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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Oct 27. 2020

제과사가 바라보는 건축-2

아버지 삶의 터전에서 내 삶을 그리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먹고사는 사람들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걱정과 고민들의 알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했을까? 새벽 5시. 해가 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 속. 하얀색 중고 트럭 한 대가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도로를 덜컹거리며 굴러간다. 불 켜진 인력사무소마다 사람들이 자판기 커피로 추위를 이기며 오늘의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이미 닫힌 창문을 괜히 다시 닫아본다. 여전히 찬바람이 차 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옷깃을 여민다. 그들이 느끼는 추위보다 내가 느끼는 추위가 덜 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 만큼 오늘의 나도 나에게 주어진 고민과 걱정을 마주한다. 각자의 추위와 삶의 무게를 상대와 비교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새삼 이 어려운 시기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일을 아들로서 도와줄 수 있다'의 감사다. 익숙한 새벽.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새벽. 날마다 다른 온도와 공기.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남들보다 우리는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고 있다. 그 시간들이 모였을 때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새벽의 차가운 시간이 얼마나 값지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날마다 다른 느낌의 새벽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새벽의 현장의 모습, 그리고 새벽 5시전 집 앞 풍경





어디에든 길은 있다
당신이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일주일에 3~4번, 새벽 4시 30분이면 눈을 뜨고 5시면 중고 트럭 앞자리에 몸을 싣는다. 어디서 많이 본, 그러나 정확한 이름 모를 도구들은 트럭 뒷자리에 엉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가 움직일 때마다 서로 부딪히며 크고 작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현장에서 열심히 쓰여질 것이다. 이 글은 그 도구들처럼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쓰는 글이다. 아버지를 자랑하거나 건설이나 건축에 대해 논하거나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나의 무료한 삶에 장애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때로는 다른 직업을 취미로 경험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해결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 나에게 전달될지 모른다는 경험으로 인한 희망 때문이다. 어디에든 답은 있고 길은 있다. 



달콤한 휴식시간



프랑스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 57일이 지났다. 게으름도 예술이 되는 프랑스와 다르게 한국은 도착한 그날부터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또 다른 행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때로는 주변의 격려에 내심 안도하며 내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는 행복한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의 여덟 번째 원룸 공사가 막바지에 있다. 무료하다면 무료한 내 삶에 그가 먼저 현장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제안을 했고 나는 승낙했다. 마땅한 핑계도 없었다. 전문적이지 못하지만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의 터전에서 그의 철학과 업무방식을 느끼며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주의 아들, 사장의 아들로 나를 바라보는 현장의 다른 분들의 시선이 불편해서라도 일부러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건축공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건축기사 1급 자격증을 합격하고 40여 년의 외길 인생. 성취의 대가는 인생을 태운다. 내 생각이 옳았기에 경험을 글로 남긴다. 아버지의 민낯을 보고 경험했으며 우리의 많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길과 생각을 써 내려간다.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시도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993년 6월, 고 이건희 회장은 독일에서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한 2류나 3류가 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다 바꿔서 살아남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제과제빵뿐 아니라 외식업체를 포함한 직업군에는 바꿔야 할 악폐습이 존재한다. 11년 전에 제과제빵 주방에서는 일본어를 참 많이 사용했다. 문장 전체가 일본어가 아니라 도구나 동작을 나타내는 일본어를 한국어와 섞어 사용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은 일본에게 제과제빵 기술을 전수받고 제과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 당시의 기술은 학교보다 현장에서 교육되면서 이어져 내려왔다. 거의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했던 첫 직장에서는 일본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몇 주 동안 아버지의 원룸 현장에서 들은 일본어 또한 제법 많다.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이 대부분이었기에 도구의 생김새를 물어보거나 대부분 눈치로 이해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틀릴 때가 많았다. 제과점에서 처음 일할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선배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일본어를 한국말로 모른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궁금해하지도 않고 배운 대로 알려주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일을 반복했다. 그땐 그랬다. 무엇보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해도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으니 어느 누구도 바꾸자고 말하거나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라도 사투리에 일본어까지 섞인 건축 용어들은 내가 이상하거나 아버지를 포함한 그들이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후배들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과감하게 바꾸려고 시도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매일 같이 청소하던 건물 내부



우리는 결과로 이야기한다



하나의 디저트와 빵을 만들기 위해 몇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작은 건물 하나 짓기 위해서 최소 60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가한다. 아버지는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자이다. 각자의 분야는 지시받은 대로 시공을 한다. 그리고 전체 계획에 의거하여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턴을 이어받아 우리가 아는 건물의 형태로 만들어 간다. 여기서 작은 오차가 발생하거나 불협화음이 생기거나 일정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분야들끼리 동선이 겹치고 업무는 늦어지며 최종적으로 건강한 건물이 탄생할 수 없다. 물론 제과제빵과 건축은 각 부분의 금액적 차이와 투입되는 인원수, 들이는 시간들이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오너 셰프는 몇 번을 수정한 도안에 따라 좋은 재료를 구하고 주방의 체계를 점검한다. 그리고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고려해서 각 분야에 요구사항과 중점사항을 전달하고 수시로 관리한다. 그리고 판매와 고객의 피드백,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체크해야 한다. 스스로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더 좋은 결과로 함께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시간과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필요하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나 내 생각을 무작정 그들에게 심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게 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의 회사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60가지 분야의 사람들의 공통 언어 설계도


기술자들의 결과물은 서로 대화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가치관과 기술적인 측면을 정확하지 않지만 빠르게 알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물론 결과보다 중요한 것들도 많지만 기술자들은 현장에서 기술로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사람이 거처하는 공간을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진열장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을 채워지도록 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들은 달린다. 



엘레베이터 공사



현장의 트라우마



아버지는 오래전에 그라인더로 철근을 자르시다가 다치신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로 그라인더를 잡지 못하신다. 다른 크고 작은 일은 5층이나 되는 건물을 하루에도 몇백 번씩 오르락내리락하시며 하시는데 그라인더는 그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현장 트라우마가 있다. 6년 전쯤 20kg 무게를 돌릴 수 있는 스파이럴 믹서에 있는 빵 반죽을 확인하던 도중에 손가락을 끼어서 다친 적이 있다. 멈춤 버튼을 눌러도 기계가 천천히 돌아가다가 멈추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잠깐 반죽을 확인하려고 만져보기 위해 천천히 돌아가는 반죽기에 손을 넣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아는 지인은 사람 키보다 높은 데크 오븐의 제품을 꺼내다가 중심을 잃어 바닥으로 넘어져서 팔이 크게 다쳤다. 기술자들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주방과 건설현장도 항상 위험에서 멀리 있지 않다. 스스로 조심해도 동료에 의해 다칠 수 있고 예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원만하게 흘러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리고 책임자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하고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를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동료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을 내 진정한 선배나 상사로 인정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와달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 그런 존재로 인정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책임자는 슈퍼맨이 아니다.


건물의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사진, 창문



내 자신은 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마지막 직장 회사 대표의 카톡 사진에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내용의 사진이 있었는데 한동안 바뀌지 않아서 유심히 봤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생쌀보다 낫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문구의 영향인지 매사에 신중한 나도 그때만큼은 '치고 달리기', '일 벌이고 수습하기'작전을 자주 사용했다. 해보지도 않고 말이 많은 사람들은 세월만 갉아먹는다. 그리고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그때 뭐라도 해볼걸"하며 후회한다.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후회에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오늘도 조금 더 후회가 적은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될 건물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 또는 인력사무소에서 하루 이틀씩 고용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가다'라는 말은 일본말(1.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막일, 막일꾼)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말이라는 자체보다 그 단어의 뜻 자체가 싫다. 내가 20대를 제빵사로 보냈을 때도 주변에서 '빵쟁이'라는(1. 빵을 굽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춰서 부르는 말)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자랑스럽게 자신은 '빵쟁이'라고 하며 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용어까지 내가 관여할 수 없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브랜드는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스스로 뱉는 말처럼 사람은 살아간다. 매일 새벽 피곤해도 샤워하고 모자를 쓰지 않고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출근하려고 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힘들다는 보상으로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세상에 끌려 달리며 정체성을 잃도록 스스로 방관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일은 취미처럼, 취미는 일처럼



얼마 전 SNS 심리테스트를 하다가 어머니 응답에 해석으로 나온 문구다. 참 멋진 말이 아닌가? 미생에 나온 대사인데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요"라는 대사도 참 좋아한다. 두 문장이 참 비슷하다.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좋아서 즐겨서 하는데 타인이 보아도 실제로 그렇게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취미는 일처럼 하고 싶다니! 이 보다 이상적일 수 있을까?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한국에 들어오고 많은 제과점들을 조사하고 가끔씩 면접을 보고 있다. 물론 급여적인 부분에도 비중을 두지만 한편으로 셰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내 생각과 일치하는지, 또는 내가 그들의 가치관을 따라갈 만큼 그들이 올바른지를 더 중점적으로 본다. 난 기술만 완벽한 사람을 나의 상사나 셰프로 인정할 수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건강하고 올바르다면 복지, 제품, 근무형태나 환경 등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따라오는 조건이 된다. 나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고 싶다. 전쟁처럼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꽃밭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 마치 일을 취미처럼 하고 취미를 일처럼 하는 삶에 여유가 묻어나는 사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그들도 나를 통해 변하며 건강한 생각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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