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 집사가 될 상인가?

5대째 고양이 집사를 하고 있는 집안 이야기

by 미스블루

예전엔 사람들이 고양이를 집안에서 애지중지 키우지 않았었다.

고양이는 그저 늘 사람들에게 쫓기며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다가 사람이 오면 달아나야 하는 존재였다.

그것도 아니면 시장의 생선가게나 건어물 가게에서 많이 늘어나봤자 10쏀티가 고작인 목줄에 묶여 쥐를 쫓는 인형정도의 취급을 받는 존재.

나는 시장의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슬프게 야옹야옹 우는 새끼 고양이의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고 달아나야 했고 그 소리를 들은 날에는 슬프고 괴로워서 몸져누울 판이었다.

이런 고달프고 고달픈 인생이 어디 있을까..

길고양이의 수명은 길어봤자 3년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살길래 집고양이의 수명인 15-20년에 비해 이렇게 턱없이 짧을 수가 있을까 말이다.

그래도 요즘엔 고양이를 집에서 많이들 키우고 집사가 되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참 기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다는 소식만큼 기쁘다. 으흐흐

미국의 어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늘 읽게 되는 표지판이 있다.

그곳에는 애완동물은 사람의 아기와도 같으니 잘 보살펴주고 사랑해 주자는 말이 크게 적혀있다.

맞아요! 맞아! 하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그런 고양이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애지중지하는 집안이 있었으니...

나의 독특한 집안의 고양이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할머니의 어머니까지이니 나의 딸까지 내려오면 5대째이다.

엄마의 할머니는 모든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아주 책임감이 강하고 남에게 어떤 신세도 지지 않는 아주 깔끔한 분이셨는데 딱 한번 아주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한다.

며칠 친척집에 다녀오시다가 개울가에 내던져 있던 당신 고양이의 시체를 발견한 일이었다고 한다.

집에서 일하는 분이 쥐약을 먹고 죽은 할머니의 고양이를 개울가에 그냥 내다 버렸던 모양이다.

집안 식구들은 산에다가 잘 묻어준 줄 알고 있었고, 할머니는 자신의 고양이가 죽은 줄 모르고 있다가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내려다본 개울가에 자신의 고양이가 변사체로 내던져 있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렇게 화를 많이 내신일은 집안식구 모두 처음 보았다고 한다.

나의 할머니는 우리가 시골집에 놀러 가는 날이면 할머니의 고양이 목과 꼬리에 화려한 한복천으로 리본을 예쁘게 매어 두고 우리를 반기셨고, 할머니의 고양이는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며 뜨끈한 방바닥에서 몸을 지지는 일을 취미로 삼으며 살아갔다.

나 어릴 적에는 고양이 화장실 모레 같은 건 팔지를 않았으니 우리 엄마는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모래를 퍼담아와 고양이가 화장실 볼일을 편하게 보게 했다.

컴컴한 한밤중에도 엄마는 고양이 모래를 퍼담으러 놀이터에 갔고 엄마가 모래를 담을 동안 나는 달빛아래서 그네를 탔다.

엄마도 고양이를 어찌나 사랑했는지 고단한 하루 끝에도 고양이를 위해 놀이터에 나갔다.

80이 다 되신 지금도 또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둘이서 잘 살고 계신다.

우리 집안 많은 친척들의 집에는 고양이가 적어도 한 마리씩은 있었으니 친척들이 모여도 이야기의 화제는 집집마다 있는 고양이들의 안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양이들이 화제에 오를 때면 모든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고 자신의 고양이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나 역시 둘째 아이가 4살 정도가 되었을 때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되었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시간은 아이양육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누구 아이의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돌아가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을 해서 혼자 살게 되었다.

아이가 독립을 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고양이를 찾아 들이는 일이었다.

집안의 흐르는 고양이집사의 피가 한대 더 내려온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되어줄 고양이들을 찾다가 드디어 고양이 아가들이 집에 오게 되었고, 딸아이의 고양이들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고양이 손주가 생긴 것 같은 요상한 기분이었다.

나의 고양이들을 기를 때와는 또 다른, 책임감보다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고양이 집사로 잔뼈가 굵어진 집안의 유전자의 맹활약인지 딸아이는 고양이 집사노릇을 정말 제대로 잘하고 있다.

5대째가 되니 장인이 되었나 보다.


아이가 여행을 가거나 일이 바쁠 때면 고양이들을 데리고 와서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듯 나한테 맡기고 간다.

짐은 한 보따리다.

자신이 특별히 먹이는 음식부터 장난감까지..

사람음식을 먹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딸아이는 가자미눈을 뜨고 당부를 한다.

아직 어려서 사람음식 많이 먹이면 안 된다고.. ^^

나도 가자미 눈을 뜨고 '괜찮아 엄마 고양이들 사람음식 실컷 먹여서 저렇게 건강하고 오래 살잖아!' 하고 받아친다.

18년의 세월을 건강히 잘 살게 하고 있는 고양이육아를 먼저 해본 선배맘의 코웃음이다.

넘치는 호기심으로 신이 난 어린 고양이들이 온 집안을 우당탕탕 뛰어다니고 이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나의 고양이들은 아주 귀찮다는 듯 일어나지도 않고 그저 쳐다만 볼뿐이다.

그러다 정말 귀찮게 하면 한 대 쥐어박는다.

냥펀치다.

남편과 나는 자신의 아가고양이들이 저렇게 얻어맞는걸 딸아이가 봤으면 다시는 안 데려올 거라며 고양이 손주들을 못 보게 될까 봐 쉬쉬 한다.


며칠을 네 마리의 고양이들의 시중을 드느라 지쳤을 때쯤 그들의 집사엄마가 돌아온다.

손주들이 집에 놀러 오면 올 때 너무 좋고 집에 갈 때 더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친다.

아가고양이들을 차에 태우고, 가지고 온 육아용품을 한가득 챙겨 본인의 집으로 떠날 때 더 힘차게 손을 흔들게 되니 말이다. ^^

아가 고양이들이 떠나고 동생들 때문에 많이 치였던 열여덟 살 나의 도도가 스스륵 품 안으로 들어와 골골송을 부른다.

도도에게 묻는다.

우리들이 정말 집사가 될 상인더냐? 하고...









keyword
이전 05화그 많던 김밥은 누가 다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