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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쑤아 Mar 23. 2023

초등 고학년에 전학하기

울산에서 부산으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지만 막상 이삿날이 다가오니 걱정이 되었다. 나는  4학년 때 전라남도 시골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고, 학기 초에 전학을 해서 1년간 너무나 힘들었다. 나의 그 기억은 우리 아이들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커지게 했다.

올해 딸은 6학년, 아들들은 4학년, 2학년이다. 아들들 보다는 딸이 많이 걱정되었다. '6학년이면 사춘기 시작이란다, 그 학년쯤 되면 여학생들은 이미 그룹이 되어 있단다.'는 말들과 함께, 이사할 동네가 사교육열이 높다고 알려져 있어서 이미 모두 선행학습을 하고 있을 테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쉽지 않을 거라는 말 등등.. 지인들의 걱정 어린 말들은 나의 불안감만 부추겼다.

나는 불안감을 숨기고 아이들에게는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전학을 하는 것이니 다른 아이들도 그 반은 처음이야. 그러니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그래도 걔들은 옛날에 같은 반이었던 애들 있을 거잖아! 나도 지금 학교에선 애들 거의 다 안면은 있단 말이야!'라고 했다. 이 말도 맞는 말.. 그래서 '하지만, 안면 있다고 다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잖아? 그중에 너랑 마음 맞는 애는 한두 명 아니야? 안면 있는 애들이 많으면 익숙해지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친하게 지내는 건 다른 문제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학습에 대해서도 선행학습을 했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교육과정은 같으니 울산에서 잘했으면 부산에서도 잘할 수 있다. 지금 잘하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말해주었다. 이 말은 정말 100% 나의 확신으로. 

아이들도 병설 유치원부터 다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에 가려니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엄마는 단단하게 버텨야 한다.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해 주었지만, 우리는 이사를 해야 하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 너희들도 받아들여라 고 말해주었다.

두 달이라는 긴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전학 가는 날 아이들을 새로 배정받은 반에 보내고 오는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걱정보다는 지들이 이겨내야지 별 수 있나, 그동안도 잘했으니 여기서도 잘하겠지 하는 믿음이 더 컸다.

그렇게 20일이 지났다. 다행히 첫째와 막내는 다정한 선생님을 만나 교실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적응도 빨랐다. 첫째는 전학 다음날까지 아무하고도 말을 못 하고 혼자 앉아있다 온다고 해서 마음이 많이 쓰였는데, 삼일째 먼저 말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랑 마음이 잘 맞는 모양이다. 또 6학년쯤 되니 새 친구 사귀는 요령이 좀 생겼는지 쉬는 시간마다 다른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논다고 했다. 6학년 여자애들의 사춘기를 걱정했는데 아직은 특별히 별난 그룹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막내는 셋 중 가장 자유영혼인데 역시 적응도 빨랐다. 학교에서는 집보다 훨씬 얌전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매일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니 감사하다.

가장 걱정을 안 했던 둘째가 처음에 조금 힘들었다. 지난 학교에서 둘째는 축구 하나로 같은 학년 남자아이들과 반을 불문하고 친했고 인기도 많았다. 그래서 가장 걱정을 안 했는데 새 학교에서는 운동장이 공사 중이라 축구를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굉장히 엄한 분이셔서 학급 분위기도 경직되어 있는 듯했다.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둘째는 일주일 정도 자리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다 오는 것 같았다. 단짝으로 지낸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나는 나의 4학년 시절, 전학했을 때가 떠올라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둘째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학교 끝나고 매일 풋살장에 가서 축구를 했다. 밖에 나가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랬더니 며칠 만에 축구를 좋아하는 또래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매일 하교 후 공 차는 멤버가 생겼고, 그중엔 같은 반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불친절하고 엄한 것 같지만 같이 노는 친구가 생기니 둘째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전학하면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 집 삼 남매만 봐도 막내가 가장 빨리 적응하는 걸 보니 저학년일수록 전학하기는 더 쉬운 것 같기도 하다. 기질적으로 내향형이라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엄마의 생각보다 강하다. 먼저 말을 걸긴 힘들어도 성격이 편안하다면 말을 걸어주는 친구와 친해질 수 있다. 걱정은 뒤로 하고 믿어주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있다면 아이들도 처음엔 낯설어도 잘해나가는 것 같다.

주위에서 하는 말들이 긍정적이거나 힘이 되는 말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차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불안해하는 대신 겪어내야 할 사람은 아이이니 잘할 거라고 믿고 기다려주자. 아이들은 잘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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