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책육아를 한 삼남매의 현재..
나는 육아를 책으로 배웠다.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는데, 수유실에서 받아 든 아기는 너무나 작았고, 약해 보였고, 울기만 했다. 젖을 물리기도, 기저귀를 갈기도, 안기도 쉽지 않았다. 수유실에서 돌아온 나는 조리원 방에서 육아 관련 책을 검색했고, 퇴원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양가 어머님들이 '라떼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책에서 알게 된 내용과 다른 점이 많아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유식 시작하는 법, 재우는 법, 목욕시키는 법 등 당장 필요한 지식부터 심리적 발달 과정 등에 관한 내용도 많이 읽고 배웠다. 그중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게 있었으니 바로 '책육아'였다. 책육아에 대해 알게 된 나는 아이의 교육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주면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소개된 책육아로 자란 아이들은 하나같이 한글도 저절로 떼고, 놀다가도 책을 읽으며, 어휘력과 창의력뿐 아니라 감성도 뛰어나 완벽해 보였다. 특히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기에 내 아이들도 책과 가까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 여러모로 책육아는 매력적이었다.
큰아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인 책 읽어주기가 시작되었다. 단행본으로 사서 읽어주다가 고르기가 힘들어 가장 인기 좋다는 전집을 한 질 들였다. 그리고 마르고 닳도록 읽어주었다. 아직 대화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매일 비슷한 책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가며 읽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와~ 여기 알록달록 꽃 좀 봐. 우리 라파는 어떤 꽃이 가장 예뻐?"
"ㅁ아ㅣㅁ러ㅣㅓㅎ" (옹알이처럼 대답)
"그래~ 이 꽃이 가장 마음에 들어?"
아이는 말은 알아 들었지만 아직 하지는 못했기에(첫째는 말이 늦었다) 거의 나 혼자 묻고 답하는 식이었으므로 솔직히 재미는 없었지만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몇 년을 목이 쉬어라 읽어주면서 아이 셋을 키웠다. 늦게 자면 키 안 큰다고 싫어하는 남편의 눈치 때문에 서둘러서 저녁을 먹이고 읽어주기도 했다. 첫째, 둘째는 잠자리 독서로 거의 같이 책을 읽어주었고, 막내는 터울이 좀 있어서 낮에 따로 읽어주었다. 막내를 가슴에 눕혀놓고 첫째, 둘째 책을 읽어주는 날도 많았다. 우리 집은 거실에 티비 대신 책이 있었고, 침대 머리맡에도 책이 있었다. 육아서에 나오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키운 삼남매는 지금 어떨까? 육아서에서 말한 대로 책을 끼고 사는 아이로 자랐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첫째 딸은 그렇다! 딸은 정말 육아서대로 키웠더니 현재까지는 육아서에서 말한 대로 자랐다. 놀다가도 책을 읽었고, 6살 초에 한글을 쉽게 뗐으며, 지금은 내가 읽는 책도 쉽게 잘 읽는다. 두꺼운 책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글도 잘 쓴다. 선생님들도 독서습관에 관한 칭찬을 하신다.
둘째와 셋째 아들은? 읽기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부터 책과 멀어졌다. 지금도 내가 읽어주면 듣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스스로 읽으려 하지 않는다. 강제로 읽힐라치면 창작 책은 저리 밀어놓고 과학분야 지식책만 조금 읽는다. 좋아하는 주제로 한 책을 들이밀어봤지만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공부머리 독서법'이란 책을 참고하여 둘째가 읽어야 하는 책 초반 30%를 내가 읽어주고 그다음부터 스스로 읽게도 해 보았지만 그리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둘째는 형용사, 부사 사용이 풍부해서 표현력이 좋다는 것.. 셋째는 첫째, 둘째 때와 비교하면 책을 훨씬 덜 읽어주었는데 공감능력과 감성은 셋 중 가장 뛰어나다는 점이다.
책을 많이 읽어주며 키우면 아이와 엄마의 유대감에는 분명 좋은 것 같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깔깔거릴 일도 많다. 하지만 모두 책을 잘 읽는 아이로 자라지는 않는다. 아이마다 특성이 다른 것이다. 그래도 내가 노력한 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의 어딘가에 남아서 발현되는 날이 오겠지.
가끔 나의 욕심을 못 이기고 "책 좀 읽어라!"라고 소리치면 아들은 "책이 제일 싫어!"라고 받아치며 내 속을 태우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책을 즐기는 사람이 되리라 기다려본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