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했던 이야기를 해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서로 좋아한다는 전제하에 연애도 했지만 남이랑 같이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친구나 식구하나 없는 갈 곳 없는 타국에서...
사소한 일에 시비가 붙고, 사소한 일이다 보니 더욱 분노하고 서러웠다.
라면에 넣는 파를 어슷 썰어야 한다와 쫑쫑 썰어야 한다라는 문제로 까지 싸웠으니..
우리에게는 싸우기 위해 하루를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노래가사처럼
그 아름다웠던 신혼시절이, 그 시간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신혼 때 부엌 창문이 넓은 집에 살았었던 적이 있었다.
부엌창문으로 보면 옆집의 정원이 보이고 옆집사람들은 매일 정원에서 아이와 큰 개와 함께 정원일을 했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그들은 늘 다정했고, 큰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매일 웃었다.
그날도 우리는 아침을 먹다가 말도 안 되게 사소한 문제로 또 싸움을 시작했다.
밥 다 먹고 먹으려고 누룽지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 시작된 싸움..
누룽지가 다 타고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며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말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참 싸우고 있는데 다급하게 울리는 현관문의 초인종 소리
문을 여니 너희 집에 불이 나고 있다며 달려온 옆집 남자
그제야 돌아본 가스레인즈 위에는 불이 붙은 누룽지 냄비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냄비를 싱크대에 던져 넣으며 불은 꺼졌지만...
그 순간 우리는 너무나 한심한 우리를 보았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제 말이 맞다며 우기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아이를 키워내느라 정신없이 살면서 부부싸움이 거의 잦아들었다가 몇 년 전 남편의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며 우리의 부부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은 아주 작은 소리 하나에도 발작을 일으키며 성을 내었고, '여기가 북한이냐며? 할 말도 못 하고 사냐고?'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우리는 '이혼'이라는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순화된 표현으로 '졸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어느 때고 한 사람이 못 살겠다고 할 때 서로 놓아주자고...
남편과 나는 서로 동의를 하고 어느 때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적금이라도 들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며 또 그렇게 그 시기에 자주 하던 부부싸움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결혼식을 할 때 혼인서약을 한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은데.. 이 말만큼은 기억이 난다.
존경스러울 때나 존경스럽지 않을 때나 서로 사랑하며...
그렇다.
혼인서약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나...
요즘은 그것이 그냥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여길수 없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학교 일이 끝나고 집에 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데리고 씨름을 했더니 정말 지쳤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2시간가량을 죽은 듯이 잤나 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속옷을 꺼내 입으려고 서랍을 열었더니 반듯하고 정갈하게 접어서 서랍에 차곡히 넣어놓은 내 속옷들...
남편의 손길이었다.
나는 늘 너무 바빠서 내 속옷은 접지 않는다.
식구들의 속옷은 접어주지만 내것은 접지 않고 그냥 서랍에 던져 넣는다.
남편은 내가 없는 동안 빨래를 개었고 늘 개지 않는 내 속옷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너무나 예쁘고 정성스럽게 개어놓은 속옷 앞에서 나는 웃음이 나며 탱탱하게 긴장되어 있던 신경줄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분들에게..
서로 맞춰나가느라 너무나 힘이 겨운 사람들에게...
이혼을 생각하는 커플에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25년 정도만 기다려 보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2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얼추 맞춰지더라고...
2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제야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더라고..
2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 헤어지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말을 하기에 25년이라는 시간은 많이 길어서.. 미안해서.. 이런 말은 못 하겠지만,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본다면, 쉽게 건너지 않은 강에 대한 달콤한 보상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모두 크고 다시 시작된 것 같은 두 번째 신혼생활.
연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대화를 한다.
싫다는 말보다는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내나 남편이 먼저 떠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서로를 보고 민망해한다.
걸을 때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슬며시 손을 잡는다.
이제 파는 어떤 모양으로 썰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림은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