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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을 다잡는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

by 미스블루

지난 2주간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다.

영락없이 브런치의 글쓰기를 독촉하는 메시지가 와 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재미나다.

누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독촉을 해주다니..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려고 이력서를 냈고, 서면인터뷰 후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봤다.

한 사람과의 면접을 생각하고 있다가 세 사람이 나타나서 놀라 기절할 뻔했다.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머지 두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돌아가며 질문을 한다.

이게 무슨 악몽 같은 일이란 말인가..

줌으로 진행된 면접에서 그들은 말이 정말 빨랐고 가만히 보니 입도 요만큼밖에 벌리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조차 알아듣지 못한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자라고 그리고 이판사판이다. 모르겠다 하며 덤비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들어갈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질문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질문의 대부분은 나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누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할 거냐 하는 문제를 조금씩 상황만 바꿔서 끝도 없이 물어보았다.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말을 하고 있었다.

썡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마지막 질문이야 라고 했을 때 나는 그들 앞에서 기쁨의 물개 박수를 쳤다.

그들은 웃었다.

면접자리에서 물개박수를 치는 아줌마는 처음 봤겠지..


프로세싱이 길어질수록 기대하는 마음은 더 커진다.

서면인터뷰나 시험에서 진작에 '땡' 하고 탈락의 종을 울려주었더라면 기대감은 그리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감이 높지 않으면 실망하는 마음도 크지 않다.

그래서 더 무섭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상상의 세계는 더 구체적이 되어가고 있으니..

안 그래도 상상력은 세계에서 몇 위 하는 사람들과 겨루어보라고 해도 자신이 있는데..

나는 내가 그 면접에 합격을 하여 바뀌는 나의 일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무리 안 하려고 해도 자동으로 되고 있으니 정말 난감하다.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김칫국 좀 그만 마시라고 그 녀석의 뺨이라도 후려쳐주고 싶지만 손이 닿지를 않는다.

그리고는 면접에서 내가 말했던 부분을 되짚어가며 이렇게 말했으니 분명 떨어졌을 거야 를 되새김질하고 자책하고 못난 나를 미워하며 깊은 우울의 구덩이를 파느라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다.

이러고 있으니 어떻게 앉아서 글을 쓰고 있겠는가 말이다.


사람이 조금의 다른 일이 있어도 여느 때와 똑같이 살아가려면 얼마만큼의 수련이 필요할까..

얼마나 강해야 그런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삶을 그저 살던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월든'의 헨리 소로 정도 되면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다리미 판을 펼쳤다.

티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틀어두고 몇 주동안 언젠가 하려고 꾸깃하게 처박아 둔 옷들을 펼쳐 스팀을 팍팍 넣으며 다리미질을 했다.

친구 동그라미의 아버지를 돕는 장면에서는 울고불고하느라 다리미질이 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거저 주어도 안 입을 것처럼 구겨져 있던 옷들이 다리미 마사지를 받으니 새 옷이 되었다.

옷걸이에 착착 걸어두니 마음속까지 다리미질을 받아서 그런가 구부정했던 허리까지 펴진 기분이다.

다리미질을 끝내고는 냉장고에서 언제쯤 요리재료로 선발이 되어 불려 나갈까를 기다리며 목이 빠져있는 배추 한 포기를 가져다가 반을 가르고 척척 썰어 소금을 뿌려 두었다.

정신이 번쩍 나도록 맛있는 밥도둑 겉절이를 만들 것이다.

청소기도 꼼꼼히 돌리고 고양이들을 잡아다가 손톱도 깎아서 깔끔하게 만들어 두고 물티슈로 얼굴도 씻겨 주었다.

정돈된 집안을 바라보며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 낙엽이 진 감나무를 바라보며 마셨다.

조용한 집안에 보글보글 물 끓이는 소리가 면접으로 놀란 나를 달래는 것 같았다.

숨을 천천히 쉬어본다.

그리고 제 할 일을 하려고 얌전히 앉아 글을 쓴다.

주문을 걸어본다.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며..

그래도 '도전'은 생에 색깔을 입혀 춤추게 하는 아름다운 것이라 멈출 수가 없다.



하루를 자연처럼 유유히 살아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든 거르든 관계없이..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고 조용히 평온하게 지내보자.

친구가 오든 말든.. 초인종이 울리든 말든.. 애들이 울든 말든..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내기로 결심하자. (월든)




<사진은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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