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좋은 기회들로 프로덕트 관련 직무들, 그 중에서도 PM(product manager)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고, 밀도 있게 살아가던 중 알맞은 타이밍에 지금 속해 있는 조직에 PM으로 오게 되었다. PM의 역량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내가 농구에서 해오던 포지션, 포인트가드가 생각났다.
포인트가드, 볼 핸들러, 리딩 가드 등등 유사개념이 많기는 하나, 최근에는 전통 포지션 간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는 추세라, 이 글에서는 포인트가드 대신 플레이메이커라는 말로 통칭하겠다.
농구에서 플레이메이커는 모든 능력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PM도 그렇다.
이 예시를 들기에 적격인 인물이 있다. 설마 또 르브론 제임스? 애석하게도, 그렇다.
물론 르브론이 포인트가드는 아니나, 메인 볼 핸들러이자 커리어 내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온 선수이기에, 이만한 예시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 (르브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는 유감을 표한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때는 바야흐로 클리블랜드 2기 시절 (2014~2018). 르브론의 패싱 능력과 관련해 팀 동료 케빈러브, 채닝프라이, 리차드제퍼슨이 아주 인상깊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같이 뛰었던 패서들 중 르브론 제임스가 최고라는 내용의 인터뷰였는데, 그 이유가 독특했다.
르브론 제임스는 단순히 정확하게 패스를 꽂아줄 수 있는 선수일 뿐 아니라, 슈터가 어느 정도 높이에서 공을 받을 때 가장 편하게 던지는지까지 고려한 상태로 패스를 건넨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채닝 프라이는 머리 근처, 높은 곳에서 패스를 받을 때 성공률이 좋았고, 케빈 러브는 하체 쪽에서 낮게 받을 때 무게중심을 아래서부터 끌어올려 슛을 쏘는 편을 선호했다. 리차드 제퍼슨은 정확하게 가슴쪽으로 받기를 선호했다.
이런 선수 개개인의 성향을 르브론제임스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패스 정확도가 여기에 겸해지니, 팀의 슈터들에게 가장 최적의 패스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이 팀 동료들의 인터뷰는 데이터가 증명해냈다. 르브론이 주는 패스의 효과는 당시에 실제 지표로도 나타났는데, 3점슛에 보정을 가한 슈팅 효율성 수치인 eFG%에서 두각을 보였다.
플레이 오프 기간 동안 르브론에게 패스를 받은 캐벌리어스 선수들의 eFG% 수치
리처드 제퍼슨 : eFG 94%
채닝 프라이 : eFG 85%
카이리 어빙 : eFG 62%
케빈 러브 : eFG 59%
JR 스미스 : eFG 58%
플레이오프 기간 르브론이 패스하여 만든 팀 3점슛 개수는 46개
플레이오프 기간 르브론이 패스하여 달성한 eFG% 는 60%
그리고 시즌 리그 평균 eFG% 수치는 50%
말도 안되는 수치다.
플레이메이커인 르브론은 팀을 파악했다. 팀 내 선수들이 어떤 성향인지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각각의 선수들의 잠재력, 그리고 최대치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역대 최고의 선수냐, NBA 역사상 몇 번째에 위치해 있는 선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같은 팀 선수들, 그 중에서도 특히 롤이 명확하지 않았거나, 벤치에서 롤플레이어로 나오는 선수들의 역량을 끌어올려 팀 전체를 강팀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르브론 제임스만한 선수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4-2015 시즌, 결승전 주전 로스터를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매튜 델라베도바 - 이만 셤퍼트 - 르브론 제임스 - 트리스탄 탐슨 - 티모페이 모즈코프로 이루어진 Best5인데, 팀의 2,3옵션이었던 카이리 어빙과 케빈러브는 모두 부상으로 나갔고, 정규 시즌에서 몇 분 뛰지도 않던 선수들이 결승에서 주전으로 나와 최강팀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4-2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르브론은 클리블랜드와 골든스테이트, 두 팀 통틀어 모든 스탯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때문에 역사상 한 번 (1950년대 제리웨스트) 밖에 없었던 준우승 팀에서의 파이널 MVP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실제 파이널MVP 수상자는 골든스테이트의 안드레 이궈달라였다.)
1.5군, 2군급 선수를 안고도 이정도 퍼포먼스를 낸 것은 그만큼 르브론이 팀원들의 성향과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에 맞춰 본인의 롤 또한 수정해나갔기 때문이었다.
준우승이었음에도 2014-2015 시즌 르브론 제임스의 퍼포먼스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다.
플레이메이커라고 하고 팬심을 가득 담아 르브론제임스의 사례를 소개하긴 했으나, PM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고 PM이 가져야 할 역량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 플레이메이커의 역량과 요구되는 바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팀원들의 역량, 성향, 컨디션에 대해 완벽히 이해가 되어 있고, 끊임없이 그것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 사람은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 먹고 와서 미팅 하기를 선호하더라"
"이 사람은 매일 액션 플랜에 대해 짚어주기를 선호하더라"
"이 사람은 먼저 대화를 요청하면 부담스러워하기도 하더라"
사람의 성향은 다 달라서 골치아픈 것이 아니라, 다 다르기에 맞추어 나가야만 한다. 특히나 PM이라면.
Watchfinder의 PM Robert Drury의 블로그를 보다 보니, [PM이 직면하게 되는 26가지 문제 (26 problems with being a prodcut manager)]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만 봐도 PM이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자 및 팀원들의 상황과 생각을 고려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에서의 몇 가지 사례를 가져오면, PM은 대략 이런 문제들을 겪는다.
개발팀에 리뷰를 하고 나면, 무언가 바뀐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완료하면, 무언가 바뀐다.
이해관계자들은 PM이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들은 PM이 충분히 질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들은 요청하는 기능이 매번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조직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모든 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농구에서 플레이메이커는 코트 위에서 감독, 코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수십가지 작전 중 현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작전을 즉각 시도해보기도 하고, 코트를 왔다갔다할 때마다 동료 선수들을 독려하고 모티베이트한다. 대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선수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즉시 개선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동료 선수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플레이메이커의 이런 노고는 스탯 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PM도 마찬가지다.
언급한 26가지 문제들 중에 이런 항목도 있는 것을 보면 새삼 더욱 실감이 난다.
조직 내 몇몇 사람들은 내가 뭘하는지 모른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빠른 시간 내에 팀을 파악하고, 현재 팀이 놓여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최적의 디시젼메이킹을 내리려 시도하는 것이 PM의 롤 중 하나다. 스쿼드 전체를 스케일 업해야 할 책무가 있다. 다행히도 나는 어렸을 적부터 농구할 때 늘 포인트가드, 메인 볼핸들러, 플레이메이커의 롤을 갖고 뛰었기 때문에 어떤 마인드셋으로 지금의 PM 롤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얼라인이 된 채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와 감각, 의사결정과 분석에 대한 역량은 갈 길이 멀다. 계속 공부하고 갈고 닦아나가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PLAYMAKING에 대한 포인트다.
PM으로서 프로덕트 관련 프레임워크들을 따져보기 이전에 우리 팀에서 함께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멤버들이 어느 위치에서 패스를 받고 싶어하는지, 어느 환경에서 최적의 포텐셜을 뿜어낼 수 있을지, 어떤 롤을 선호하는지 등 팀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