 안 시켜 준다고 좋은 제과점이 아니라고 한다면 근로자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이직이 많지 않았지만 회사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든 영감을 받았고 일을 삶이었고 내 삶이 일이었다.


좋은 제과점의 3대 요소가 나중에 바뀔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1. 한 제과점의 가치관이 확실하여 모든 구성원과 공유할수 있으며 제과점을 끌고 나아갈 원동력의 유무(가치관이 없는 운영은 눈에 보이는 순간적인 판단과 고객에 휘둘릴수 있다) 2. 고객과 매장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고 당당하고 거짓말 없이 건강한 재료로 청결한 공간에서 건강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지 유무 3.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유무 (이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반복되는 가르침과 배움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내가 실습을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저녁팀에 새로운 근무자가 2명이 더 들어왔다. 한 명은 나와 같은 외국인 실습생이고 한 명은 프랑스인 직원이다. 호텔에는 수많은 실습생들이 각 파트에 존재하는데 그들이 하는 업무의 파트가 중요하지는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다. 선임자들은 새로운 실습생이 오면 다시 반복해서 가르치고 그들은 가르친 것을 습득한다. 요즘은 기존의 동료들이 새로운 실습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3자의 입장으로 관찰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습득한 것을 바탕으로 내가 했던 일을 하는 모습도 관찰한다. 더 슬기롭게 가르치고 더 현명하게 일할수 있지 않을까?



호텔 업무는 특히나 분업이 많다. 24시간 운영되는데 한 파트에서 한 명이 계속 일하고 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반죽까지 하면 그다음 업무자가 출근해서 그 반죽을 구워낸다. 그리고 또 다른 작업자가 구워낸 반죽을 잘라서 모양을 만든다. 양도 작은 양이 아니다. 그래서 인수인계가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마들렌을 레몬크림으로 코팅하는 작업이 있는데 호텔 투숙객들을 위한 서비스나 점심에 티타임으로 판매될 때 사용한다. 보통 그 작업을 할 때 나는 그것을 한두 개씩 먹어본다. 오전 근무 직원들이 마들렌을 만들어 놓는데 며칠 전부터 색이 규칙적이지 않고 심지어 식감도 다르다. 굽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내가 불량품을 골라내는 개수가 많아지자 잘못되고 있는 것을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내가 실습생인데 하던 것만 "대충 하자" 생각할 수 있다. 잘못된 제품들을 찾아내고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실수의 반복이었다. 매일 아침 근무자들에게 업무 일지를 적어놓는 동료에게 가서 이야기했다.



Est ce que vous pouvez les goûter? Je pense que ces madeleine ont été trop cuites et n’ont pas de la régularité à la couleur. pas seulement aujourd'hui, ce problème dure depuis quelques jours. on est d’accord que c’est pas normal? Si oui, vous pouvez dire à l'équipe du matin que les attentions sont nécessaires, quand ils font de la cuisson?

( 당신 이것들을 먹어볼 수 있어요? 나는 이 마들렌들은 너무 구우 졌거나, 색이 규칙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늘뿐만이 아니에요. 이 문제는 며칠 전부터 지속되었어요. 평범하지 않다고 동의하면, 아침팀에게 구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


땅콩에 설탕 입히는거 양이 진짜 어마어마 하다



제품의 가격과 서비스와 호텔에서 쓰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만큼이나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이 안되고 심지어 실수로 이어지면 그 비싼 재료와 과일을 과감하게 버린다. 일반 제과점에서 구할수도 사용할수도 없는 재료의 향연이다. 서로 얽힌 업무가 많아서 내실수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 동료들이 나에게 과일 하나 썰어낼 때도 한 접시의 가격을 이야기해줬다. 사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호텔 제품은 원재료를 비싼 거 쓰고 가격이 높으니 특별하게 해야 하고, 다른 곳은 그렇지 않으니 대충 해도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일반적으로 내가 만 원짜리 디저트를 판매할 목적이라면 만원의 가치만 창출할 수 있도록 재료나 서비스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격에 어울리도록 매장 위치와 인테리어도 이루어진다.


나는 고객이 예상하는 평균의 판매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그들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싶다. 직접 만드는 공정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주방에서 일하는 실습생으로 그 제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준비하고 느끼고 투자하고 사용하는 재료에 비하면 내가 고객으로 처음 리츠에서 느꼈던 그 디저트 가격이 더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때 느낀 것은 내 제품에서 그들이 맛이나 가격보다 더 확실한 내 가치관이 느끼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왜 내가 이 제품을 만들고, 이렇게 진열한 이유는 무엇이고, 모양은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 아주 작지만 아주 중요한 생각.


남의 제품을 따라 하고 재료를 속이고 건강한 재료가 아님에도 모양에 충실하는 제과점들과 일 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제과점들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작은 마들렌 하나의 가격과 과일을 접시 위에 예쁘게 썰어놓은 그것의 가격이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왜 그렇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듣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빵 분할하는거 진짜 엄청 잘하는데 참고 있다 제과 열심히 하자





마지막에 웃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웃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리츠 글을 처음 올리고 반가운 연락과 응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점은 내 일주일이었다. 저녁 근무라서 힘든 기색으로 커피 힘에 의지하며 출근하던 모습은 없다. 글을 쓰고난 후의 모습은 달랐다. 묵혀 둔 생각을 비우고 새로운 생각을 했다. 더 건강한 정신으로 출근할 수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나를 반성하고 각오를 다졌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더 현명하게 움직이려고 했고 일주일 전에 적은 글과 일치하게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다. 분명한 것은 다 그대로였는데 "나"만 바뀌었다.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까지 창밖에 빗소리가 들린다. 난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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