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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은 서럽다.

신혼 때 이야기 2

by 미스블루

나는 생닭이 무섭다.

그래서 그런지 닭살이 돋았다던지 닭모가지 라던지 그런 말 조차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프라이드치킨정도는 좀 먹어도 삼계탕은 아직도 못 먹는다.


첫 아이를 낳고 시어머님이 산후조리를 해주시러 미국에 오셨다.

친정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엄마는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아이를 낳고 친정엄마의 산후조리를 못 받는 것이 그렇게나 서글펐었다.

엄마랑 아이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싶었고, 백번도 더 들었었던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이야기도 또 듣고 싶었고,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며 엄마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다.

그때는 영상통화도 없었다.

서럽고 서러워 매일 울고 또 울었다.

그때 미국은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 내로 간호사가 산모의 집을 방문하여 아기가 모유를 잘 먹는지 산모는 어떤지 살피는 제도가 있었다.

집을 방문한 파란 눈의 미국인 간호사가 그저 인사말로 물었을 것이다.

'기분은 괜찮아?' 하고..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져서 거의 방바닥을 구르며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시어머님은 기력이 약해진 나에게 보양식을 해주시려고 삼계탕을 끓이셨던 것 같다.

영계를 골라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도록 정성을 다해 삼계탕을 끓이셨을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시어머님은 식탁에 삼계탕을 차려놓고 나를 부르셨다.

어서 와서 이것 좀 먹어보라고...

아이 모유를 먹이느라 잠도 못 자고 기진해진 몸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식탁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눈을 뜨고 본 내 앞 대접에는 허연 닭살을 한 닭 한 마리가 다리를 수줍게 꼬고 또 다리를 웅크린 그 특유의 생닭의 자세로 국물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드는 생각이 갓 낳은 아기의 맨몸이었다.

자연분만으로 아기가 나오자 간호사는 바로 내 품에 아기를 안겨 주었었다.

웅크린 닭 한 마리와 맨 몸으로 태어난 아기가 교차되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악~~~~~~~~~~~~~~~~~~~~~~~~

움직이지도 못하고 식탁에 앉아 삼계탕만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비명을 지르는 내 앞에 착지한 남편의 두 손에는 두 개의 포크가 들려 있었고 미친 듯이 닭살을 파헤쳐 일단 생닭 특유의 형태를 없애 놓으니 비로소 아내의 비명이 멈추었다.


부엌 싱크대에 서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계시던 시어머님...

이제야 그 망연자실한 어머님의 눈빛이 생각난다.

딸도 없으셔서 여자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신 우리 어머님은 친정엄마가 오지 못하는 며느리를 위해 12시간의 장거리비행에 장대미역을 잔뜩 싸가지고 씩씩하게 미국으로 오셨고 첫 손주를 만난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고 며느리의 부엌을 도맡았지만 당신 역시 왜 한 번씩 서러움이 없으셨을까..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며느리의 낯선 부엌을 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표로 참아내고 계셨을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제엄마를 찾으며 우울해하는 며느리가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몇 시간을 고아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담아내어주는 것이 최고의 대접인지라 그렇게 하였더니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것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며느리와 놀란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내 아들이었던 아들의 모습에 그 자리에서 가장 울고 싶었던 건 어쩌면 우리 어머님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모두 다 잊어버리셨겠지만 그날을 기억하는 며느리는 괜히 어머님한테 전화를 걸어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무 말대잔치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머님 그때 너무 서운하셨죠?' 하며 어머님을 꼭 안고 헤헤헤 하며 미안하고 미안해한다.

남편의 식성을 꼭 담아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때 닭 한 마리와 오버랩되던 내 첫 아가는 아빠랑 교촌치킨 한 마리를 단숨에 순삭 하며 조잘조잘 떠든다.

오늘도 로스앤젤레스에 옛 생각의 소나기가 내렸다.

그리고 나 혼자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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