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lisa Apr 04. 2024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브랜드마케터로 언제까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니

'이제 이런 거 AI가 일도 아니게 해 줄 거 아냐. 다른 직업 찾아보세요. 나이도 어린데 어떡할 거야(웃음).'


자그마치 3년. 한 달에 한 번, 기업가와 한 시간 동안 대화한 내용을 보기 좋은 텍스트로 정리하는 일을 했다. 우르르 쏟아지는 말들을 잘 다듬어 읽기 쉬운 문장으로 만드는 건 받아쓰기만큼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최종본, 최최종본, 최최최종본을 갈아 끼워가며 고생스런 일을 지속해 오던 차에,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니.


처음엔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얼마나 지루하고 고생 많았니. 이제 이런 시답잖은 일은 AI에게 넘겨버리고 하고 싶은 거, 재밌는 걸 해봐-라고 들렸다. 아무리 엔비디아와 MS 주식이 강세라지만 인간의 '말맛'이란 걸 살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웃을 수 있었던 거다. 웃음이 안 나오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Chat GPT와 영어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원활한 해외생활을 위해 매일 한 시간, 표정도 없이 늘 친절하기만 한 이놈 자식과 대화하며 느낀 건 세상이 미친 듯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거였다. AI는 미래에 올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와 있는 현실이었다.


AI권력이 '초양극화사회' 만든다, 2017

허탈했다. GPT가 오늘 말맛 못 살리는 게 사실일지언정 그게 내 경쟁력이 되지는 않는다는 허탈감. 모든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실업자가 되겠구나 하는 직감은 회사에서 뭉툭한 일을 하게 될 때마다 나를 암담하게 했다. 더군다나 이전에 해왔던 문법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다는 걸 경험하게 되면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묻게 되는 순간들이 왕왕 많아졌다. 실체가 있든 없든 불안에만 잠식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므로 진지하게 이 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볼지 결판을 내려야 했다.


근데 그놈의 브랜딩, 그놈의 브랜드마케터가 뭔지를 모르겠는 거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떤 게 브랜드마케터의 일인지를 알아야 아- 밥은 먹고살겠구나 혹은 아- 말 그대로 족됐구나 알 텐데 그걸 모르겠는 거다.

아니, 3년 동안 했는데도 네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예, 정말 모르겠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전 아직인가 봐요 월월. 수많은 브랜드마케터와 마케터 계정들이 있지만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무얼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분명 답변은 천차만별일걸요? 사회적 합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요.


사실 그게 이 직업의 매력이고,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 함부로 정의하면 손해인 직업이라는 것.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더 좋은 고객 경험을 만들어 사람들의 인식을 만드는 사람'같은 설명으로밖에 답할 수 없는 게 바로 브여섯글자의 일이자 크리에이터의 일이다. 새로운 방법과 전략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 안에 의도한 인식이 피어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어떻게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Chat GPT589383이 오든 말든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희망편)


익숙한 방식을 답습하다 보면 이미 형성된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면서 그 틀 안의 것들이 곧 나의 일이자 기술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몸과 머리는 편할지 몰라도 재미는 떨어지고 목을 내놓고 일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 계속 쓰려한다. 내 일자리를 잡아먹는 건 AI 혹은 스타마케터, 팔로워 100만의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굳어진 내 자신의 착각이라는 걸 명명백백히 밝히기 위해, 그렇게도 쓰고 싶지 않던 브랜딩 일에 대한 생각과 성찰을 남기려 한다.


결코 모든 것을 단정 지을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다. 단 한 가지의 옳은 방법도 없기 때문에 브랜딩은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건 브랜딩이 아니다-와 같이 단정 짓는 글은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일하면서 부디 제발 부탁이야 잊지 말고 일해-라고 머릿속에 타투해주고 싶은 것들. 쪼그라들고 흐물거리면서 다 끝났어 타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으면 좋겠다.


이 모든 과정에서 브랜드마케터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를. 유일한 나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 하고 싶은 일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매주 글을 쓰기로 한다.


- 2024.4.4 첫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