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를 가끔 기억 속에서 떠올리곤 했다. 생각할 때 입가에 미소 짓게 되는 도시 런던이었다. 영국에서의 볼만한 행사가 TV 뉴스에서 방송하면 내가 갔었던 2004년 여름으로 잠시 기억이 돌아가곤 했다. U.K. 또는 United Kingdom 이라고도 불리는 나라 England, Scotland, Wales, Ireland of North를 모두 영국이라고 했다. 중세에는 많은 식민지를 통치했던 나라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도 불렀다. 정치적으로 유럽연합이 유로화로 통화를 함께 하자고 했으나 파운드를 고집하는 유럽에서 고유의 화폐를 사용하는 나라였다.
정말 오래 전의 여행이었다. 그때 그랬었나 할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 것도 있다. 그 시절에는 자유여행이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지인들끼리 광고를 보고 2주간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었다. 영문학의 발상지를 책으로만 접하다가 백문이 불 여인견에 도전하게 되었다. 모두들 마음이 들떠있는 상황이었다. 직접 가서 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과 시간, 계절이 모두 잘 맞는걸 고마워했다.
그러나 처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개인이 주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혹이 절반이었지만 우리는 뿌리치지 못했다. London city 그 학교가 이미 정원이 꽉 차는 바람에 Newcastle city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2명이 포기했다. 나머지는 14명은 이번 기회에 영국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했다. 그 당시에 물가나 여행 상품으로 봤을 때 비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영국, 그곳을 가서 볼 수 있구나 하는 일념으로 우리는 떠났다.
싱가포르(Singapore city)로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하루를 그 도시 싱가포르 호텔에 머물렀다.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서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후 굉장히 복잡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그 혼잡한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미리 예약해 두었던 미니 버스를 탔다. 이때 한 사람의 가방을 버스에 싣지 않아서 2주 동안 내내 그 사람에게 옷도 빌려주고 했던 것도 기억났다.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대에 그 여행 짐을 찾으려고 노력도 했다. 기내용으로 이름표(name tag)도 주소 표시도 없는 가방을 혼잡하고 또 길도 잘 모르는 영국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찾는 건 무리였다.
2. 뉴캐슬의 어학연수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부터 버스기사는 뉴캐슬 Newcastle city로 우리를 데려갔다. 가는 길 내내 처음 보는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영국에 왔다는 사실에 여독도 잊었다. 모두들 마음은 구름을 타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는 학교에서 지정해 놓은 기숙사 건물로 들어갔다. 기숙사는 겉으로 보기는 자그마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공동 부엌이 있고 복도 없이 분리되어 있는 방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방화문이 계단 근처에 있는 걸 보았다. 한 사람씩 방에 짐을 풀었다. 그때 각자 방이 따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만나고 공용공간에서 만났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를 줄 서서 갔다. 주위에 길이 좁았다. 바닥은 돌로 만들어진 길이었다. 비도 살짝 내린 미끄러운 길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는 각자 반으로 찾아가서 바로 수업을 들었다. 한 반의 정원이 12명 정도였던 것 같았다. 뿔뿔이 흩어져서 수업을 듣고서 마치는 시간이면 만나서 수업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 그 도시 Newcastle 이 배경인 영화 빌리 엘리엇을 교실에서 처음 보았다. 영화 관람 후 주인공 이야기와 내용에 관한 영어로의 토론도 영국인 선생님과 함께 했다. 여행을 동반한 어학연수의 맛만 보는 정도였다. 짧은 연수 일정을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밥은 짐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던 한국음식 통조림과 조미 김 등도 활용했었고 식당에도 갔다.
어느 날은 근처 시장에도 가서 딸기와 다른 과일도 사 가지고 왔다. 시장상인들이 영화 속에 배우처럼 멋있게 생겨서 신기했다. 과일 씻던 공동부엌에서 중국인 학생은 깊은 프라이팬을 가지고 왔던 것이 기억났다. 자기 것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부엌에서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중국음식을 그 팬에 기름으로 볶아서 만들었던 것 같다. Hi! 하고 활짝 미소 지으며 중국 학생과 인사했던 것도 기억 속에 요즈음도 떠오르곤 했다. 그 외에 기숙 사안에 일본 학생도 있었고 유럽인들도 가끔 보았다.
London 빅벤 (Big Ben)과 관람차 그리고 유람선
근위대와 버킹검 궁전
2018년 5월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 모습
3. 런던 city로 자유여행
그리고는 우리를 인솔했던 사람과 담판을 지었다. 남은 경비로 캠브리지 대학과 런던 city을 가기로 결정했다. 우선 기차를 타고 주말에 런던 시내를 보러 단체로 갔다. 영국의 전통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건물들을 보고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railroad)라는 지하철도 타보며 시내를 보았다. 도로는 아스팔트였지만 인도는 돌로 만들어진 길이 많았다. 짐 가방은 돌에 걸리곤 했다. 우리는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였다.
빅벤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에 위치에 있고 종뿐 아니라 시계탑 자체도 빅벤이라고 했다. 매년 약 12,000명의 관광객이 찾는 런던의 대표적 명소였다. 그 앞은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들고 감상했다. 명칭 빅벤 (Big Ben)은 이 시계탑의 건설 책임자였던 벤자민 홈 경이 큰 체구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빅벤은 '엘리자베스 타워'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되었다.
버킹검 궁전(Buckingham Palace)은 매일 시행되는 전통 복장의 근위병이 교대하는 장면이 명물이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뒤에 국왕들이 상주 궁전이 되었다. 그 궁전 앞에 근위병들을 보고 건물도 감상했다. 한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영국 왕실의 웅장한 사원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Abbey)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수도원 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로 'The Abbey'라고도 했다. 13세기에 헨리 3세의 지시로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997년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치르기도 했다. 바로 지나치기는 아쉬워 잠시 머무르며 그 건물들을 관찰도 했다.
트라팔가르 광장(Trafalgar Square)에 지금의 형태는 1845년에부터였다. 그곳에도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영국 런던 코번트 가든에 있는 광장으로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을 기념으로 만든 곳이라고 했다. 건축가 조지 리드웰 테일러의 제안으로 트라팔카르 광장이 되었다. 그 후에 에드워드 1세 때 왕가의 정원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 날씨도 화창했다. 그 네모반듯한 광장 앞에 갤러리도 보았다. 큰 화폭의 그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에 그 도시 런던(London city)을 오롯이 느끼며 나의 마음에 고이 저장 해 두었다.
4. 역사와 전통의 건물
그 도시를 우리는 걷기도 하고 공원도 지나치며 하루 동안 조심해야 했다. 그 도시의 많은 소매치기(pickpocket)들이 여행객의 배낭, 가방 속에 지갑들을 노린다는 걸 들었다. 현금은 복대에 넣고 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한 사람이 길을 잘못 가면 모두들 기다리는 그 와중에도 우리는 그 시간을 즐겼다. 식사는 대충 했다. 길거리에서 빵도 먹고 치즈도 사 먹었다. 영국 화폐 파운드가 아주 비싸서 1 파운드가 1,800원 정도이었던 기억이 있다.
인물사진도 런던 시내에서 찍었지만 지금 보여줄 만한 건 아쉽게도 없었다. 길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영국 영어의 엑센트를 들었다. 미국 영어를 학습한 우리에게 필요한 현장학습이기도 했다. 또 책에서만 봤던 그곳을 직접 보는 자부심도 느꼈다. 영국 거리의 건물들이 마음에 닿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의 감각은 오랜 전통의 섬세함을 보았다. 그 전통을 유지하면서 지키고 다른 나라 여행객을 불러들이는 그 나라의 힘을 느꼈다.
현대식 건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답답하다고도 했다. 그렇치만 영국인들인 건물을 보수만 할 뿐 완전개조는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손길이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거리에 고풍스러운 갤러리도 많았다. 런던에서는 쉽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인구는 900만 정도이고 뉴욕, 상하이, 도쿄와 함께 세계 최대 도시의 하나였다. 기후는 여름 기온이 17~18 c 정도이고 편서풍 정도의 바람이었다. 우리의 태풍 같은 강풍은 거의 없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라고 생각하며 보고 마음에 담았다. 매년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 도시를 보려고 방문했다. 그들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며 보수도 하고 보여주는 영국인들의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거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현지인보다 여행객들의 비율이 더 많은 그리고 빈번히 그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런던(London city)이었다.
트라팔카르 광장
웨스트민스터 사원
5. 캠브리지 대학
며칠 후 주말에 우리는 캠브리지 대학을 가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는 1박을 하기로 했는데 예약했던 호텔 복잡한 로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엔 못 들어갔던 것 같다. 이유는 인솔자가 뭔가 예약을 잘못한 것 같았다. 그 호텔은 예약 없이는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조해서 한국인 민박을 지하철로 찾아가서 겨우 한국음식을 먹었다. 몇 미터 거리의 다른 민박집에 짐을 놓고 씻고 쉬고 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화창했고 학교 입구부터 볼거리가 풍부하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교내에도 여행객들이 많았다. 모두들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 찍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여행객을 위한 배도 탈 수 있게 된 걸 보았다. 강의 이름이 캠이라서 대학의 이름이 캠브리지라는 걸 들었다.
영국에서 옥스퍼드대학과 함께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지키는 대학이었다. 부속시설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소이자 출판사인 캠브리지 대학교 출판사도 있다. 도서관, 피츠윌리엄 박물관, 고고학 인류 박물관, 미술관, 식물원도 있다.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했었고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했다. 132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 연구소로 인가되었다. 기숙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교이었다.
나의 열정을 들여다보고 싶은 그때의 심정은 그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치만 영국 런던 캠브리지 대학에 와서 본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적당한 곳에 앉아서 그 건물들을 보고 감상도 했다. 우리의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교정 견학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많은 다른 여행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진도 많이 찍으며 여기 보고 또 다른 장소 보고 하는 걸 보았다. 그 대학교의 모습을 서로서로 감동적이라고 얘기하면서 또 웃으면서 기차를 타고 Newcastle city 기숙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