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여름이라고 기쁨에 넘쳐 외칠 것이다.
여름은 싱그럽고 활기차고 넘쳐흐르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여름엔 목소리도 커지고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여름이 오면 나는 통통 튀어 다닌다.
여름은 특히 밤이 환상적이다. 뜨거운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고 나면 밤은 이제 나에게 와 시원하게 쉬라고 아낌없이 큰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 여름밤엔 미움도 원망도 서러움도 없다. 여름밤의 무릎을 베고 나는 나의 모든 번민과 어지러운 머릿속을 그에게 맞긴다. 부끄러운 속마음 까지도 그에게 맞겨본다. 그러면 여름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그런 거라고.. 너의 지친 마음을 시간에게 맡기고 여름밤을 힘껏 들이마시라고 그리고 또 내일을 살자고 그 커다란 웃음으로 다독다독 그렇게 나를 진정시킨다.
여름의 저녁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스테이크는 한 손으로는 들기 힘들 정도로 밑바닥이 두꺼운 주물 프라이팬에 버터를 넉넉히 넣고 겉에만 바삭하게 구워 먹어야 제맛이고 샤부샤부는 국물을 은근하게 계속 덥힐 수 있는 전기 전골기가 필요하다. 샤부샤부 국물에 한 김 익힌 야채와 색깔만 변할 정도로 슬쩍 익힌 종잇장처럼 얇은 샤부샤부용 고기를 새콤달콤한 폰즈 소스에 찍어 먹는다. 남편이 좋아하는 불고기는 숯을 피워 철망을 얹고 불맛을 입히며 호다닥 구워 내거나 가운데가 투구모양으로 동그랗게 솟은 불고기 전용판을 사용하면 금상첨화다. 고기판의 밑부분에 육수를 부어 고기를 얹은 부분에서 떨어지는 양념과 어우러진 국물에 국수까지 넣어 먹으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겹살은 뭐니 뭐니 해도 부르스타에 철판을 얹어 기름을 뺴가며 노릇노릇 고소하게 굽는 게 가장 맛있다. 나는 고기를 먹으러 음식점에 가도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이 고기판이다. 고기와 궁합이 어울리는 고기판이 얹어져 있으면 일단 합격이다. 고기와 딱 맞는 고기판은 고기의 맛을 최대치로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름저녁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그때 사용한 고기판은 고기를 얹으면 가운데 있는 구멍으로 기름이 빠지는 구조를 가진 고기판이었다. 남편은 신나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해댔다." 아 정말 이 소스가 기가 막히네! 여기에 찍어 먹으니 삼겹살이 더 맛있는 거 같아! 이 소스는 언제 또 개발한 거야? 나는 속으로 '무슨 소스를 말하는 거지? 소금과 참기름 장밖에 없는데..' 하며 한참을 먹다가 맞은편에 앉아 고기를 먹고 있는 남편을 흘깃 넘겨다 본 순간, 뜨악!!
남편은 고기판에서 한 바퀴 빙 돌아 나온 기름을 무슨 특별한 소스인 줄 알고 연신 고기를 거기에 찍어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고기판에서 나오는 기름을 바치는 그릇을 너무 예쁜 걸로 선택한 탓이었다." 자기.. 그건.. 기름이야 기름.. 고기판에서 내려온 기름이라고.. 아하하
남편과 나는 고기에 취한 건지 여름밤에 취한 건지 눈물까지 흘리며 웃고 있었고 박장대소하는 나에게 여름밤은 그 넉넉한 얼굴로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 반짝일 거 같은 밤이었다.