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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25. 2018

[로마의 평일 7] 인내심을 시험하는 대중교통

집에 좀 가자

회사에서 집까지는 직선거리로 대략 5키로.

그닥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의 생김이나 꽤나 둔중한 언덕을 구비구비 넘어가야 하는 걸 고려하면 전체를 다 걸어다니기에는 조금 무리다. 게다가 길 중간중간 패인 구간, 발바닥 너무 아픈 옛날식 코블스톤 구간, 쓰레기, 개X 무더기, 없어지는 보도, 가다가 만나서 건너야 하는 큰 길에 횡단보도 없어서 애매하게 무단횡단... 등등. 이 모든 어려움을 다 청산하며 걸어가자면 아침엔 출근하자마자 2시간 휴식이 필요하고,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할때 이 고난을 겪는건 너무 가혹하다 느껴진다.


대중교통으로는 집  가까운 반은 버스를 타야 하고 회사쪽 가까운 반은 트램을 타야 한다. 비록 5키로지만 아무런 노선도 바로 회사로 가진 않는다는 것도 서울의 거미줄같은 교통노선이 익숙하던 사람으로서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않는다. 우리 회사는 굉장히 시내 방향이고 내가 사는 동네도 적당히 번화한 약간 외곽인데 도대체 우리 동네를 통과하는 그 많은 버스들은 다 어디로 가는거지... 우리보다 더 안 번화한 다른 동네와 우리 동네를 이어주는 아이들인건가.  


그나마 버스보다는 트램이 비교적 정기적이고 보다 쾌적하며 조금 늦어도 오긴 온다는 확신을 주는지라 버스구간을 운동삼아 걷고 트램을 타서 출근을 하곤 한다.


어느 아침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25분 정도 열심히 걸어서 트램 정류장에 도착하니 인산인해다. 비오는 날 출근시간이라서 사람이 많은가 싶다가도 유달리 많은 숫자에 좀 불안한 마음이 든다. 워낙 감정표출을 과감히 하고 숨기지 않는 사람들인지라 몇몇 사람의 손짓, 몸짓, 짜증나 어쩔줄 모르는 발굴름 등을 보니 이미 트램 기다린지 한 10분은 넘은 사람들인거 같다.


같이 합류해서 기다린지 꼬박 12분이 넘어가자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내려오는 트램이 보인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앞 차와 이정도로 간격 떨어져서 오면 얼마나 사람이 많을까..

 

아니나 다를까 이미 트램은 꽉 찬 상태로 도착했고 밖에서 계속 밀고 들어가보지만 기껏해야 몇명 더 타고 그대로 문이 닫힌다.


결국 한대 그냥 보내고 다음 차 기다리다 보니 이미 20분 이상 정류장에서 서 있었다.  포기하고 걸어가려던 찰나 마지막에 돌아보니 다시 트램 한대가 오는게 보인다. 막상 보이는데 안타고 가기도 괜히 아쉬워서 기다리다 겨우 비집고 타서는 한 3정거장 갔나보다.  


제잎 앞 칸에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운전사가 조종칸 문열고 나와서 뭐라뭐라 소리친다. 길 한가운데서 차 고장 났으니 내리랜다. 그 흔한 차내 방송도 안한다. 그냥 앞에 있으면 운전사 말 듣고 내리는거고 뒤에 있으면 영문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우우 내리니까 그냥 따라서 내리는거다. 


 열어주는데서 내려보니 그 다음 트램 정류장에도 기다리는 사람 한 무리, 그 옆에 버스 정류장에서도 사람 한 무리, 우리 트램에서 내린 사람들 한 무리, 막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길 한가운데로 걸어다닌다. 어차피 길 막혀서 차도 못가고....


결국 기다리느라 시간 다 보내고 내 목적지까지는 가지고 못한 채, 남은 거리도 마저 걸어오느라 5키로 거리를 출근하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냥 내처 걸었으면 이보다는 금방 왔을텐데 말이다.  


사무실 들어와서 트램이 문제여서 늦었다고 툴툴거리니 옆방 큰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해준다.


"내일은 파업이야. "


아.. 파업. 그래 오기 전 속성으로 받은 이태리어 강습에서 선생님이 이태리 가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단어라고 하면서 가르쳐줬었다. Sciopero.


약 1.5개월에 한번씩은 대중교통이 파업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출퇴근 인구를 고려해서 아침 출근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에는 일시적으로 정상운영을 해주지만 사실 파업하나 안하나 불규칙하기는 매한가지다.


일찍 나와도 안오고

금 늦게 나오면 더 안오는

애증의 버스와 트램.

매일같이 애들한테 버스가 안와서 늦었어!! 라고 말하는게 민망하고 거짓말 같은데 사실인게 억울한 현실이다.


이렇게 늘 들쭉날쭉이면 가끔은 요행으로라도 일찍도 와야 하는게 세상의 법칙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직은 그런 착한 세상이 아닌가보다. 6개월간의 뚜벅이를 마무리짓고 이제 그만 차를 갖고 다녀야 싶은데 늘어난 뱃살과 엉덩이가 걱정스럽게 내눈을 바라본다. (그렇다. 굉장히 많이 늘어나면 눈도 맞추고 그런다.)


오늘도 퇴근길에 반대편으로 5대가 지나가다 못해 2대는 꼬리 잇대어 가는데 내 가는 방향으로는 20분 넘게 1대도 안온다. 한 20분 뒤에 저 놈들이 줄줄이 모여서 오겠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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