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편.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들
어떤 기업이든 성장기에 혁신적 곡선을 그렸던 기업은 특정한 시점이 되면 성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한계라는 건 꼭 그 기업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기술 발달에 따른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방식대로 기업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대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로 이때 그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수명이 연장되느냐, 단축되느냐가 결정된다. 한때 최고의 혁신 기업이라 불렸던 노키아, 모토로라만 보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지속적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휴대폰을 만들지 않았던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파괴적 혁신의 상품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대를 연 것처럼 성장하는 기업은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의 적용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2000년대 최고의 성장기를 보냈던 하나투어는 2010년대 이후 호텔, 면세점 등 신규 사업들을 진행하며 외형적인 매출은 키워 나갔지만 시장을 선도할만한 두드러지는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물론 이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외부 리스크가 많이 작용한 요인도 크긴 하다. 그러나, 결국엔 그 리스크에 따른 결과 역시도 경영활동에 대한 평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긴 터널 속에서 존폐를 걱정해야 할 사항에 놓인 하나투어를 보며, 어떤 변화로 미래를 도모해야 될지에 대해서 추가적인 의견을 남겨본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을 보면 'CX 유니버스'라는 단어가 나온다. UX가 기존의 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으로 앱 서비스에 대한 경험을 지칭하는 거였라면, CX는 이보다 더 확장된 개념으로 소비자가 서비스 구매 전-중-후에 겪는 전체적인 브랜드 경험의 총체를 말하고, 이를 관리해나가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기업 성장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하나투어의 핵심역량인 5060 시니어층 고객군을 하나투어로 지속해서 유입시키려면 App만 잘 업그레이드시키면 될까?
일단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투어는 태생이 IT인 O2O 업체들과 비교해서 앱/웹 상에서 직관적인 서비스 경험을 전하기가 힘든 구조다. 작년에 차세대 시스템인 하나 허브 론칭 이후, 앱의 UI가 그전보다는 직관적으로 바뀌고 세련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페이지 클릭 시 속도 저하의 문제, 한 페이지만 더 들어가도 버벅거리거나 되돌아가기 시 발생하는 문제, 기획전에 들어갔는데 원하는 상품이 뜨지 않는 문제 등 인내심을 가지고 앱을 보지 않으면 계속 머무르기 힘든 경험들이 계속된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다 연동해서 하나투어 앱 안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란 걸 아나, 고객 입장에선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그래서 하나투어가 차별화된 강점을 가지려면 제대로 된 오프라인 채널을 만들어서 온라인/오프라인 옴니채널을 단단히 구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옴니채널이라 함은 앱이나 웹상에서 탐색하고 예약했던 여행 여가 서비스들을 오프라인 채널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취향이 맞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말하겠다.
과거에 하나투어는 프리미엄 로드샵이라고 서울 홍대, 부산역 등 주요 B2C 상권에 로드샵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몇 년 간 진행하다가 잘 안돼서 사라졌지만 당시처럼 복수의 대리점 대표분들을 모아서 해당 자본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형태 말고, 본사 차원에서 공간과 콘텐츠에 대한 전문가를 투입해서 주요 도시에 거점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이 몇 개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고객이 머무를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대리점 사업주분들을 모아서 본사 콜센터 문의만 연결해주는 형태가 아니라, 본사에서 좀 더 과감히 투자해서 메인 타깃인 5060 시니어층들이 여행 심리요인부터 시작해서 지역 정보까지 전문화된 상담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하나투어만의 프리미엄 패키지 서비스를 체험 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앱/웹으로 탐색-예약-결제하고 오프라인 거점공간에서 간접 체험하고 다시 앱/웹으로 탐색하고... 이러한 옴니채널이 물 흐르듯이 구축되면 장기적으로 프리미엄 패키지를 근간으로 하는 하나투어가 메인 고객층으로부터 팬덤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거점공간에는 고객군의 성향을 잘 알만한 커뮤니티 매니저를 두어서 5060 시니어 고객들을 여행을 매개로 연결시켜주고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당장 자본이 부족하다면 이런 공간이 많은 개수도 필요 없다. 주요 도시부터 시작해서 소수로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공간과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전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여행/여가 서비스에 있어서 오프라인 공간, 취향, 커뮤니티가 계속해서 강조되는 흐름을 보면 고객과 시장이 많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된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던 과거에는 일반적인 대중(Mass)을 대상으로 공급자 주도의 마케팅을 하는 게 꽤나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공급자가 어떤 상품을 만들어서 TV나 신문 등 대중매체를 통해 전폭적인 광고를 하면 고객도 그에 맞게 따라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급이 너무나 많아진 시대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들 속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가지게 되었고, 일회성 소비가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취향의 상품, 그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티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는 꼭 2030 MZ 세대의 살롱문화뿐만 아니라, 5060 이상의 시니어층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시니어층의 트롯 팬덤 현상을 보며 취향 팬덤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선도기업들은 각 잠재 고객들이 자사의 브랜드로 일상을 더 보낼 수 있도록 구독 모델을 만들고,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점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당장 수익화되지 않더라도 자사의 브랜드 인프라에서 고객들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로 고객을 유혹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고객들의 취향 데이터를 수집해서 장기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하나투어 테마 엑스퍼트 제도, 이런 맨파워를 장기적으로 계속 육성했으면 한다]
그래서 하나투어도 위에서 말한 옴니채널을 구축하면서 커뮤니티 운영에 있어 맨파워에 대한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총제적인 서비스 만족이라는 건 HW적인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겪는 SW적인 프로그램들이 궁합이 맞아야 이루어질 수 있을 텐데 기존의 하나투어 마일리지 클럽 회원제도를 확장하여 여행/여가와 관련된 프리미엄 콘텐츠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고객들을 하나투어 서비스 내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이 App이든 시스템에 기록되어 다음번 고객의 개인화 서비스를 위해 반영돼야 한다.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이고 그를 통해 학습한다면 고객이 찾기 전에 고객이 원하는 걸 먼저 추천해줄 수 있을 것이다.
최소 금액 수준의 유료 구독 모델로 커뮤니티를 구성하면서, 타깃에 맞는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고 커뮤니티를 관리해나가야 한다. 본사 주도로 크리에이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협업하고, 시너지를 만들어 나가자. 그렇게 인프라를 만들면서 대리점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다 보면 대리점 맨파워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나올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많은 어려움의 시기이지만, 위기라는 생각에 움츠려있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기회의 요소에 집중하면서 하나씩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