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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20. 2023

미움받을 나이

기피 인물

'한 번 더하면 백 번째야'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도돌이표가 된 부모님 세대의 고단했던 삶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똑같은 레퍼토리어서 진저리가 났었다.

특히 피난 오던 이야기는 하도 생생하고 실감이 나서 그 당시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나도 피난길에 따라나선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기차 지붕에 탔던 사람들이 굴다리(터널)를 통과한 후에는 반 이상의 사람들이 떨어져 없어졌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와 시어머니의 원정출산기.

나에겐 시누이가 셋인데 위부터 차례로 피난지인 부산, 인천, 광주에서 태어났고 피난길에 헤어진 시아버님과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웃지 못할 사연, 사연들.

 고단하고 참담함들이 배어있는 이야기들을 하실 때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똑같은 억양이신 게 너무 신기했다. 

간이 흐르면서  어떤 면에서는 추억을 음미하는 것 외에 자신에게 그 사건을 각인시키고 잊어버릴까 봐 컨펌하는 면도 있는 것 같은.


나도 한번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가 있다. 친구들은 시큰둥하면서도 저도 그러니 약간의 반응을 보여주면서 넘어간다.

그러나 아이들은 단박에 지루함을 느끼고 노골적으로 ' 지난번에 얘기하셨어요'라든가 하며 딴청을 부린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일이 자주 생기니까  옛날 부모님들이 생각난다.

리액션도 곁들여서 잘 들어드릴걸, 몸 비비 꼬지 말고. 심은 대로 거두니 어쩌랴, 참아야지.


나는 중국집에서 요리를 시키면 군만두는 서비스로 따라오던 시절에 한국을 떠났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to go로 오더해 놓고 음식을 찾아오곤 했다.

식당 내에 손님은 안 받고 테이블에 배달음식 패키지만 줄지어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일식집이라도 교자는 파니까 파티 트레이부터 많이 시켰으니 아무 생각 없이

'서비스로 만두는 안 줘요?' 하고 말해 버렸다. 여직원이 따로 사셔야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야 아차하고 실수한 것을 알아차렸다.


한국 빵집에 갔을 때였다.

아들이 계산한다고 따라 들어와서

다 사고 나가려는데 내가 아가씨한테 '많이 샀는데 빵 하나 덤으로 안 줘요?'라고 하니 자기는 주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 안 준다는 뜻이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가 창피해서 출입구 저쪽으로 도망쳐서

창밖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이 아니라는 듯이. 그런데 아침 일찍 첫 손님이라서 매장 안엔 우리 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얼마 전 치과에서 생긴 일.

치료 전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리셉션 데스크에 대 여섯 권 정도의 탁상용 달력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욕심이 불끈 솟으며 달력을 하나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는 이미 3월, 2023년의 1/4이 지나가고 있는데 달력이 왜 필요하며 집에도 있는데 웬 욕심? 폰으로 날짜 보고 메모하는  시대에 살면서 하며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옛날 할머니들처럼 뜰해서 살림에 보탤 것도 아니면서 그저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주워서 끌어모으는 습성은 어디서 생겼을까?

나는 특별히 물건에 애착이 그리 없다.

다들 우리 집에 와 보곤 우리처럼 물건이 없어야 집이 깔끔하다고 칭찬할 정도이다.

수리나 정돈은 우리 집이

롤 모델이라는 말을 들으며 미니멀 라이프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철 지난 달력 욕심을 부린 것은 무슨 심리냐고.

 털 슬리퍼에 레깅스 입고 노인티를 안 내려고 가장 영~~하게 옷을 입고서 노인 생활티는 팍팍 낼 뻔했네

우리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우리 나이가 미움받을 나이라네. 미운 일곱살은 들어봤어도 노골적으로 미운 70세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그러나 말도 주책

행동도 주책

나처럼 쓸데없이 서비스랑 덤같은 것 밝히는 몰염치를 자행하면 들을만도 하지만.


살아온 경험도 요즘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쓸데없는 고집만 늘어서 증세가 심각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자녀들이 아이도 안 맡긴다고.


우리 부모세대는 많이 못 배워서 자식들만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허리띠를 졸라맨 시절을 살아냈다. 그래서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이 하늘 아래 최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식이 말하면 틀려도 다 옳다고 생각하고 우러러보았던 우리 부모님들.

그러나 베이비 부머들부터는 잘 배우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눈을 떠서 사리 분별이 확실해졌다.

노인이 되어서도 너무 똑똑해서 자식들을 가르치려 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인정하는 대신에 내 경험을 따르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다가 더 나이가 들면 기피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랑받을 나이는 못 되더라도 미움받을 나이는 되지 말아야 될 텐데 큰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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