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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이 필요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

by 미스블루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나기 시작하면 유독 부고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이 되려고 할 때가 더 그렇다.

원기 왕성했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안 그래도 마음에 스산한 한기가 들어차려고 하는데 부고소식에 한기는 더 빨리 마음에 안착을 하는 것 같다.


함께 기도모임을 하는 지인의 시어머님의 부고소식

사촌동생의 시어머님의 부고소식

먼 친척의 부고소식

신문에 난 개그맨 전유성 씨의 부고소식까지..


이곳의 장례식은 한국과 다르다.

영화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시체에 화장을 시켜서 관에 안치한 후 장례식 내내 관뚜껑을 열어둔다.

동네 아는 엄마의 남편이 갑자기 사망을 하게 되어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줄을 지어 관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친한 엄마들이 뒤에 몰려 서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관속에 있는 그 집 남편의 시신이 너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 남편은 자동차 안에서 심정지로 사망을 했는데 며칠 뒤에 발견을 하는 바람에 몸이 앉아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양으로 굳어있는 그 상태로 관에 넣으니 관밖으로 시체가 많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심신이 약한 엄마들은 관앞으로 가서 인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외국에 사시는 작은엄마의 올케분이 돌아가셨는데 작은엄마랑 돌아가신 분의 친분이 두터웠던 일을 생각한 식구들이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관속에 누워있는 그분의 사진을 찍어 작은엄마께 카톡으로 전송을 한 모양이다.

작은엄마는 그 사진을 보고 기겁을 하여 갑자기 상승한 혈압으로 인하여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작은엄마는 집안의 커튼을 모조리 뜯어 버렸다고 한다.

꼭 커튼뒤에 그 시체가 서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랬다고 하는데 식구들은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실실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장례문화가 다르니 장례식장에서의 에피소드는 끊이지 않고 자꾸 나온다.


이곳에서 살게 된 후로 가족과 친지들의 한국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례가 난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멀고 가까운 친척들도 그저 이곳에서 마음으로 손을 흔들 뿐이었다.

갑자기 상을 당한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함께 안고 울어줄 수가 없었다.

그런 기회는 나에게 절대 주어지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발생하는 가족들의 상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시간에서 15시간까지 사는 곳에 따라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고, 겨우 비행기표를 구해서 가봤자 장례가 다 끝난 경우도 있고, 체류신분의 프로세싱 지연으로 인하여 이 나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갈 때도 있고..

각자의 사연으로 부모님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한을 모두 모아 놓으면 나라도 하나 만들 정도일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는 다르다.

좋아하는 작가 중에 닥종이 작가 '김영희'씨가 있다.

외국에서 사는 서러움을 글로 풀어낸 것이 나의 설움과 닮아서 그런지 그분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저릿했었다.

그분의 마지막 에세이집 '엄마를 졸업하다'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침대에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나는 이제 아무 때나 죽어도 된다.

기저귀를 갈아야 할 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보내며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아무 때나 죽어도 괜찮아서 너무너무 좋다고..

아이고 좋아라 하며 침대에서 뒹군다고...

이렇게 죽음을 아무 때나 맞이해도 전혀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90까지 사는 것도 좀 짧은 것 같다며 원통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작가 '김영희'씨 쪽이다.

세월이 흘러서 부모님들도 모두 돌아가시고 내 손이 가야 할 곳이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내손이 닿아야 할 곳이 모두 없어지고 나면 그제야 이 세상밖으로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싶다.

어떤 짐도 가져갈 필요가 없는 그 여행을 어떤 애닮음도, 어떤 아쉬움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다.

그 시간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사항은 가질 수 있는 것이니^^

그러려면 지금 이 시간을 아주 잘 지내야 한다는 식상한 답을 다시 손에 쥘 수밖에 없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그 여행을 어떤 마음으로 갈 수 있느냐는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에 달려 있으니까...

한국의 긴 추석연휴에 나 혼자 마음으로 이곳에서 연휴를 즐기며 쏟아지는 부고소식에 로스앤젤레스에는 오지 않는 소나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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