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침대 속에서 하루종일 흐느껴 운다. 일주일째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싶다.
대학 4년 동안 뉴욕에서 혼자 학교도 다니고 인턴 생활 하며 회사도 다니고 누구보다 당차고 씩씩하게 지냈던 아이였기에 나엮시 당황하여 허둥거린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꽤나 행복해했었다. 사소한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된 후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놀라 서러워 울기만 하는 딸아이..
이럴떈 엄마로서 무얼 해줘야 하나 싶어서 괜히 딸아이 방문 앞에만 왔다 갔다 한다.
23살짜리 아이에게는 따끈한 식사를 차려주는 것과 옷을 빨아주는 것 외에 엄마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있겠는가..라고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 나오는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 달리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저녁 밥상을 차리려 부엌에 섰다가 알밥을 생각해 낸다.
넓적한 무쇠 전골판에 향이 좋은 참기름을 두르고 무압으로 지어 솔솔 날아다닐 정도로 반들반들한 쌀밥을 골고루 편다. 그 위에 볶아놓은 김치와 꼬들꼬들한 샛노란 단무지를 얹고 달짝지근하게 양념한 장어를 에어 프라이기에 슬쩍 구워 얹는다.
붉고 선명한 빨간색과, 아름다운 해초를 연상케 하는 바다 초록색,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보석 같은 검은색, 태양의 뜨거운 빛이 나는 주황색의 색색가지 날치알들을 꺼내 작은 채반에 정종을 부어 한번 쓱 행군 후 천사가 뿌리고 간 금빛처럼 밥 위에 솔솔 뿌린다. 가스렌즈에 불을 켜고 밥알이 고소하게 누룽지를 만들어 낼 정도로만 덥힌다.
아이의 밥상에 형형색색의 날치알밥을 올려 주니 아이가 우와~ 하며 조금 웃는다.
눈물이 나서 냅킨 가져오겠다며 돌아서 얼른 눈물을 닦는다.
'너의 마음을 덮고 있는 어둠을 걷게 하고 싶어 만든 음식이야.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 엄마가 해줄 것이 점점 줄어들지만, 날갯짓하다 힘들 때 언제든 와서 쉬었다 가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처럼 둥치만 남더라도 잠깐 앉아 땀이라도 닦게 해 줄 수는 있을 거 같기도 해. 이 알밥의 색채들처럼 너무나 아름답고 다채로운 너의 20대. 그만 울고 시원하게 털고 일어나렴. 그리고 너의 그 기분 좋은 웃음들과 향기를 다시 세상에 보여줘' 딸아이를 쳐다보며 눈으로 나의 마음을 전한다.
색색가지의 알밥을 들여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딸아이를 보다가 커다란 나무 숟가락을 가져와 누구보다 씩씩하게 온 재료를 섞어 알밥을 비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긴 꼬마였던 동그란 얼굴의 나의 아기가 실연도 당해본 아가씨가 되어 여전히 나의 식탁에 앉아 맛있게 밥을 먹는다.
이제 눈물을 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