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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르찌르 Jan 07. 2019

12. 출근하기 싫어요

'출근하지 말까.'


아마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사표를 던지고 나면 천국이 펼쳐질 것 같다. 여유로운 아침을 누리는 모습, 여행하면서 자아를 찾는 모습, 브런치를 즐기며 책을 읽는 모습 등 퇴사자의 평화로운 일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직장인이 몸을 일으켜 회사로 향하는 이유는 하나다. 매달 일용할 양식을 주는 직장의 문밖에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퇴사하면 소득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생활은 팍팍해진다. 다른 회사를 알아보면 되지만, 알다시피 취업 시장의 문턱만큼 이직 시장의 문턱도 높다. 경력이 낮은 20대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이 가운데 20대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며 퇴사 욕구에 백기를 들었다. 11편 <당신의 워라밸은 안녕하십니까>에서 봤던 것처럼 최근 1년간 퇴사율이 가장 높은 직원은 입사 1년 차 이하의 신입사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년 차 이하의 신입사원 퇴사율은 49%, 절반에 가까웠다.


20대를 만나는 자리에는 퇴사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이들이 퇴사하고 싶은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회사가 너무 싫어서, 몸이 힘들어서, 꼴 보기 싫은 직장 상사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려고 등등. 퇴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꼰대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에둘러 표현해왔다. 신중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브런치에서 꼰밍아웃을 한 김에 당시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히 풀어보려고 한다.

     


"회사가 너무 싫어서 이직하려고요"

IT 대기업에 종사하는 20대 중반 A는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차라리 저 차가 나를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견디는 시간'이었다. 사내에 갈등이 있거나 업무를 따라가는 게 버거운 것은 아니었다. 의욕이 사라지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하다고 토로했다. 이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출산을 경험한 지인들이 둘째 계획을 세우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째를 낳으면서 기억력도 함께 출산해 버렸다." 직장인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다.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취업준비생 시절, 그들은 취업 합격 소식 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직장에만 들어가면 취준생 시절의 고통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철저한 계획 하에 이직을 준비하지 않으면 취준생 시절의 고통을 다시 한번 겪을 수 있다. 생각보다 밖은 더 춥다. 계획 없이 나와 한참을 쉬고 있는 후배들을 많이 봐왔다. 판단은 본인의 몫이지만, 웬만하면 이직할 회사를 먼저 구해놓고 퇴사해라. 

그리고 내 마음에 꼭 드는 회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이 반복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금 처한 환경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인들의 회사생활 이야기를 듣거나 휴가를 다녀오는 등 새로운 세상을 접해본 후 다시 따져보자. 이 회사는 정말 아닌지 말이다.   



 "꼴 보기 싫은 인간 때문에 못 다니겠어요"

20대 후반인 B는 유통회사에서 일한 지 4년이 됐다. 그간 별 탈 없이 회사를 다녔지만, 지난해 중순 뉴페이스 부장이 등장한 후부터 퇴사 욕구에 시달리고 있다. 새 부장은 오자마자 끊임없이 일거리를 던졌다고 한다. 게다가 일을 마치고 결과물을 들고 가면 폭격 수준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본인은 술 마시고 사우나 가느라 자리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부장은 월급도 많이 받을 텐데 차라리 그 돈으로 신입직원이나 더 뽑았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상사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부장의 역할은 자기 부서를 관리하며 일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일거리가 없는 회사나 부서는 곧 망할 회사이거나 정리될 부서이다. 일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부장이 뒤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부장은 B를 비롯한 부원들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장이 특정 부원에게 일을 준다는 것은 그를 믿고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장은 B를 아끼는 마음이 클 확률이 높다. 화풀이를 하고 있는 '감정 폭력'이 아니라면, 부장에게 업무 잔소리는 추가적인 업무이다. 부장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B의 결과물을 꼼꼼히 보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잔소리해야 할 것을 짚지 않고 넘긴다면 당장 양측 모두가 편하겠지만, B에게 발전은 없다. 어쩌면 지금 부장은 B와 부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다.

B 이외에도 동료 간 갈등 탓에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직장생활에서 사내 갈등은 겪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이슈이다.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갈등이 없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 회사에서의 갈등을 그대로 두고 퇴사한다면 다른 직장에서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도망갈 가능성이 높다. 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말 중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디를 가도 돌아이는 있고, 만약 돌아이가 없다면 당신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돌아이를 가볍게 무시해라. 이 돌아이 때문에 생계수단인 회사를 그만둔다면 그건 당신의 패배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프랜차이즈 회사에 입사한 20대 중반의 C는 지금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계획은 뚜렷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어학연수를 가서 더 높은 스펙을 쌓는 것이었다. 그러면 더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떤 회사에 입사하고 싶니'란 물음에 그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회사요"라고 답했다.

 

C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초년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목표 없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최근 서울 압구정역 인근에서 놀라운 풍경을 마주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별다방에서 음료를 한 잔씩 시켜두고 영어 원서를 읽고 있었다. 한글로 써 있어도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의 책이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아, 이 애들이랑 경쟁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취업 시장의 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지원자들의 스펙은 그만큼 더 높아지고 있다. 퇴사의 목적이 스펙 쌓기라면, 다시 고민해보길 추천한다. 직장인의 가장 큰 스펙은 경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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