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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Mar 24. 2022

밤비행

20대의 안전 이륙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한 비행


E항공사의 합격 소식을 받은 예비승무원들은 자기 나라를 떠나서 두바이로 이주해야 했다. 나 역시 정해진 날짜의 비행기를 타러 인천 공항에 갔다. 한국에서는 겨울이 깊어질 무렵인 11월 초였다. 대학 졸업반의 이른 취업에 반색하는 부모님이셨지만 막상 다 큰 딸이 서울도 아니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산다니 걱정하셨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 속마음을 챙기기보단 도망치듯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이유가 부모님의 구속에서 해방되고 싶었다는 삐뚠 표현을 거침없이 하던 철부지였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짐을 풀었다 싸는 과정에서 아빠가 짐을 이렇게 넣어라 저렇게 넣어라고 잔소리가 시작되자 나는 내가 이러니 나간다고 했다. 아빠는 내 날 선 말에 딱히 별 말이 없으셨다. 시간 다됐으니 어서 들어가시라고 공항 직원이 달려와서 말했다. 내가 독립하러 출국하던 시점이 어린 새가 첫 비행을 하러 둥지에서 나올 때라고 치면 나는 발을 헛디딘 기분이었다. 어떻게 안전하게 떨어져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고 배울 생각도 없이 그냥 나선 길이었다. 그 후로 몇 년간 몇 번의 위험한 착지로 진정한 독립을 배워나가야 했다. 해봐야만 아는 고집스럽고 미련한 성격 탓에 그렇게 스스로 혹독한 길을 나섰다.


 인천에서 출발해서 두바이로 가는 비행은 자정이 다돼서 출발하는 밤비행이었다. 열 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이었지만 다섯 시간의 시차 때문에 새벽 다섯 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비행기에 우두커니 앉아 두리번대며 시간을 보내다가 착륙할 때가 돼서야 쪽잠이 들었었다. 나중에 안거지만 비행기에 탄 승무원들 모두는 비행 전 브리핑과 승객 리스트를 통해서 내가 새로 입사하는 신입인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승무원은 특별히 애틋한 마음이 있었는지 여러 번 찾아와서 필요한 게 없나 살펴봐줘서 이미 얼굴을 익힐 만큼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언니 같은 승무원이 있었더라도 다른 세계로 가는 밤비행은 너무 고요하고 낯설었다. 그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나는 서너 번의 국제선 탑승 경험과 제주도를 두어 번 다녀간 승객으로서의 비행 경험조차도 많지 않았다. 나중에 교육 때 만난 다른 신입승무원들이 절반 가량은 다른 항공사에서 이직해 온 경력자들인 것에 놀라기도 했다. 비행기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내가 승무원이 되다니 가당키나 한건 지도 생각할 겨를 없이 보잉 777은 나를 태우고 대한민국 땅에서 멀어져 갔다.


 내 옆자리엔 나와 다른 피부색의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우리 사이의 팔걸이는 대체 누구 몫인지 가늠하며 최대한 안 부딪히려 애쓰며 눈앞에 스크린이나 볼까 했지만 도대체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엔 콜벨 자체도 몰랐던 터라 승무원에게 물어볼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옆자리의 그 남자가 영어로 뭐라고 몇 마디 하며 내 자리의 리모컨을 꺼내 주었다. 그때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은커녕 웃기는 했으려나 모르겠다. 당혹함과 고마움에 꺼내 든 리모컨을 잘못 눌러서 머리 위 독서등이 환하게 그 남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장난스럽게 눈부시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웃어주는 그 낯선 사람이 그렇게 위안이 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긴장 속의 인생 최대의 고공비행이 시작되었고 나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 대표로 안전하게 착지하기 위한 서툰 날갯짓을 시작해야 했다.

 

 항공 승무원의 특급 미션은 승객 밥을 정시에 주는 것도, 단정하고 예쁜 외모도 아닌 승객을 안전하게 도착지까지 인도하는 것이다. 밤 비행은 잠든 승객들이 많고 승무원들도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낮비 행보다 피로도가 높고 긴장이 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밤 비행 역시 낮비행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한 번의 이륙과 한 번의 착륙은 있어야 한다. 그 한 번의 착륙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승무원들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다. 비단 승객들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을, 화장실 화재경보기 작동 여부를 2-30분 간격으로 확인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다. 콜벨이 울리면 'coke'(음료수 콜라 달라는 것) 일지 'choke'(목 막힘_의료적으로 응급한) 일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라는 말도 승무원들이 브리핑에서 자주 인용한다. 문제는 나는 그런 프로페셔널한 직업이나 인생을 꿈꾼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숨 막히게 무료하고 더 나아질 가능성 없는 이십 대의 나를 내가 못 견뎌해서 멱살 잡아 어디든 던져 넣은 곳이 중동 한복판의 외국항공사였다. 도착지도 모른 채로 탑승해서 밤 비행에 잠든 승객이나 다름없던 인생이었는데 유니폼을 입고 난생처음 바르는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내 나라말도 아닌 영어로 사생활부터 업무까지 모든 대화를 해야 했으며 수시로 비행기 화장실 문을 제치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어둔 기내를 돌아다니며 잠든 승객 얼굴도 두 번씩 들여다보게 되는 삶의 오류가 생긴 것이다. 내 20대 중반의 첫 직장인 항공사는 그렇게 밤 비행처럼 고요하지만 긴장 속에서 시작됐다. 어리숙하고 사회경험이 전무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내가 자립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세상은 어둡고 혹독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당시의 나와 내 인생 주변의 모두가 안전하게 착륙해야 했다. 안전을 위해서 눈을 부릅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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